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운명의 균열

균열의 서막

by Helia

서류 위의 문장이 빛났다. 잉크가 살아 움직이듯, 검은 글자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손이 심장을 대신한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익숙했다. 너무도 익숙했다. 등대의 벽, 하랑의 마지막 눈빛, 그리고 심연의 속삭임. 모든 조각이 이 한 줄에 수렴하고 있었다.

손끝이 떨렸다. 나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발신처는 ‘아르카 프로젝트 연구소’. 하랑이 생전에 머물렀던 곳이었다. 도시의 어둠 속에서 이미 사라진 이름. 그러나 그곳이 그녀의 마지막 무대이자, 심연이 깨어난 첫 장소였다.

그때, 컴퓨터 화면이 번쩍였다.
새로운 이메일. 보낸 이는 ‘H’.
제목은 단 한 줄이었다. ―너는 아직 끝내지 않았어.

심장이 내려앉았다. 장난이라기엔, 문체가 너무 하랑 같았다.
메일엔 암호화된 파일 하나가 있었다. ‘balance_key.dat’.
파일을 열려면 생체 인증이 필요했다. 사망자의 지문, 하랑의 것만이 열쇠였다.

불가능한 일.
하지만 심연은 늘 불가능에서 시작됐다.

나는 서류와 USB를 쥔 채 밖으로 나섰다.
도시는 새벽빛에 젖어 있었다. 도로 위 가로등은 무너진 성벽처럼 깜빡였고, 차가운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하랑의 무덤은 도심 끝 언덕 위에 있었다. 나는 한참을 걸었다. 숨이 차오를 때마다, ‘심장이 대신 뛴다’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무덤 앞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돌았다. 땅이 아주 미세하게 진동했다.
균열이 시작되는 소리였다. 산 아래 도시의 불빛이 흔들렸다.
마치 하랑이 내 이름을 부르는 듯, 낯익은 향기가 스쳤다.

“하랑, 이건 네가 남긴 거야?”
나는 USB를 들었다. 그 순간, 손끝이 뜨거워졌다. 금속이 맥박 치듯 뛰었다.
그리고 내 심장이 그 리듬에 맞춰 다시 고동쳤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청이 아니라, 진짜였다.
공기가 흔들리며 한 줄기 빛이 내 앞에 내려앉았다.
그 안에서, 하랑의 실루엣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존재하지 않는 체온이 손등을 스쳤다.
“너는 내 결말이야.”
그녀의 입이 그렇게 움직였다.

순간 하늘이 갈라졌다.
번개가 도시 위를 가르며 하얀 균열을 새겼다.
불빛이 찢어지고, 세상이 흔들렸다.

심연이 깨어나는 소리였다.
운명이 다시,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나는 웃었다.
“좋아, 하랑. 이번엔 내가 끝을 보지.”

균열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하랑의 목소리가 흩어졌다.
“결말은 너의 손에 있어.”

새벽빛이 도시를 덮었다.
나는 USB를 꽉 쥔 채, 눈을 감았다.
심장은 뛰고 있었다.
이번엔 내 것이 아니라, 그녀의 것이었다.

균열은 이제 나에게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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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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