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68장|밤의 끝에서

밤이 나를 건져 올리는 순간

by Helia

추천 클래식

Gustav Holst – “The Evening Watch, Op.43 No.1 for Alto and Tenor (After Henry Vaughan)”


하루는 흘러가도 기록은 남는다. 이 단순한 사실을 나는 밤이 깊어질수록 더 선명하게 느낀다. 분주한 낮 동안에는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힘이 없지만, 밤의 끝에 이르면 오히려 시간이 나를 붙들고 세워 둔다. 고요한 틈이 생길 때 비로소 오늘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낮 동안 지나쳐 온 사소한 표정, 미처 돌아보지 않은 감정의 그림자, 무심히 흘려보낸 기분의 결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 떠오른다. 마치 빛이 꺼진 후에야 형체를 드러내는 별처럼, 은은하게 반짝이며 ‘오늘’이라는 이름의 잔향을 보여준다.
나는 그 소리 없는 반짝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펜을 들거나, 메모 앱을 열거나, 그저 마음속에 조용히 말을 적어둔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나를 잊지 않게 하는 가장 투명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밤의 끝은 이야기의 변두리 같으면서도 중심에 가깝다. 모든 소음이 가라앉고 나면 하루가 비로소 모양을 갖추는데, 그때서야 나는 낮 동안 얼마나 많은 마음을 흘려보냈는지 깨닫는다. 분명 아무 일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밤은 묻는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느냐고. 그 말 한마디에 낮의 겉모습이 벗겨지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묵혀 두었던 감정이 천천히 올라온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어떤 순간의 잔해들이 떠오르고, 나는 그것들을 붙잡아 다시 바라본다.
기록을 한다는 건 결국 놓친 마음의 파편을 되살리는 일이다. 지나간 하루를 다시 불러내어 한 자락의 온기라도 남겨두는 일이다. 누군가는 왜 굳이 사라지는 감정을 붙들려고 하느냐고 묻지만, 나는 안다. 붙잡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두고 달아나 버린다는 사실을.

밤의 끝에서 쓰는 말들은 유난히 진실에 가깝다. 낮에는 스쳐 지나가거나 억눌러 버린 감정이, 밤이 되면 조용한 바람처럼 스며들어 나를 흔든다. 그 흔들림을 무시하면 마음이 외면당한 듯 아파지고, 받아들이면 생각보다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그래서 나는 밤의 끝에서야 겨우 솔직해진다. 낮 동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버텨낸 나에게 ‘괜찮았어?’라고 묻는 유일한 시간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 지나간다고. 하지만 지나간다고 해서 무슨 흔적도 남지 않는 건 아니다. 말을 삼킨 순간, 외면한 감정, 나를 닦달하며 자책했던 구석, 애써 모른 척했던 희망까지 모두 흔적이 된다. 기록은 그 흔적을 언어의 형태로 되살리는 과정이다. 사라진 하루를 다시 데려오는 일이라기보다는, 사라지지 않은 마음을 드러낼 용기를 찾아가는 일에 더 가깝다.

하루의 끝은 저절로 찾아오지만, 밤의 끝은 내가 마음으로 열어야만 비로소 열린다. 불을 끄고 눈을 감는다고 끝이 오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이제 그만 놓아도 괜찮아’라는 말이 조용히 흘러나올 때 비로소 도착하는 장소다. 그래서 어떤 밤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눅진한 마음이 한참을 머문다. 그런 날에는 억지로 보내려 하지 않고, 그 마음이 쉬다 갈 수 있도록 가만히 앉아준다.
기록도 비슷하다. 억지로 꺼내려하면 말이 엉키고 마음이 더 깊숙이 숨는다. 대신, 아주 작은 문장 하나를 놓아두면 그 문장이 긴 실마리가 되어 하루가 풀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뭐가 가장 힘들었지?” “나는 무엇을 넘기고 무엇을 붙들었지?” 이런 자잘한 질문조차 나를 한 발 더 깊이 데려간다. 그 깊이에 닿을수록 오늘이 비로소 완성된다.

