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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그림일기
43. 쉰 넘어 내 집 마련
만기까지 살 수 있을까?
by
유목여행자 박동식
Aug 9. 2019
대출 상담 차 은행에 왔다.
잘 알고 있는 직원과 사전에 약속을 했음에도 50분 이상 대기.
스마트폰 만지는 것도 지겨워 그림 한 장 그렸다.
거지 같은 집이긴 하지만 내 인생 최초로 내 집을 갖게 되었다.
운명과도 같았다.
나도 내 집을 갖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 제법 열심히 집을 찾아보았다.
네이버 부동산에서는 여주, 수원, 안산, 평택까지 쏘다녔다.
하지만 실제 집을 보러 다닌 곳은 오로지 인천 계양 박촌동.
그것도 아주 한정적인 빌라에 한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먼 곳이겠지만,
나에게는 크게 무리 없는 지역.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철인 운동과 음악 밴드 취미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서울 접근도 매우 가까운 곳.
그리고 전철이 필히 있는 곳.
그리고 저렴한 곳.
가장 중요한 것은 창문을 열면 앞 빌라가 아니라 초록이 보이는 곳.
사실, 창밖으로 초록이 보이는 조건은
동네에 대한 조건보다 건물에 대한 조건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같은 빌라에서도 초록이 보이는 집과 앞 빌라가 보이는 집이 따로 있으니까.
이 마지막 조건 때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빌라는 많지 않았다.
박촌동을 모두 뒤져도 2~3개 동 전후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빌라는 가장 먼저 본 곳.
이후 빌라를 볼 수록 첫 번째 본 빌라만 생각날 정도.
물론 첫 번째 보았던 빌라에 버금가는 곳을 두 곳 정도 만났지만
한 곳은 가격이 맞지 않았고, 한 곳은 막판에 매도자가 마음을 바꿨다.
(지금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이후 점점 내 집 마련에 대한 열의(?)가 조금씩 식었다.
볼 수 있는 집도 많지 않았고
꼭 집을 사야 하는지 의문도 들었다.
몇 개월 동안 빌라를 본 탓에
박촌동에서 내 능력과 조건에 부합하는 집은 이제 3~4채 밖에 없었다.
물론 집이야 들어가 봐야 아는 것이긴 했다.
집을 볼 수록 이건 더욱 확실해졌다.
아직 보지 못한 집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이 있었다.
처음 본 집의 위층.
처음 본 집은 3층 중에 1층이었다.
그 라인은 박촌동에서 가장 마음에 든 라인이었다.
같은 동, 옆 호수도 방향은 같았지만 창문과 베란다 구조가 달랐다.
아쉽지만 그 라인에 집이 나와도 심각하게 매수를 고민했을 것이다.
내 집 마련 꿈을 접기 전에, 마지막으로 각 집 현관문에 포스트잇을 붙여볼까도 생각했다.
0동 빌라 구매
부동산 아님
실제 구매자
시세보다 좋은 조건 가능
내가 사고 싶은,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0동 빌라에 그런 포스트잇을 붙이고 더 이상 연락이 없으면 깨끗하게 포기.
그런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 와중에 내 집 마련에 대한 의욕은 점점 식었다.
근데 운명처럼 내가 원했던 라인,
처음 보았던 빌라의 2층이 매물로 나왔다.
구조와 방향은 같지만 중간층.
최상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모두 수리를 마친 상태였으나 너무 구렸다.
벽지와 장판은 정말 버리고 싶을 정도.
가장 중요한 샤시는 비닐도 안 뗀 상태였는데,
하필 안쪽 유리가 반투명이었다.
대부분의 집들이 그렇기는 하다.
바깥은 투명, 안쪽은 반투명.
하지만 나는 집을 구매한다면,
방 안에서도 곧바로 창밖을 볼 수 있도록 모두 투명 유리로 할 생각이었다.
그 집을 계약하게 된다면 새로 한 벽지와 장판과 샤시 유리를 다시 해야 할 상황.
고민하는 사이에 첫 집처럼 집이 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있었지만
냉정하게 하루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 집을 계약했다.
결국 나는 박촌동에서 가장 갖고 싶었던 집을 얻었다.
첫 번째 보았던 집보다 더 좋은 곳, 위층.
정말 운명이었다.
남 월세 보증금 정도(진짜임)의 금액에 불과한 집이다.
근데, 그 돈도 없어서 대출을 받기로 했다.
평소 잘 알고 있던 지인이 있어서 편하게 상담받았다.
이 집을 계약하기 전부터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대출 가능 금액을 묻고는 했다.
나의 신용에 대한 서류는 첫 집을 본 후에 이미 보냈었다.
사전 약속을 하고 왔음에도 거의 1시간을 기다렸다.
오늘 모든 서류를 작성했으니 대출 승인은 아마 다음 주 중.
만기는 30년이다.
후후...
그때까지 살아나 있을까?
정말 인생 별 거 없구나.
빌린 돈 다 갚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결국 평생 내 집(?)은 가져보지 못하는 것이겠구나.
그리고 이 와중에 살짝 새가슴.
대출 승인 안 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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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 사진가, 에세이스트 저서 <오늘부터 여행작가> <Just go 대한민국> <내 삶에 비겁하지 않기> <여행자의 편지> <열병> <슈퍼라이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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