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뇌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드라마
지난 글: 기억하지 못하는 뇌 (1) - 환자 H.M.과 과학자들
*이 글은 최근에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곧 출간될 책(<Patient H.M.: A Story of Memory, Madness and Family Secrets> by Luke Dittrich, Random House>)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기도 합니다.
커버 이미지: 헨리 모레이슨(환자 H.M.)과 해마 (hippocampus) from http://www.slate.com/articles/video/video/2014/02/henry_gustav_molaison_brain_mris_find_new_insights_into_our_most_famous.html
지난해 가을,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MIT의 뇌인지과학과 건물 5층으로 올라가 수젠 코킨의 오피스를 방문했다. 코킨과 나는 내가 어릴 적부터 아는 사이였다. 코킨의 오랜 친구이자 헨리를 치료했던 외과의사의 딸을 기억하는가? 그분이 바로 나의 어머니다. 헨리의 뇌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가 내 할아버지다. 어머니의 저녁 파티에 코킨은 고정 게스트였다. 그래서 우리는 예전부터 많이 마주쳤다.
하지만 이번 만남은 달랐다. 나는 헨리에 대한 책을 마무리짓고 있었고, 코킨은 그 책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직접 그녀의 오피스를 방문한 그날까지 연락이 거의 닿지 않았다. 만약 코킨과의 개인적인 인연이 내게 특권을 줄 것이라 기대했다면 그건 오래전에 이미 포기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헨리에 대해서 책을 쓰려고 계획하고 알아보기 시작했을 때 헨리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코킨이 내민 MIT의 환자 비밀유지 조항에 따르면, 내가 “기억상실증 환자 H.M.”이라는 제목의 책을 쓰려면 내가 집필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대학에게 통제권을 넘겨야 했다. 헨리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다시 한 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시도했지만, 코킨은 인터뷰 요청을 계속해서 거절했다. 그녀 자신이 헨리에 대한 책을 집필하는 중이며 그녀의 편집인이 나와 이야기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했다.
그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몇 년간 먼지 쌓인 아카이브와 첨단 실험실을 들락거리며, 헨리와 함께 일했던 다른 연구원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신경외과 의사들과 만났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을 발견했다. 아주 놀랍고도 불편한 이 사실은, 아마도 할아버지가 헨리의 뇌에 두 구멍을 내고 전두엽을 들어내 아주 깊숙하고 미스터리한 뇌 영역을 제거하기도 전에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의학적 연구'와 '치료 목적의 시술' 사이의 애매한 경계에서 헨리의 수술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일찍이 명확해졌다. 하지만 내 글은 수술에 대한 책임보다는, 수술실을 떠난 이후에 헨리가 받은 대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가 연구의 소재로서 보낸 몇십 년간, 그리고 사망 이후의 8년 동안 말이다.
코킨은 오피스로 나를 안내해주었고 우리는 작은 원형 테이블에 함께 앉았다. 그녀는 78세였고 연구와 강의 직책에서 물러난 이후였다. 붉은빛을 띠는 짧은 머리와 빨간 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예전부터 체구가 왜소한 편이었지만 그 당시 심각한 병마와 싸우고 있던 그녀는 더욱 말라보였다. 그녀는 내게 프랑스산 초콜릿을 꺼내 주었다. 나는 그녀가 드디어 인터뷰에 응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시작하면서부터 이 인터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대답은 짧았고, 그녀의 중요한 업적을 이야기할 때조차 아주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할 뿐이었다.
인터뷰 초반에 나는 헨리와 처음 만났을 때에 대해 물었다. 자신의 인생을 건 연구의 주인공을 처음 만났을 때는 어떠했는지.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 기억이 안 나요. 하지만 뭐, 놀라운 일은 아니죠. 왜냐하면 지금 묻는 것이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에 대한 것이라면, 그 기억들은 대체로 오래 지속되지 않아요. 알다시피 예외는 있죠. 예를 들어 누가 강간을 당했을 땐 그 사람은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모두 기억하겠죠. 하지만 그렇게 감정적인 기억도 아마 마음속에서 여러 번 반복된 이후의 기억일 겁니다. 마음속으로 여러 번 반복하고 의미를 부여하죠.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난 헨리와 처음 악수하던 그때가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기억난다고 해도 그건 아마 사실이 아니라 픽션일 겁니다.
