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남겨지는 것의 온도

관측되지 않는 잔여

by Helia

다음 것을 집어 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 버티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그 시선이 물러났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다만 방 안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느슨해졌을 뿐이었다. 해윤은 펜을 내려놓고 한동안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에 남아 있던 떨림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림은 늘 이렇게 몸에 남았다. 끝났다는 신호가 오기 전까지, 시간은 완전히 지나가지 않았다.

노트의 마지막 줄은 미완으로 남아 있었다. 문장은 방향만 남긴 채 멈춰 있었고, 해윤은 그 끝을 채우지 않았다. 지금은 결론을 적을 때가 아니었다. 결론은 늘 나중에 도착했고, 그때쯤이면 이미 많은 것이 빠져나간 뒤였다. 그녀는 노트를 덮고 의자를 밀었다. 바닥을 긁는 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크게 울렸다. 방 안의 모든 것이, 소리를 확대해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휴대폰 화면은 조용했다. 알림도, 진동도 없었다. 해윤은 안심하지 않았다. 이제 침묵은 안전을 의미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보고 있었고, 굳이 드러내지 않기로 선택했을 뿐이었다. 관측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이동할 뿐이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겨울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계절의 공기였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온도. 해윤은 그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숨이 폐를 채우는 감각이 분명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일만큼은 아직 자동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몸이 자기 말을 듣고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USB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손을 뻗어 그것을 집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닿았다. 이전보다 무게가 느껴졌다. 물건이 무거워진 건 아니었다. 그 안에 쌓인 시간의 방향이, 손을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노트북을 켜자 화면이 켜지는 데 평소보다 약간 더 시간이 걸렸다. 오류 메시지는 없었다. 다만 화면이 완전히 자리 잡기 전, 아주 짧은 흔들림이 있었다. 해윤은 그 지연을 놓치지 않았다. 개입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됐다. 직접적인 접속이 아니라, 환경의 미세한 변형으로.

USB를 꽂자 자동 실행 창은 뜨지 않았다. 대신 아무 설명 없는 폴더 하나가 열렸다. 파일 목록은 이전과 같았다. 날짜로 구분된 음성 파일들. 일부는 이름이 있었고, 일부는 숫자만 남아 있었다. 해윤은 가장 오래된 파일 위에 커서를 올려두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 손이 잠시 멈췄다.
듣는다는 행위는 언제나 선택이었다. 그리고 선택은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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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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