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탑의 문, 끝나지 않은 이야기

어둠 너머의 시작

by Helia

“지워진다… 지워진다…”
바람은 저주처럼 귓가에 파고들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두 녀석은 서로의 손을 움켜쥔 채, 갈라진 바다 위의 길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나아갔다. 발밑의 유리 같은 수면은 삐걱거리며 울렸고, 금이 갈라질 때마다 그림자 손들이 튀어나와 발목을 잡으려 했다.

돼지바의 눈동자가 두려움에 흔들렸다.
“고래밥… 만약 우리가 진짜 지워진다면?”
잠시 흔들리던 고래밥은 이내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쓰면 돼.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아.”

멀리서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등대처럼 빛을 깜박였지만, 가까워질수록 그 빛은 희망이 아니라 심판처럼 차갑게 내리 꽂혔다. 탑은 눈이 없는 거대한 얼굴 같았고, 표면은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며 검은 액체를 뱉어냈다. 그 액체는 땅으로 스며들어 바다의 균열을 더 벌려놓았다.

“저게… 탑이야?” 돼지바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응. 그리고 우리가 풀어야 할 다음 퍼즐의 판이기도 해.” 고래밥은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탑에 가까워질수록 발밑의 길은 더 심하게 흔들렸다. 돼지바는 순간 손을 놓고 싶을 만큼 두려웠다. 그림자 손이 발끝을 끌어내리는 순간, 고래밥이 세차게 그의 손을 다시 끌어올렸다.
“놓지 마! 지금 놓으면… 진짜 끝이야.”

드디어 탑의 문 앞에 닿았을 때, 뒤쪽의 바다 길은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두 녀석이 서 있는 조그만 땅만 남아 끝없는 어둠 위에 매달려 있었다.

그때, 탑의 거대한 문이 스스로 열렸다. 빛은 없었다. 대신 끝을 알 수 없는 그림자가 흘러나와 두 녀석을 휘감았다. 그림자 속에서 수많은 목소리가 겹쳐 속삭였다.
“퍼즐은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조각은 이곳에 있다…”

돼지바는 고개를 저으며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아직도 더 있어? 그럼, 우리가 맞춘 건 대체 뭐였던 거야…?”
고래밥은 숨을 고르고 그의 눈을 바라봤다.
“시작일 뿐이야.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잖아.”

탑의 문 안쪽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그림자가 걷히자, 빛과 어둠이 뒤엉킨 낯선 세계가 어렴풋이 드러났다. 그곳은 길도 없고 하늘도 없었지만, 퍼즐처럼 흩어진 빛의 조각들이 허공에 떠올라 새로운 무늬를 이루려 하고 있었다.

“가자.” 고래밥이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돼지바는 두려움 속에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바람이 또 한 번 속삭였다.
“문 안으로 들어서면, 너희는 더 이상 예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새로운 장이 시작된다.”

두 녀석은 탑의 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모든 빛이 꺼지고 어둠이 삼켜왔다.

그리고—
낯선 눈 하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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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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