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H.M.과 과학자들
이 글은 최근에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곧 출간될 책(<Patient H.M.: A Story of Memory, Madness and Family Secrets> by Luke Dittrich, Random House>)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기도 합니다.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브런치에 보관하고 싶어서 서둘러 데려왔고, 내용을 모두 담기에 너무 길어서 3편으로 나눌 생각입니다. 번역하면서 제 느낌을 담아 문장 구조를 좀 바꾸기도 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생략하였습니다 (생략 표시됨).
진리탐구를 추구하는 학자들이지만, 그들도 인간입니다. 사람 사회에서 생기는 충돌은 학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납니다. 이 글은 과학적인 사실보다는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 어디까지 진실로 믿어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곧 출간될 책의 마케팅 전략이며 한 과학자를 향한 저자의 편견이 많이 담겨있는 글일 수도 있습니다. 의문점과 안타까움이 남는 사건이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이라고 판단해서 옮겨봅니다.
원문: Luke Dittrich, "The brain that can't remember" The New York Times Magazine (published online Aug 3, 2016) http://www.nytimes.com/2016/08/07/magazine/the-brain-that-couldnt-remember.html
"현재 미국 대통령이 누군지 아세요?"
때는 1986년, 미국 MIT 임상연구센터에서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다. 남자의 이름은 헨리 모레이슨(Henry Molaison - "환자 H.M."이라 알려져 있다)이며 곧 60세에 접어든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운동복 바지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는 그는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해본다.
- 아니요, 모르겠어요
함께 앉아있는 여성은 뉴질랜드 출신의 방문 연구원 Jenni Ogden이다. 이 환자와 함께 앉아 질의응답하는 시간은 그녀가 MIT에서 경험하는 것 중 가장 황홀한 순간이다. 그만큼 그녀의 연구분야 신경심리학에서 이 환자는 길이 남을만한 중요한 사람이다. 록스타와 성인의 중간쯤 될까.
- 당신이 기억하는 가장 마지막 대통령이 누구인가요?
- 글쎄요 모르겠는데..
그는 잠시 멈추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 아이젠하워
아이젠하워는 1953년에 취임했다.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할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헨리의 세계는 그때 그 자리에 멈춰있다. 1953년, 그는 뇌의 아주 깊숙이 자리한 영역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의 뇌전증을 치료하기 위해 진행되었던 수술에서 그는 해마 (hippocampus), 편도체 (amygdala) 그리고 내후각피질 (entorhinal cortex)를 잃었다. 수술로 뇌전증은 치료되었지만, 그는 심각한 기억 상실증을 얻었고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30초 이상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후 헨리는 기억에 관한 연구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었고 그의 증상에 대해서 수많은 논문과 책이 출판되었다.
물론, 헨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그가 유명하다고 설명해도 언제나 잊어버렸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름이 공개되지 않고 이니셜 H.M.으로만 알려졌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몇 주전에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는 사실도 잊어버렸고 자신이 왜 휠체어에 앉아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헨리는 큰 귀와 큰 손을 가졌고 자주 큰 미소를 짓는 사람이었다. Ogden 연구원은 자신의 억양으로 자신이 어느 나라 출신인지 맞춰보라고 했다. 헨리가 영국, 캐나다, 스웨덴을 추측하자 이번에는 그녀가 몇 가지 옵션을 제시했다. 그러자 그는 뉴질랜드라는 정답을 골랐다. 그러자 그녀는 헨리에게 뉴질랜드에 대해서 아무거나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그는 놀랍게도 뉴질랜드가 두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것을 기억했다. 헨리는 크로스워드 퍼즐을 좋아하고 지리학 상식도 여전하다. 과학자들이 아주 흥미로워하는 부분이다. 헨리가 겪는 순간들에 대한 기억은 모두 뇌에 생긴 그 구멍 속으로 사라지지만, 언뜻 보기에 그는 거의 정상처럼 보였다. 과학자들의 언어로 그는 “순전히” 기억을 형성하는 것에만 문제가 생긴 것이다.