다른 인터뷰 질문들은 대부분 더 최근 사건들이었다. 구체적으로, 나는 코킨에게 헨리의 뇌를 두고 벌어진 비밀스러운 보호권 전쟁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녀는 그 전쟁에서 이겼다. 기억에 관한 과학연구의 미래와 과거에 대해서 중대한 의미를 부여할만한 전쟁이다.
내가 그 주제를 꺼냈을 때, 코킨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 난 그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군요.
- 아무것도 말씀 안 하실 건가요? 저는 그저..
코킨이 내 말을 끊었다.
- 그렇겠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2013년 3월, 맨해튼의 화려한 회의실. 네 개의 주요 연구기관 - MIT, MGH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 MIT 근처에 위치한 병원) , UC 데이비스, UC 샌디에고 - 과 연구비를 지원하는 두 개의 큰 재단 - Dana 재단과 Simons 재단 - 에서 온 과학자들, 행정담당자들을 포함해서 12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모임의 주인공은 수젠 코킨과 제이코포 애니스(Jacopo Annese)라는 남자였다.
애니스는 신경해부학자였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카리스마와 출중한 외모를 가진 그는 그 당시 47세였고, 신경해부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에 요리사로 일했다. 그는 요리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신경 조직학 시술은 그 온도와 횟수가 정밀하게 조율되어야 하고 맘대로 수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베이킹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가 미국에 온 지 20년이 다 되어가던 즈음이었다. 로마대학교에서 다트머스 대학, UCLA를 지나 자신의 연구팀을 시작한 UC 샌디에고까지 왔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을 Brain Observatory, "뇌 관측소"라고 불렀다.
애니스의 연구팀은 ‘세계에서 가장 유용한 뇌 컬렉션을 만들겠다’는, 단순하면서도 야심 찬 목표를 추구했다. 그 유용성이란 순전히 많은 수의 뇌를 보관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에는 감히 겨룰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뇌 보관소들이 많이 있다. 애니스의 연구팀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뇌를 구해서 자신들이 개발한 방법으로 보관하고자 했다. 코킨은 애니스 연구팀의 방법이 마음의 들었다. 그래서 2008년 헨리의 뇌가 두개골에서 분리되자마자 작은 보관함에 담아 보스턴 공항에서 애니스 팀으로 보냈다.
헨리의 뇌가 샌디에고에 도착했고 애니스는 환자 H.M.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헨리의 첫 번째 기일에 그는 연구팀이 했던 일들을 생중계했다. 장장 53시간에 걸쳐 헨리의 뇌를 70 마이크론 (100만 분의 1 미터) 두께의 슬라이스 2401개로 나누는 과정이었다. 그 생중계는 40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과학 저널리스트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 시술이 있고 몇 달 후, 코킨은 헨리의 뇌를 돌려받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뇌의 일부, 애니스가 만든 데이터 일부만을 원했다. 애니스는 그의 작업에 대해서 확실하게 인정받기 전에 데이터를 보내는 것이 꺼림칙했다. 그래서 코킨 연구팀이 요구한 것의 전부가 아닌 일부만 보내주었다. 아직 그의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고, 엄청나게 투자한 만큼 확실하게 마무리짓고 싶었다. 애니스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코킨의 요구는 더 심해졌다. 결국 애니스는 헨리의 뇌에 대한 그의 분석을 바탕으로 논문을 준비했고, 코킨에게 그 논문에 기여할 것을 부탁했다. 그때부터 그들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킨의 도움 없이 애니스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논문을 제출하자마자 뉴욕에서의 회의가 소집된 것이다.
