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낯섦이 먼저 깨어나는 밤

by Helia

숲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다음 날을 넘어선 무언가가 이미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두꺼비는 그것이 소리로 오지 않는다는 걸 먼저 느꼈다. 바람은 분명 지나갔지만 잎사귀는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지 않았고, 공기는 늘 머물던 자리에서 미묘하게 비켜나 있었다. 숲의 호흡은 이어지고 있었으나, 그 간격이 조금 어긋나 있었다. 마치 누군가 숲의 박자를 흉내 내다, 한 박자 늦게 숨을 들이마신 것처럼.
두꺼비는 몸을 낮췄다.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겨울을 지나온 몸은 설명보다 먼저 반응하는 법을 기억하고 있었다. 위협이라 부르기엔 이르고, 지나치기엔 분명한 기척. 그 어중간한 지점에서 감각은 조용히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옆에서 작은 두꺼비는 잠들어 있었다. 숨결은 고르고, 밤의 리듬과 잘 맞아떨어졌다. 두꺼비는 그 숨을 잠시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호흡이 안도보다는 묘한 긴장을 불러왔다. 겨울 동안 평온은 늘 잠깐 머물다 사라졌고, 오래 지속되는 고요는 오히려 낯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달빛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어 바닥의 이끼를 젖은 은빛으로 적셨다. 그 빛의 경계가 방금 전과 달랐다. 아주 조금, 눈치채지 못할 만큼 옮겨져 있었다. 두꺼비는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이해하려는 순간, 감각은 늦어진다. 그는 그저 받아들였다. 지금 이 숲은, 조금 전의 숲과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때 뿌리 너머에서 흙이 눌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소리라 하기엔 너무 작았고, 진동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선명했다. 두꺼비의 등 피부가 아주 잠깐 따끔거렸다. 심장은 크게 뛰지 않았다. 대신 박동 사이의 틈이 달라졌다. 시간이 한 박자 늦춰진 듯한 감각이었다.
다시 한번.
그리고 또 한 번.
그 기척은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 머문 채, 존재만을 남겼다.
두꺼비는 고개를 아주 천천히 돌렸다. 나무뿌리의 그늘 아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숲에서 가장 확실한 것들은 대개 시야 밖에 머문다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작은 두꺼비가 미세하게 몸을 뒤척였다. 두꺼비는 반사적으로 앞발을 뻗어 그쪽에 닿았다. 막지도, 끌어당기지도 않은 채 가만히. ‘지금은 움직이지 마’라는 말보다 더 정확한 신호였다. 작은 두꺼비는 잠결에 그 접촉을 느끼고 다시 숨을 골랐다.
두꺼비는 공기의 냄새를 다시 읽었다. 습기와 흙내, 이끼의 향 사이로 낯선 결이 섞여 있었다. 새롭다기보다 오래된 냄새였다. 계절의 냄새도, 숲의 냄새도 아닌.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이제야 표면으로 스며든 흔적 같은 향.
그 냄새는 기억을 불러오지 않았다.
대신 몸을 먼저 굳게 만들었다.
두꺼비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경계하는 것은 ‘무엇’이 아니라 ‘설명 없는 변화’라는 것을. 겨울의 위험은 분명했다. 차갑고, 날카롭고,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기척은 달랐다. 숲이 새로운 규칙을 살짝 보여주고, 아직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밤은 늘 시간을 숨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눌림은 멎었다. 공기는 제자리를 찾았고, 달빛의 경계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숲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숨을 고르고 있었다.
두꺼비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풀리지 않는 편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런 밤에는 느슨해지는 순간이 가장 위험해진다. 그는 작은 두꺼비의 숨결을 다시 확인했다. 고르고, 살아 있는 리듬. 그 사실 하나가 그를 붙들었다.
새벽은 조용히 왔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런 허락도 구하지 않고.
어둠의 밀도가 옅어지고, 공기의 온도가 한 겹씩 바뀌기 시작했다. 숲은 밤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대신 얇게 덮어두고, 다른 색을 위에 올렸다. 계절은 늘 그렇게 지나간다. 지우지 않고, 겹치며.
작은 두꺼비가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그는 숲이 아니라 두꺼비를 먼저 보았다.
그 시선 하나로, 두꺼비는 확신했다.
어젯밤의 기척은 꿈이 아니었다.
둘은 말없이 뿌리 아래를 나왔다. 아침의 숲은 더 많은 소리로 가득했다. 새가 울었고, 벌레가 움직였으며, 물은 어제보다 또렷하게 흘렀다. 그러나 그 소리들 사이에서, 두꺼비는 어젯밤의 냄새를 다시 맡았다. 희미하게, 거의 사라질 듯하게. 그래도 분명히.
작은 두꺼비가 걸음을 멈췄다. 이번엔 풀숲이 아니라 흙 위였다. 그곳에는 흔적이 있었다. 발자국처럼 보이지만, 발자국과는 다른. 걸었다기보다 미끄러지듯 스친 자국.
두꺼비는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오래 보는 순간, 마음이 먼저 이야기를 만들 것 같아서였다. 그는 그저 흔적의 방향만 확인했다. 흔적은 숲의 안쪽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어제보다 더 깊은 곳. 어제는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었던 방향.
두꺼비는 작은 두꺼비를 바라보았다. 작은 두꺼비도 그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은 있었지만 발을 묶지 않았다. 이제 두려움은 ‘멈춰’가 아니라 ‘조심해’에 가까웠다. 그 차이는 작았지만, 분명했다.
두꺼비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필요 없었다.
지금 이건 선택이 아니라, 흐름이었다.
그들은 천천히 그 방향으로 걸었다. 햇빛이 숲 바닥에 내려앉았고, 이끼는 더 짙은 색을 띠었다. 풀잎 끝에 남은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숲은 아주 작은 소리를 냈다. 마치 ‘여기’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리고 그 ‘여기’의 끝에서,
두꺼비는 분명히 느꼈다.
새로운 계절은 따뜻함만으로 오지 않는다.
새로운 계절은 먼저 아주 작은 낯섦으로 몸을 깨우고,
그 낯섦이 가시기 전에
다음 낯섦을 데려온다.
숲의 안쪽으로 한 발 더 들어섰을 때, 바람이 갑자기 멎었다. 잎사귀가 멈추고, 소리가 낮아졌다. 숲 전체가 숨을 참은 듯한 정적. 그 속에서 두꺼비는 어젯밤의 감각을 다시 느꼈다.
이번에는 더 분명했다.
그것은 소리도, 냄새도 아니었다.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처음부터 이 숲의 것이 아니었다.
작은 두꺼비가 아주 늦게,
그러나 확실하게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그들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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