- 자, 이건 어떨까요. 지금 미국 대통령은 예전엔 영화배우였어요. 힌트가 되나요? 아주 뛰어나진 않았지만 배우였어요, 아주 오래전에. 그리고 지금은 대통령이지요. '레'로 시작하는데...
- 레이건
- 레이건! 아주 좋아요. 그가 영화배우였던 것을 기억하나요?
- 음.. 네. 기억해요
그리고 그들은 헨리가 기억하는 다른 영화배우에 대해서 더 이야기한다. Gary Cooper. Myrna Loy. Jimmy Stewart.
- Frank Sinatra도 기억하나요?
- 그렇죠, 그 사람은 노래도 많이 불렀어요. 영화에서나, 무대, 라디오, 레코드로.
- Frank Sinatra가 아직 살아있나요?
헨리가 잠시 망설인다가 대답한다 - 그건 모르겠어요.
과학자들은 헨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다. 누가 살아있고 누가 죽었고 등등. 누군가의 죽음만큼 큼지막한 사건들도 잊어버리게 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한 때, 헨리는 그가 이스트 하트포드에서 어머니와 산다는 것은 기억하지만,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왠지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사실 그는 그 당시 요양원에 살고 있었고, 부모님은 두 분 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후였다. 헨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알게 되고 슬퍼하지만, 그 죽음에 대해서 꾸준히 상기시키지 않으면 결국 그 사람은 천천히 그의 마음속에 다시 나타난다. 이렇게 누군가의 죽음과 부활이 반복되는 것은 분명 고통스러울 것이다. 한동안 헨리는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조그만 종이쪽지를 들고 다니기까지 했다.
이제 연구원이 연예인도, 친척도 아닌 살아있는 누군가에 대해서 묻는다.
- 수젠 코킨 (Suzanne Corkin)을 아나요?
- 음... 국회위원이던가요?
- 국회위원이요?
- 네.
수젠 코킨과 헨리 모레이슨은 그들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운명처럼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코킨은 하트포드 병원에서 태어났다 - 헨리가 뇌 수술을 받은 그곳이다. 그녀는 헨리의 수술을 담당한 의사와 가까운 이웃이었다. 그 의사의 딸과 어릴 적부터 아주 친했고 대학도 함께 진학한다. 코킨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캐나다 몬트리올로 떠나 맥길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곳에서 그녀의 지도교수는 Brenda Milner라는 신경 심리학자로, 코킨의 오랜 이웃이자 헨리의 뇌수술 담당 의사와 함께 환자 H.M. 에 대한 첫 논문을 저술했다. 그 이후 Milner가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동안 코킨이 그 연구를 이어받아 환자 H.M. 연구를 이끄는 리더 과학자가 되었다. 그녀의 과학적 업적의 대부분은 환자 H.M.을 담당한다는 엄청난 특권으로부터 만들어졌다. 그 환자를 연구해보고자 하는 과학자들도 그녀에게 문의해야 했다.
