여러모로 경기가 좋지 않다. 그 효과로 취업시장도 얼어붙었다. 내가 중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이후로 취업시장은 계속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이러나 저러나 이렇게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 취업이 되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취준 기간도 그렇게 긴 편은 아니었다. 토익시험을 접수했던 때 부터 따진다면, 대략 4개월의 기간동안 취준생으로 지냈다. 원서는 총 여섯 군데에 넣었는데, 두 군데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처음 면접을 봤던 곳은 면접을 보면서 불합격이 예상되었다.
지금에서야 면접관과 내가 원하는 방향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 발자국 물러서서 관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여러모로 기운빠지는 일이었다. 그래도 어찌되었든 실전 경험을 통해서 면접관 입장에서는 무엇이 궁금한지 알 수 있었고, 덕분에 두 번째 면접은 잘 준비할 수 있었으니,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공계 전공으로서 여러모로 애매한 경력이었다. 박사를 꿈꿨지만 대학원을 5년 다니고 석사로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생뚱맞게 사단법인 사무국에서 일했다. 과학기술인이 모인 사단법인이기는 했지만, 흔히 이공계 대학원생이 택하는 경로는 아니었다. 전공을 살려 연구를 계속 하거나, 이공계 직무로 취직하는게 보통이다. 물리학 석사와 사단법인 사무국이라니, 좋게 봐주면 이것도 저것도 다 해봤다고 생각하겠지만, 안좋게 본다면 경력에 일관성이 없다고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우선은 사단법인에서의 행정경험을 살려 대학교 산학협력단이나 연구소 등에서 행정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고 했다. 직무가 나의 전공과 아주 연관이 있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이공계에 대한 애정은 남아있는 만큼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회가 잘 생기지는 않았다.
일하게 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던 곳이 있었다. 지원서를 넣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서류전형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서류 전형 마감이 미뤄졌다. 그 때는 단순히 지원자가 많이 없었나보다고 생각했다. 또 일주일을 기다려 드디어 서류전형 결과가 발표되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마음에 들었다면, 서류 전형 마감을 미루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몹시 바라던 곳에서 서류조차 떨어지고 나니, 멘붕이 왔다. 취업을 하면서도 내가 하고 있던 여러 활동들이 있었다. 논문 읽기 모임, 책모임, 합창단, 번역 수업 등의 활동들을 그만둬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내가 지금 그런 딴 짓을 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자 무너졌던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나와 맞는 곳에서 일하게 될거라는, 그런 곳이 나타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새로 일하게 된 곳의 채용공고를 발견하자 무척 반가웠다. 이공계 대학원 학위와 사단법인에서의 행정 경험을 모두 살릴 수 있는 곳이었다. 면접관도 같은 마음이었나보다. 면접관은 찾고 있던 이력에 딱 맞는 지원자라며, 면접을 시작했다.
면접은 총 한 시간을 보았다. 30분은 인성면접, 30분은 직무면접이었다. 두 면접 모두 지원한 곳에 대한 이해도를 확인하는 것을 기반으로 인성면접은 내가 일을 할 때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중점을 뒀다면, 직무면접은 내가 일했던 사단법인이 어떤 곳인지에 중점을 두었다.
면접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면접 절차를 안내하는 분도, 면접관도 지원자들을 굉장히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덕분에 나도 답변을 하기가 아주 수월했다.
이전에 일했던 곳도, 새로 일하게 된 곳도 모두 비영리법인으로서 과학기술인의 활동을 지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전에 일했던 곳이 과학기술인의 사회활동을 지원한다면, 새로 일하게 된 곳은 과학기술인의 연구활동을 지원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다보니 만나게 될 사람들이 겹치기도 했다. 또 면접을 준비하면서 기관에 대해 열심히 조사했던 노력이 빛을 발하기도 했다. 면접관들이 그런건 어디에서 알았느냐고 반문할 때 무척 뿌듯했다.
면접 분위기는 확실히 좋았으나, 그렇다고 합격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내가 아무리 괜찮아도, 나보다 더 괜찮은 지원자가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합격을 통보받았고, 기분이 무척 좋아져서 여기 저기에 소식을 전했다. 또 무척 들뜬 기분으로 몇 일을 보냈다.
여러모로 알맞게 되었다. 나에게 아주 알맞은 직무이기도 했지만, 구직급여가 끝나갈 무렵에 직업을 구하게 되었던 터라 시기도 딱 맞아 떨어졌다. 나와 맞는 곳이 나타날거라는 생각을 하자 정말 그런 곳을 발견한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합격 통보를 받으면 바로 일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다음 주에는 건강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인사담당자가 건강검진 결과를 받기까지는 약 1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 때 가서야 계약서를 쓸 테니, 약 3주가 지나서야 일을 시작할 것 같다. 하루 빨리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그래도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직장에서 일한 기간은 1년 밖에 되지 않지만, 짧은 시간 동안 내 시야가 정말 많이 확장되었다고 느꼈다. 새로 일하게 될 곳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머무를지는 아직 모르지만, 또 다른 방향으로 내 세계가 확장될 것 같아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