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할 줄 알아야 관계를 잘 맺는다
[경제기자 홍키자] 어머니는 말하셨지, 5만원짜리 밥을 사라고
인생에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문장이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스무살 무렵에 대학생활을 시작하기 전 엄마가 해주신 말씀입니다.
"밥 얻어먹고 다니지마라. 밥 사는데 돈 아까워지말고, 니가 밥을 사라. 마음을 얻고 싶으면 5만원 넘는 밥을 사라"
응? 밥 좀 얻어먹으면 안 되나? 대학생이? 5만원짜리 밥?
직업을 기자로 두고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니, 얼마나 지당하신 말씀인지 몸소 느껴집니다.
인심은 다른데서 나는게 아니더라고요.
인심은 밥에서 납니다. 밥을 사서 마음을 표하고, 밥을 사면서 아부해야합니다. 밥을 제대로 사야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밥입니다.ㅎㅎㅎ
갑자기 밥 얘기 하는 이유는, 저희 부서에 막내가 들어왔기 때문인데요. 부서에 배치받은 막내에게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나...한참 고민했더니 엄마가 말씀하신 밥 얘기가 떠오르더라고요. 제 사회생활을 지탱한 것도 결국 밥이었습니다.
보통 갓 입사한 기자들은 경찰서 마와리를 돌면서 각종 사건들을 취합하거든요. 기사거리가 되는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경찰서의 형사들을 붙잡고 늘 읍소합니다. "뭐 들어온거 없나요? 작은 거라도 없을까요?"
사회부 경찰팀 소속으로 자그마한 얘기거리라도 취재하는 게 막내들의 주요한 임무입니다. 근데 보통 형사님들은 냉랭하죠. 형사님들도 얼마나 바쁘시냐고요. 각종 범죄에 당직에 야근에 내 일 제대로 하기도 바쁘죠. 근데 딱 봐도 막내로 보이는 애들이 와서 귀찮게 굴면 좀 냉랭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저희 부서에 온 막내도 경찰서 도는 게 쉽지 않았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어떻게 했느냐? 저는 어머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스타벅스 커피 4잔 사들고 경찰서로 들어갔죠. "고생많으십니다. 커피 한잔 드시고 하시죠"라고 하면 누가 문전박대하겠냐고요. 늦은 밤에 당직중인 형사님들 방문할 때는 치킨 두마리 사갔어요.ㅎㅎㅎ "출출하실텐데 좀 허기 좀 때우시죠" 직접 치킨을 드시지 않고 근무서는 의무경찰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그게 다 마음이잖아요. 밥 사는 거죠. 밥에서 인심나는거고요. 그때 연을 맺은 형사님들은 요새도 종종 술을 나눕니다.
아부하는거죠. 세상 모든 일에는 아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상대방이 알아차리게 하는 아부는 진심을 전하는 방법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얘한테 잘보여야지 하고 아부 아닌 척 아부떠는 건 같잖은 거지만, 내 순수한 마음을 전해야지하고 떠는 아부는 내 마음을 전하는 매개가 되는거랄까요.
현빈과 송혜교 주연의 <그들이사는세상>에도 그런 대목이 나오죠.
극중 드라마PD인 송혜교가 해외로 로케를 가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해당 장면은 주인공들이 막 뛰어가는 장면이었어요. 본인이 원하는 그림이 안나오니까 계속해서 같은 장면을 여러번 촬영해요.
그때 이십키로는 족히 넘어보이는 카메라를 붙잡는 촬영감독이 한번 두번 세번 참다가 다섯번인가를 넘어가니 화를 냅니다. "너만 예술하냐. 중요해보이지 않는 장면을 대체 몇번을 반복하는거냐"
근데 송혜교는 화가 나죠. 왜? "내가 드라마PD고 이 현장의 책임자인데 왜 저것도 못 버티고 화를 내???"
나중에 로케 현장을 방문한 현빈이 모든 얘기를 듣고, 송혜교와 술 한잔 하면서 얘기해요.
"아부를 떨어야지 임마. 나도 늘 그럴때 아부떤다. 아유 형 한번만 더 갈게요. 정말 죄송해요. 한번만 더 찍을게요. 이따 술살게요.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갈게요. 남자인 촬영감독 형한테도 아부를 떨어야 하는거야"
아부 떠는 게 다른 게 있나요. 사람 마음 사는 거지요. 밥 사는 거라고 다르겠습니까. 사람 마음 사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새삼 엄마에게 감사합니다. 어린 나이에 밥 사라는 얘기를 안들었으면, 5만원짜리 밥을 사야된다고 얘기 안해주셨으면 영영 사람의 마음을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을 모를수도 있었겠죠.
물론 안통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체로는 통합니다. 진심을 건네는 가장 쉬운 방법. 그게 밥 사기라고 믿습니다.
#홍키자 #밥 #그들이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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