운명이든 아니든, 헨리와 코킨의 관계는 완전히 일방적이었다. 코킨은 몇십 년간 헨리를 연구하면서 그 환자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장단점과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도. 하지만 헨리는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수젠 코킨에 대해 단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수백 번을 만나도 헨리에게는 언제나 처음이었다. 몇 년간 만나면서 아주 작은 느낌이 조금씩 쌓이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헨리가 그녀의 이름과 국회의원의 이미지를 연관시켰다면, 이는 아마도 코킨이 그만큼 헨리의 삶에 지휘권을 잡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뇌과학의 역사에는 이와 비슷한 환자-연구자 사이의 일방적인 관계가 많이 등장한다. 지금 우리가 인간의 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 중에는 뇌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을 아주 면밀히 연구하여 이루어진 발견들이 상당히 많다. 사고로 인해 좌뇌 전두엽에 쇠막대가 뚫고 들어간 이후로 난폭한 성격으로 바뀌어버린 Phineas Gage. 그리고 왼쪽 상측두이랑(superior temporal gyrus)에 손상을 입어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버린 환자 (신경학자 베르니케의 환자로, 언어 이해를 담당하는 이 뇌 영역을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왼쪽 하전두회( inferior frontal gyrus)에 손상을 입은 또 다른 환자는 말을 듣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직접 언어를 구사해서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환자는 프랑스 외과의사 브로카가 연구하였고 언어 구사능력에 기여하는 “브로카 영역(Broca's area)”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희귀한 증상의 환자들 중에서도 헨리는 독보적이다. 우리가 뇌 기능을 이해하는데 그가 기여한 바는 이루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이전 과학자들은 기억을 담당하는 특정 영역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기억은 뇌 전반적으로 퍼져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헨리에 대한 첫 페이퍼가 이 관점을 뒤집었다. 그 페이퍼는 헨리의 기억상실증이 아주 심각하며, 이는 수술 후 해마와 중앙 측두엽(medial temporal lobe) 영역에 생긴 작은 손상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아주 명료하게 주장했다. 모두를 놀라게 한 발견이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첫 페이퍼가 출판되고 5년 후, 비슷한 레벨로 놀라운 또 하나의 논문이 출판되었다. 두 번째 논문은 헨리가 손의 움직임과 시각정보를 일치시켜야 하는 복잡한 행동 과제를 배우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비록 헨리는 자신이 지난 3일간 이 과제를 연습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연구 결과는 뇌에 적어도 두 개의 다른 기억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술 기억 (일화 기억, episodic memory -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 이야기 등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기억)을 담당하는 시스템, 그리고 절차기억 (procedural memory - 자전거 타기와 같이 "몸이 기억하는" 운동 기술을 배우는 것)을 담당하는 또 다른 시스템. 그리고 이 두 시스템은 각각 다른 뇌 영역과 연관되어 있다. 이 발견 역시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큰 기반을 마련했다. 헨리에 대한 연구로 출판된 이 두 페이퍼는 기억 연구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코킨이 연구를 이어받아 진행하면서도 놀라운 발견은 계속되었다. [한 문단 생략] 실험이 계속되고 데이터가 쌓이면서 헨리는 과학계뿐만 아니라 코킨의 커리어에도 큰 행운을 가져왔다. 그녀는 MIT 교수가 되어 자신의 연구팀을 만들었다. 그녀의 연구팀은 아주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주목받은 것은 헨리에 대한 연구였다. 코킨과 헨리가 처음 만났을 때 코킨은 20대의 젊은 대학원생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세계적인 대학의 저명한 신경과학 교수가 되었다. 헨리 역시 나이가 들었다. 그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헨리의 마지막 몇 년 간 사람들은 그에게 나이를 물었고, 그는 항상 추측하곤 했다. 30대? 40대? 50대? 그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아주 희미한 느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를 거울 앞으로 데려가 거울 속의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면,
- 나는 젊지 않군요.
그제야 그가 인정하곤 했다.
헨리는 2008년 어느 겨울날 오후에 세상을 떠났다. 그 다음날 아침 코킨은 MGH 병원의 부검실로 데려가 작은 창으로 두 명의 의사가 헨리의 두개골을 가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난 46년 간 헨리와 함께였다. 만날 때마다 그녀 자신을 헨리의 오랜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말이다. 그 순간은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작은 창을 통해 의사들이 조심스럽게 헨리의 뇌를 꺼내는 것을 보면서, 인생을 바쳐 연구한 헨리의 뇌가 단 한순간에 제거되었다는 사실이 코킨에게는 너무나 경이로운 일이었다.
코킨은 단 한 단어만이 그때의 느낌을 묘사할 수 있다고 했다. “Ecstatic” 황홀.
수젠 코킨과 헨리 모레이슨의 기묘한 인연이 그 날로 막을 내렸다고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의 기나긴 여정에서 가장 놀랍고 불편한 사건들이 더 이어질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