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문
심장은 뛰고 있었지만, 세상은 멎어 있었다.
박동이 귓가를 때릴 때마다 공기가 일그러졌다.
하랑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현조, 이건 현실이 아니야.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
눈을 떴다. 그러나 보이는 건 낯선 어둠이었다.
사무실은 사라지고, 발밑엔 바위 계단이 펼쳐져 있었다.
등대의 불빛이 꺼진 채, 어둠 속에서 심장이 두 겹으로 뛰었다.
내 것이 아닌 또 하나의 박동.
하랑의 심장이, 내 안에서 미세하게 살아 있었다.
공기 속에 라벤더 향이 번졌다.
그 향기와 함께 누군가의 손끝이 내 뺨을 스쳤다.
그건 기억의 체온이었다.
하랑이 서 있었다.
빛에 녹아든 실루엣, 그러나 표정은 슬펐다.
“현조, 여긴 심연이야. 아직 형의 시간이 끝나지 않았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등대의 그림자가 일그러지며 누군가가 그 속에서 걸어 나왔다.
형이었다.
그의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심장은 기억을 속이지 않아. 넌 여전히 내 피로 뛰고 있지.”
그 한마디에 등대가 진동했다.
빛이 꺼지고, 계단이 부서졌다.
나는 하랑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그러나 손끝에서 피가 번졌다.
그 피가 등대 벽을 타고 흘러내리며 글자를 그렸다.
― 죽음은 끝이 아니다. 손이 심장을 대신한다.
문장이 피처럼 살아 움직였다.
그 빛 속에서 형의 그림자가 다시 솟구쳤다.
“사랑을 택해도, 결국 너는 나를 반복해.”
그의 말이 끝나자, 하랑의 몸이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 돼!”
나는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손끝이 닿은 건 공기뿐이었다.
피가 손바닥에서 흘러내렸다.
그 붉은 자국이 심장의 모양으로 번졌다.
가슴이 뜨겁게 일렁였다.
두 개의 심장이 부딪히며 서로를 밀어냈다.
하랑의 기억이, 내 심장을 덮쳤다.
“현조, 이번엔 나를 놓지 마.”
하랑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녀의 체온이 손끝으로 돌아왔다.
빛과 어둠이 뒤엉켜 등대가 붕괴했다.
그 안에서 형의 웃음이 퍼져 나왔다.
“넌 아직 꿈속이야. 깨어날 수 없지.”
세상이 뒤집혔다.
하랑의 손이 내 가슴에 닿는 순간, 불꽃이 터졌다.
피가 아닌 빛이 터져 나오며, 그녀의 형체가 흩어졌다.
“현조… 기억해. 심장은 멎어도 사랑은 남아.”
그녀의 목소리가 바람에 녹았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에는 하랑의 연구 파일이 열려 있었다.
그 마지막 줄이 내 시야를 덮었다.
> 프로젝트명: 두 번째 심장.
상태 — 의식 혼합. 현실 인식 불안정.
모니터 불빛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그 속에서 하랑의 실루엣이 웃었다.
“현조, 그건 악몽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야.”
그 말과 함께 심장이 멎었다.
그러나 몇 초 뒤, 또 하나의 박동이 울렸다.
그건 내 심장이 아니라, 그녀의 것이었다.
“하랑…?”
부르려는 순간, 화면이 터져나가며 어둠이 방 안을 뒤덮었다.
그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결말은 네 손에 달렸어.”
숨을 들이마셨다.
심장은 다시 뛰었다.
하지만 그 리듬은 거꾸로였다 —
시간을 거슬러, 심연의 문으로 향하는 맥박.
그리고 그 박동 속에서 들려온 마지막 속삭임.
“현조, 깨어나면 모든 게 다시 시작돼.”
빛이 꺼졌다.
어둠이, 마지막 악몽처럼, 다시 나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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