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틈에 스며든 말 한마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겨울은 유난히 길었고, 기온 아래로 가라앉은 공기에는 오래된 슬픔의 잔향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계절을 거의 비틀거리며 지나고 있었다.
시간은 분명히 지나가는데, 마음속의 시계는 아직도 할머니의 마지막 숨결에 걸려 멈춘 채였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조용한 틈에도 그리움이 새어 나왔다.
삶이 건조해지는 소리가 귀에 들릴 만큼 마음이 말라 있었던 겨울.
그날도 나는 특별히 목적 없는 걸음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저 걷는 일만이 하루를 견디게 해 주던 때였다.
눈발은 날리지 않았지만, 공기 자체가 흰 연기처럼 희미하게 떠 있었다.
뒤척이는 마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발자국만 다시 찍고 또 찍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팔 안쪽을 건드리듯 스쳤고, 이어 아주 익숙한 음성이 날아왔다.
“도를 아십니까?”
나는 그 문장을 수없이 들어봤다.
대부분 스쳐 지나가던 말이었고, 흔한 전도 멘트쯤으로 치부하며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그날의 그 말은 이상했다.
그 말이 내 심장 안쪽을 뚫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내 마음에서 비어 있는 곳을 정조준이라도 하는 것처럼.
두 여자가 서 있었다.
검은 코트를 단정히 여민 모습이었고, 미묘한 미소가 입가에 얹혀 있었다.
그 표정은 내가 모르는 어떤 답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들은 단번에 알아챘을 것이다.
내 얼굴에 새겨진 상실, 내 눈동자에 맴도는 그리움,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겨울의 그림자.
“할머니가… 지금도 뒤에서 따라다니세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숨을 제대로 들이쉬지 못했다.
그 문장은,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뻔한 말이었다.
누구든 한 번쯤은 잃은 사람을 마음속에 품고 있고,
누구든 떠나간 존재에 대한 미련을 남겨두기 마련이다.
그러니 ‘조상님이 따라다닌다’는 말은 사람의 가장 약한 틈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나’에게 떨어졌을 때,
그 문장은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칼날이었다.
내 할머니가 아파하며 떠난 날,
마지막으로 남긴 숨결,
그리움에 눌린 겨울의 그림자가 한꺼번에 흔들렸다.
“조상 덕이 커요. 아파서 떠난 분은 더 강하게 곁을 맴돌아요. 막힌 길도 열어주려고 하시죠.”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말도 안 되는 말임을 알면서도,
가슴 어딘가가 순간적으로 무너졌다.
그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할머니’라는 이름 석 자가 내 마음에 돌처럼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름을 붙잡고 싶었다.
아무리 작더라도, 아무리 허망하더라도.
그들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내 발걸음은 내 것이 아닌 듯 느껴졌다.
겨울 햇빛 아래, 그림자 셋이 길게 늘어섰다.
그리고 그 뒤로, 누군가 더 따라오는 듯한 기분.
그들이 말한 ‘할머니의 그림자’가 정말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안내한 곳은 작고 낡은 방이었다.
간판도 흐릿했고, 문틈에서는 오래된 향 냄새가 가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바로 그 공기 속에 잠겼다.
조용하지만 눅눅하고, 부드럽지만 묘하게 불안한 공기.
방바닥은 약간 기울어져 있었고, 그 위에서 향이 천천히 타오른 듯했다.
“제사상을 준비하려면 과일 값이 필요해요.”
그들은 망설임 없는 말투로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음의 문이 이미 반쯤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슬픔은 생각을 느리게 한다.
그 사이로 들어온 말들은 진실처럼 들린다.
그래서 나는 지갑을 열었다.
마치 의례처럼.
의식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할머니에게 무언가를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처럼.
돈을 건네자 그들은 하얀 천을 내밀었다.
소복.
천은 생각보다 얇고 서늘했다.
손끝으로 잡았을 때 가볍게 흔들리며,
마치 누군가의 한숨처럼 무게가 없었다.
“갈아입으세요.”
나는 그 천을 들고 잠시 서성이다 결국 옷을 갈아입었다.
왜냐하면 내 안의 그리움이 이유를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천이 살갗에 닿는 순간,
몸이 아닌 마음이 먼저 떨렸다.
소복 자락이 허공에서 묘하게 울렸다.
절을 하라는 말이 이어졌고,
나는 바닥에 무릎을 붙였다.
오른쪽으로 세 번.
왼쪽으로 세 번.
바닥은 차가웠고, 숨은 짧게 끊어졌다.
향 냄새는 코끝에서 가늘게 흔들렸고, 방 안의 조명은 소복 위에 황금빛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모든 시각·촉각·후각이 뒤섞이면서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상태가 되었다.
“22일 동안 매일 오십시오.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요. 이건 조상님과의 약속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지금도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마음이 너무 약했고, 그 겨울이 너무 길었고, 할머니가 너무 그리웠을 뿐이다.
사람은 사랑을 잃으면, 그 사랑의 잔향이라도 붙잡으려 한다.
그 잔향이 거짓인지 아닌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는 법이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바로 뺨을 쳤다.
나는 몇 걸음 걷다 멈춰 섰다.
등 뒤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내가 조금 전까지 잡고 있던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뭐 한 거지?’
그제야 현실이 선명하게 돌아왔다.
소복의 감촉이 손끝에 남아 있었고, 향 냄새가 코 속 어딘가에 맴돌았다.
갑자기 숨이 답답해졌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문득 찾아온 현타는 겨울바람보다 훨씬 매서웠다.
나는 다시 그곳에 가지 않았다.
22일 중 첫날도 채우지 않았다.
그들의 연락처도 지웠고, 그들이 올 법한 길도 미리 피해 다녔다.
그 일이 지나고 한동안은 그날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어떻게 그 말 몇 마디에 흔들릴 수 있었을까,
왜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바보라서가 아니라,
내가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었다는 걸.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
그 겨울의 나는 아직 슬픔을 감당할 힘이 부족했던 것뿐이었다.
그날의 경험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내 마음의 틈을 남의 말에 내어주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슬픔을 품고 있을 때 어떤 말이 가장 위험한지를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의 부재를 이용하는 말에 흔들릴 만큼
그분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누군가 다가와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 말이 겨울의 문을 열던 시절은 이미 끝났다.
지금의 나는 내 길을 내가 만든다.
누가 길을 터준다는 말이 아니라,
내 발로 걸어 만들어온 길 위에 서 있다.
할머니가 내 뒤를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할머니가 남긴 사랑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깨달음 하나가, 그 겨울의 모든 흔들림을 견딜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