나는 밤의 끝에 앉아 오늘을 기록하면, 그 기록이 미래의 나에게 작은 등불이 될 거라는 걸 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엔 그저 쓰고 있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말들이 나를 붙잡고 일으키는 날이 온다. 예전에 썼던 말들이 먼 훗날 나를 위로하거나, 잠들어 있던 마음을 깨우거나, 잊고 있던 방향을 다시 가리켜주기도 한다. 기록은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지금의 내가 미래에 미리 건네는 손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밤의 끝이 더 이상 고요한 결말이 아니라 여는 문이라는 걸 깨닫는다.
어쩌면 밤의 끝은 오늘을 끝내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시 붙잡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견딘다. 누군가는 깊은 잠으로, 누군가는 TV 소리로, 또 누군가는 침묵으로 하루를 덮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글을 통해 하루를 마무리한다. 글을 쓴다고 해서 더 특별해지는 건 아니지만, 기록을 하는 동안만큼은 오늘이 내 품에 안긴다. 사라지는 하루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게 되니까.
기록된 시간은 비록 짧고 사소할지라도, 그 안에는 분명히 내가 있다. 그날의 온도, 감정의 색, 마음의 결, 스쳐 지나간 생각들의 무늬가 남아 있다. 그 무늬들은 절대 다른 날의 내가 대신 만들 수 없다. 그래서 기록은 곧 유일한 나의 증언이다. 하루를 살았다는 증거, 느꼈다는 흔적, 사랑했고 기대했고 실망했고 버텼다는 조용한 자국.

밤의 끝에서 문장을 적다 보면, 언젠가 내가 잃어버릴 순간들이 하나씩 되살아난다. 굳이 대단한 경험이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충동적으로 걸었던 골목, 문득 떠오른 생각, 갑작스레 달라진 마음. 그런 작은 일들이 쌓여 오늘을 만들고, 그 오늘들이 차곡히 모여 내 삶을 빚는다. 기록이 없다면 삶은 흐르는 물에 비칠 뿐 흐름에 밀려 사라져 버리겠지만, 기록을 남기면 물 위에 잔잔히 떠 있는 꽃잎처럼 오래도록 흔적이 남는다.
나는 그 흔적이 좋다. 꽃잎처럼 가볍지만 분명히 존재했다는 증거. 조용했지만 살아 있었다는 사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한 작은 선언 같은 것.

밤의 끝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하루가 기울고 마음이 조금 느슨해지는 바로 그 지점,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마음의 무게가 가라앉기 시작하는 그 순간. 나는 그 시간에 내 마음을 꺼내놓는다.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것들,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슬펐던 마음 뒤에 숨은 미련, 웃었던 순간 안에 숨어 있던 작은 떨림, 말하지 못한 아쉬움, 애써 삼킨 강한 결심. 그런 것들이 밤의 기척에 따라 소리 없이 떠오른다.
나는 그 감정들을 따뜻한 손으로 가만히 어루만지며 기록 속에 눕힌다. 내일이 오면 이 감정들은 사라질 수 있지만, 기록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밤의 끝에서 나에게 묻는다. “오늘의 너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그 질문 하나면 충분하다. 마음속이 차분히 정리되고, 비좁게 얽혀 있던 감정들이 방향을 찾는다. 어둠이 걷히는 속도보다 마음이 가라앉는 속도가 더 느릴 때, 나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밤의 끝은 원래 그런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울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에 나는 오늘의 나를 기록하고, 내일의 나를 떠올리고, 잊힐지도 모를 감정들을 조용히 붙든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적는 순간, 이 하루는 비로소 완전히 나의 것이 된다.

밤의 끝.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희미한 여명 앞에서 한 걸음 늦게 숨을 고르는 나에게, 세상이 속삭인다.
“오늘도 살아냈구나. 그러니 이제 새로운 빛을 맞으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