다시 회의실. 자기소개를 마치고 애니스가 헨리의 뇌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발표했다. Simons 재단의 생명과학분야 대표 Gerald Fischbach가 애니스에게 뇌의 보호권 (혹은 소유권)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2주 전 MIT가 UC 샌디에고에 헨리의 뇌 2401 조각을 모두 돌려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 나는 이 뇌를 소유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애니스가 대답했다. 그는 그 뇌가 궁극적으로 어디에 보관되든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자신과 그의 연구팀이 이 뇌를 연구하는데 쏟은 시간과 노력, 자본에 대해서 확실하게 인정받기를 원했다. 이로써 헨리의 뇌가 어디에 보관될지에 대한 문제는 금세 해결될 듯했다.
- 그래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요? 이 뇌가 어디에 보관되든 별로 상관이 없다면, 지금 당신이 바로 결정을 내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을 원하십니까?
그때 코킨이 말했다.
- 이것은 위원회에서 내릴 결정이 아닙니다. 이는 뇌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입니다. 그건 MGH와 MIT입니다. 우리의 결정은 그 뇌를 데이비드의 실험실로 보내는 겁니다.
여기서 데이비드는 UC 데이비스에서 MIND 연구소를 이끄는 David Amaral을 의미했다. MIT와 MGH는 헨리의 뇌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지는 않지만 그 뇌를 MIND 연구소로 옮기기를 요청했다.
- 어떠한 이유로 당신들이 그 뇌를 책임진다고 생각하십니까?
회의장이 물었다. 코킨이 대답했다.
- 우리가 뇌 기증 동의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킨은 한 문서의 복사본을 꺼내 테이블에 전했다. 그 문서는 헨리와 가까운 친척이 헨리가 사망하기 14년 전, 그의 뇌를 MIT와 MGH에 기증하겠다고 동의한 서류처럼 보였다.
그 기증 동의서로 뇌의 소유권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는 듯했지만, 위원회 분위기는 또다시 살벌해졌다. 회의 안건 중 하나였던 애니스의 네이처 논문이 문제가 되었다. 코킨은 그 논문이 출판되는 것을 반대했다. 애니스는 좋게 해결하자는 뜻으로 코킨의 이름을 공동저자로 포함하겠다고 제안했다.
코킨은 논문에 이름을 넣는 것으로 그 논문이 출판될만한 논문인지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 그 논문은 다시 써야 합니다. 진정으로 과학적인 논문으로 말입니다.
- 그럼 그 논문이 진정으로 과학적인 문서가 아니란 말입니까?
애니스의 질문에 코킨은 완고하게 답했다.
- 그것은 정교하게 작성된 과학 논문이 아닙니다.
그러자 회의장이 코킨에게 말했다 - 그 논문은 누군가가 이미 읽고 리뷰했습니다.
코킨 연구팀의 한 사람이 설명했다 - 그러니까 우리가 하고싶은 말은, 애니스의 논문은 최종적인 해부학적인 논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코킨이 반복했다 - 네, 아니고 말고요. 아닙니다.
회의장이 되물었다
- 복잡하군요. 애니스 당신이 과학적으로 판단했을 때 그 논문이 출판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고, 검토자들이 동의했습니다. 그 논문이 최종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부분은 수젠 코킨 당신과 당신의 연구팀, 그리고 애니스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코킨이 답했다 - 그 논문은 그저 멜로드라마일 뿐입니다.
애니스도 지지 않았다 - 논문 검토자들도 과학적으로 타당하다 평가했습니다. 수젠, 부탁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논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 당신은 그를 “헨리”라고 불렀어요! 아니, 너무 가볍잖아요. “수술 중, 헨리는..”
- 검토자는 우리 데이터를 “아주 훌륭하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언쟁은 30분 후 회의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추후에 모든 참가자들에게 회의록이 전달되었다. 코킨이 애니스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포함될 것이며 헨리의 뇌는 궁극적으로 MIND 연구소의 David Amaral이 보관하게 될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뇌 조직을 언제 옮겨갈지는 주고받는 연구팀들이 결정하는 것으로 넘겼다.
코킨은 재빨리 그 회의록을 수정했다. UC 샌디에고는 MIT가 선정한 과학자들에게 헨리의 뇌 조직을 모두 전해줄 것이며, 그 뇌 조직에 대한 MIT와 MGH의 소유권을 다시 한 번 확실히 했다.
