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두 번째 심장

심장의 기억

by Helia

심장이 뛰었다. 두 번, 세 번. 그러나 그건 내 심장이 아니었다.
차갑던 가슴속에서 낯선 박동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건 오래전, 조선의 피비린내 속에서 하랑이 찔러 넣은 칼끝의 기억이었다.
죽음으로 멎은 줄 알았던 그 심장이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책상 위에 흩어진 서류가 바람도 없이 흔들렸다.
그중 한 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잉크가 번진 문장이 나를 붙잡았다.
― 죽음은 끝이 아니다. 손이 심장을 대신한다.
등대의 벽에 새겨졌던 그 글귀가, 이번엔 내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숨을 들이켰지만, 공기가 무겁게 목을 눌렀다.
가슴 깊은 곳에서, 피 아닌 빛이 번졌다.
살아 있는 심장이 아니라, 기억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하랑의 이름이 들려왔다.
“현조… 기억나?”

순간, 눈앞이 갈라졌다.
빛과 어둠이 뒤엉키며, 시간의 결이 흔들렸다.
현생의 사무실은 사라지고, 전생의 등대가 나타났다.
하랑이 서 있었다. 피투성이의 옷자락, 그러나 미소는 따뜻했다.
그녀의 손끝이 내 뺨을 스쳤다.
살결은 차가웠지만, 그 냉기가 이상하게도 익숙했다.

그날, 그녀는 나를 찔렀다.
하지만 그 눈빛엔 증오가 없었다.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 속엔 사랑이 남아 있었다.
그 사랑이 그녀를 망가뜨렸고, 나를 살렸다.
나는 이제야 그 진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죽이려던 게 아니라, 형의 계략 속에서 나를 구하려 했던 것이다.

“하랑, 그때 넌 울고 있었지.”
내 말에 하랑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의 입술이 열렸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귓가에 형의 웃음이 스며들었다.
“복수냐, 사랑이냐.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하겠지.”

가슴이 불타올랐다.
그의 목소리가 심장을 파고들었고, 하랑의 그림자가 내 품으로 안겼다.
두 개의 심장이 동시에 뛰었다.
피가 아닌 기억이, 사랑이, 시간 그 자체가 나를 덮쳤다.
형의 그림자가 균열 속으로 스며들며 속삭였다.
“그 심장은 내 것이다.”

“아니.”
나는 낮게 대답했다.
“그건 네가 훔친 죄의 심장이야. 하지만 지금은 사랑의 심장으로 다시 뛴다.”

하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의 손끝이 내 가슴에 닿았다.
순간, 불꽃같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심장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피로 맺힌 약속이, 빛으로 다시 이어졌다.

모든 게 잠시 멈췄다.
숨이 가라앉고, 세상이 조용해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현조, 이번엔 다른 결말을 만들어.”

그 말이 남기고 간 여운이 가슴에 새겨졌다.
두 번째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그 박동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하랑의 시간, 나의 죄, 그리고 형의 잔영이 한데 섞여 있었다.

창밖의 새벽빛이 다시 찾아왔다.
빛 아래 내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
그 속에서 또 하나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하랑의 손이 내 그림자 위에 닿았다.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이번 생에서는 네가 원한 세상, 내가 끝까지 볼게.”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그건 사랑의 부활이자, 새로운 시작의 박동이었다.
하지만 귓가에 남은 형의 웃음이,
다음 균열의 문을 조용히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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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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