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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Aug 12. 2016

기억하지 못하는 뇌 - 번외 편

과학자와 저널리스트,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진실

뉴욕타임즈 매거진 기사가 나오자마자 번역을 시작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쏟아져 나왔고, 이 글에 대한 내 생각도 다시 정리했다. 


그래서 추가하는 번외 편.


지난 글: 

기억하지 못하는 뇌 (1) - 환자 H.M.과 과학자들 

기억하지 못하는 뇌 (2) - 한 사람의 뇌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드라마 

기억하지 못하는 뇌 (3) - 우리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글을 못 읽은 분들을 위해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환자 H.M.의 사례는 인간의 기억을 오랫동안 저장하는데 뇌의 “해마”라는 부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려주었다. 기억 연구에서 빠질 수 없는 역사적인 연구들이 이 환자를 통해서 진행되었다. 8월 9일 출판 예정인 이 책은 이 환자에 대한 연구에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매거진 기사는 책이 출판되기 전 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이다. 나도 아직 책을 전부 읽어보지는 못했다. 처음 이 기사를 읽었을 때 사실은 충격이었다. 이 글은 (중요 부분만을 선택해서 보여주어서 그런지) 진행속도가 빠르고 흡인력이 좋다. 더 무서운 건, 그렇게 쓰윽 읽어 내려가면서 설득당해버린다는 거다. 이 글은 환자 H.M.을 46년간 (연구 인생 다 바쳐) 연구해온 과학자를 몰지각하고 이기적인 학자로 그렸다. 충격이었다. 오랫동안 존경받는 교수의 실체가 이제야 드러나는 건가? 역시나 “실망스럽다”는 댓글이 많았다. 하지만 그중 한 명의 코멘트에서 난 잠시 멈추어야 했다.


“코킨 박사는 5월에 암으로 타계했다. 왜 하필, 코킨 박사가 아무 대답도 못하는 지금 이 글을 내보냈는가?” 


그렇다. 이 글도 한 사람의 관점으로 쓰인, 한 사람의 편견을 가득 품은 글이다. 우리는 조금 더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코킨 박사는 학자로서 아주 존경받는 교수로, 많은 사람들의 훌륭한 멘토였다. 엠아이티를 비롯한 여러 곳의 학자들이 “분노"의 글을 쏟아내기도 했다. (기사 보기: MIT challenges The New York Times over Book on Famous Brain Patient


2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서명한 성명서에서 “환자 H.M.에 대한 자료는 모두 잘 보관되고 있으며, 암 투병 중에도 코킨 박사는 연구보조원에게 계속해서 데이터를 잘 정리하고 보존하라고 했다”라고 했고 MIT에 이 환자에 대한 데이터 파일로 가득한 오피스가 존재할 정도로 “엄격하게 보관”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신문사가 책의 일부를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내보냈다고 비판했다. 성명서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또한 이 글이 상당히 “불쾌했고” 글에서 그려진 코킨 박사는 "자신들이 과학자, 동료, 친구로서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뉴욕타임즈 측의 해명과 저자 Dittrich의 대답이 이어졌다) 


내가 볼 때 가장 이성적으로 균형 잡힌 시선에서 쓴 글로 보이는 것은, 이 기사 첫 부분에서 연구원으로 소개된 Ogden 박사가 쓴 서평이다. (서평 원문보기: A Tale of Science, Ethics, Intrigue, and Human Flaws) Ogden 박사는 과학자와 저널리스트의 입장에서 모두 이 사건을 설명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면 이렇다. 연구하면서 정말로 쓸모없는 (실험 과정이나 코딩에서 실수가 있었던) 데이터들도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연구 프로젝트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문제다. 뒤섞인 순서에 1, 2, no, yes 등이 가득한 데이터라면,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돌아보았을 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코킨이 실제로 새 책의 저자 Dittrich에게 "데이터를 처분하겠다"고 말했다면, 그러한 "의미 없는" 데이터들을 의미했을 것이다. 또한 발췌문에 나온 것처럼 과학자들이 환자에게 “쉴 새 없이” 질문한 것은 절대 아니다. 코킨 박사의 연구팀 모두가 그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엄격하게 교육받았다. 그만큼 코킨 박사는 환자를 인격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렇다면 저널리스트, 책의 저자 Dittrich의 입장에서 설명하면 어떨까? 그 책에서 저자는 환자에 대한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들을 모두 서술했다. 심지어 그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환자 H.M.의 뇌 수술을 담당했던 외과의사의 판단에도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코킨 박사에 대한 내용은 책의 일부이다. 만약 뉴욕타임즈 매거진에서 다른 부분을 발췌했다면 이렇게 크게 “과학자들의 드라마”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나름대로 깊이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조사하여 사건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자료는 한계가 있었다. 그 당시 코킨 박사는 암투병 중이었고 뇌 조직의 “소유권” 다툼으로 이미 많이 지쳐있어서, 저자와의 인터뷰가 불가능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 소유권 분쟁에서 코킨 박사의 반대편에 있었던 연구원들은 그와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따라서 저자는 편향된 자료를 기반으로 글을 썼을 가능성도 있다.


좀 더 객관적으로 이 과학자와 저널리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Ogden 박사는 환자 H.M.에 대한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했다. 코킨 박사가 2013년에 쓴 환자 H.M.의 전기 (<Permanent Present Tense: The Unforgettable Life of Amnesic Patient, H.M.> - 한글 번역 <어제가 없는 남자, HM의 기억>)과 Dittrich의 새 책 <Patient H.M.: A Story of Memory, Madness, and Family Secrets>.


환자 H.M.에 대한 두 권의 책과 저자들. Compilation by Jenni Ogden, Psychology Today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혹시 이 모든 것이 코킨 박사를 향한 누군가의 서운함으로 비롯된 것이라면 더욱 안타깝다. 하지만 과학자가 당연하듯 지나칠 수 있는 연구 윤리를 다시 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읽고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다만, Ogden 박사의 말처럼 두 권의 책을 함께. 


딱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책 마케팅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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