적어도 뉴욕 회의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애니스의 논문에 코킨이 공동저자로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는 논문의 수정 작업에도 코킨이 참여해야 함을 의미했다. 코킨과 애니스는 서늘한 침묵을 깨고 논문 수정 작업을 의논해야 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밝혀졌다. 회의에서 확실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코킨이 이 논문에 대해서 가졌던 진짜 불만은 따로 있었다. 애니스의 가벼운 문체 때문이 아니었다. 애니스가 헨리의 뇌에서 발견한 무언가가 코킨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애니스 연구팀은 헨리의 전두엽에서 손상을 발견했다. 좌뇌에 위치한 그 손상 은분명 사람의 도구로 생긴 자국이었다. 애니스는 이 손상이 헨리의 뇌 수술(할아버지가 시술하셨던 수술) 중 중앙 측두엽에 닿기 위해 전두엽을 들어내면서 생겼다고 주장했다. 이 전두엽 손상에 대해서는 아무도 리포트하지 않았고, 중대한 발견이었다. 리뷰어의 말을 빌려서, “환자 H.M.에 대한 대부분의 논문이 전두엽 기능은 완전하다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지난 60년 동안, 뇌의 손상은 오직 중앙 측두엽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또 다른 손상의 존재는 중앙 측두엽의 기능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코킨과 애니스가 함께 논문을 수정하면서, 코킨은 전두엽 손상에 대한 모든 부분을 삭제했다. 그리고 애니스에게 “전두엽 손상은 자기공명 영상(MRI)이나 뇌 사진에서 모두 나타나지 않았어요. 잘못 판단할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연구원들에게도 “전두엽 쪽 손상은 헨리의 사망 후 뇌를 보관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우리 팀과 내가 증거를 숨기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애니스 역시 헨리가 살아있을 때 찍은 MRI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답했다. 코킨의 주장과는 달리, 애니스의 자료에는 전두엽 손상이 확실하게 보였다. 사망 후에 생긴 손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애니스는 전두엽을 부분적으로 더 보여주면서 이 손상은 뇌 수술을 담당한 의사가 사용한 “납작한 뇌 스페츌러”와 같은 도구로 인해 생긴 것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애니스는 코킨에게 “우리는 1992-93년 MRI 자료들에서도 그 손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손상은 이전에 발표되지 않았으므로, 이 환자에 대한 새로운 발견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왜 당신이 거절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피와 살입니다. 중앙 측두엽이 아닌 영역에 분명 손상이 있고, 발표되어야 합니다. 이걸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논문은 새로운 조사와 토론을 끌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회의에서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전두엽 손상과 논문의 다른 부분에 대한 논쟁은 더욱 신랄해졌다. 중재인이 회의를 열어서 겨우 합의가 이루어졌다. 전두엽 손상은 논문에 그대로 발표하되, 애니스의 논몬 초고에서 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는 않는 것으로 말이다.
얼마 후 UC 샌디에고는 뇌에 대한 보호권을 포기하는데 동의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애니스는 작은 부분이라도 그 뇌를 계속 보유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었고 화가 나기도 했다. 뇌 조직이 옮겨지고 나서 애니스는 UC 샌디에고에 사직서를 내며 이렇게 썼다. “유감스럽게도, 이 것이 H.M. 프로젝트가 겪은 여러 가지 변화에 대해 정당하게 설명하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코킨의 오피스로 돌아오자. 나는 그녀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헨리의 뇌를 두고 벌인 싸움에서 그녀의 입장이 궁금했다.
- 난 말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뇌 기증 동의서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럼 말 다했죠.
- 아뇨 저는 그냥 궁금합니다. 그 문서가 정확히 무엇..
코킨이 말을 끊었다.
- 난 문서에 대해서 말할 수 없어요.
3편에서 계속됩니다.
원문: Luke Dittrich, "The brain that can't remember" The New York Times Magazine (published online Aug 3, 2016) http://www.nytimes.com/2016/08/07/magazine/the-brain-that-couldnt-remembe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