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지 못한 편지가 마음에 남아 있을 때
윤희에게를 보고 나서 한동안 말을 아꼈다. 슬퍼서도, 감동해서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말로 옮기는 순간 이 감정이 닳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울라고 등을 떠밀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묻는다. 정말로 끝난 게 맞느냐고, 정말로 다 지나간 시간이냐고. 그래서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극장을 나서면서도 마음 어딘가에 아직 봉투가 덜 접힌 편지 하나가 남아 있는 느낌을 안고서.
〈윤희에게〉는 큰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사랑의 재회도, 극적인 고백도, 삶을 바꿔놓는 결단도 없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이미 지나간 감정의 잔향이다. 불꽃이 사라진 뒤에도 손끝에 남아 있는 미열처럼, 오래 전의 감정이 여전히 현재의 윤희를 데우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사랑이 지나간 뒤에도 사람 안에 남아 있는 무엇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윤희는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단정한 말투, 절제된 표정, 불필요한 설명을 하지 않는 태도. 김희애의 얼굴에는 늘 정리된 삶의 결이 깔려 있다. 하지만 그 정리는 평온의 결과가 아니라, 오랫동안 감정을 눌러두며 살아온 시간의 흔적처럼 보인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면, 그것은 성격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 된다. 윤희는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괜찮다고 말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 사실은 괜찮지 않아도 말하지 않는 사람.
그런 윤희의 일상에 도착한 한 통의 편지는 조용하지만 결정적이다. 이 편지는 누군가를 다시 만나기 위한 초대장이기보다, 윤희 스스로에게 보내진 질문처럼 느껴진다. 정말로 잊었느냐고, 정말로 끝났다고 믿느냐고. 영화는 이 편지를 통해 과거를 소환하지 않는다. 대신 현재를 흔든다. 이미 지나갔다고 스스로를 설득해 온 시간들이 사실은 그대로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는 사실을, 윤희 역시 이제는 부정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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