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그녀의 이름

by Helia

부서진 샹들리에 아래,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비단 드레스를 감싼 먼지와 피비린내가 섞여 공기마저 무겁게 짓눌렀다.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꿰뚫었다.
하랑—전생에서 내가 죽였고, 동시에 지키고 싶었던 이름.

나는 숨을 삼켰다. 심장이 천천히, 그러나 무겁게 뛰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마치 오래된 기억 위를 밟아 오는 듯, 느릿하지만 확실했다.
발목까지 드리운 붉은 끈이 바닥을 스치며 끊임없이 자극적인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전생의 혼례날 울려 퍼지던 북소리와 겹쳐졌다.
심장 깊은 곳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세현.”
그녀가 현생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오래 묻어둔 전생의 그림자가 무너져 내렸다.
현조—그때의 내가, 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녀가 부른 건 분명 ‘세현’이었지만, 내 귀엔 ‘현조’로 들렸다.
이름 하나가 시간과 생을 무너뜨릴 줄 누가 알았을까.

“너는… 여전히 그 얼굴이구나.”
그녀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휘어졌다.
비웃음인지, 슬픔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손끝에 스치는 공기가 차가웠다.
그녀가 다가올수록 나는 숨이 가빠졌다.
폐 속까지 스며든 먼지와 피 냄새가 나를 옥죄었다.

“하랑.”
마침내 내가 그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동공이 작게 떨렸다.
“그래. 드디어 부르네. 내가 악몽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길 바랐던 이름을.”
그녀의 목소리는 오래된 서원의 무게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서원 속엔 분노와 애착이 함께 뒤엉켜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전생에서 그녀를 죽였을 때, 내 손에 전해진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피로 물든 혼례날, 붉은 천 위에 쓰러진 그녀의 몸, 그 위로 떨어지던 내 그림자.
그 모든 게 한 번에 되살아났다.

“이번 생에선, 네 심장이 내 손에서 멈출 거야.”
그녀가 속삭였다.
살을 파고드는 듯한 목소리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한 발 물러섰지만, 이미 벽에 닿아 있었다.
달아날 길은 없었다.

그녀의 손이 내 가슴 위로 올라왔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동시에,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가 몰려왔다.
심장이, 전생과 현생의 틈에서 동시에 뛰고 있었다.
그 틈새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번에도 나는… 그녀를 죽일 수 없을 거라는 걸.

“다시 시작하자, 현조.”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칼끝처럼 날카로웠다.
“이번엔 네가 악몽 속에서 살아남길 빌어.”

수,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