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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여행자 박동식 Dec 26. 2019

병원 일기 2

20191210



병원 일기 2

1시 50분경 형님이 수술실에 들어가셨습니다.

수술이 오후로 잡혀서 힘든 하루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형님도 불안해하더라고요.
급기야 도대체 무슨 수술을 하는 거냐고 짜증을 내더라고요.
그제야 형님 병과 수술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저만큼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비로소 답답했던 것이 풀렸다는 눈치였습니다.
"의사보다 내가 설명 더 잘하지?"
고개를 끄덕끄덕.  

오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친절하지 않은 우리 둘이 이렇게 다정한 대화를 나누다니.
어디 그뿐일까요.
남사스럽게 스킨십도 많이 했죠.
손도 잡고 다리도 주무르고요.
일부러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자꾸 눈물이 났지만 잘 참았죠.
형님도 그런다는 거 잘 알고 있었습니다.
환자 주제에 엄청 냉정한 척.


"오늘 절대 잊어버리면 안 돼!!!"
손을 잡고 그 말을 하는 순간,
잘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퇴원하고 나서 술 마시고 싶을 때마다 오늘 생각해."
"이제 술 못 마시지."
"살만 하면 또 마신다고 할 걸? 그럴 때마다 오늘 생각해. 이렇게 힘들게 수술까지 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울어버렸습니다.
형님도 참았던 눈물을 흘렸죠.
이게 무슨 신파인지.
"누가 보면 웃겠어."
휴지를 건네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형님의 병은 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형, 팔다리 불편했던 거 술 마셔서 그런 거 아냐. 그냥 아팠던 거야. 형 책임 아냐.'


하지만 그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끝까지 그 진실만은 말해주지 않을 겁니다.


사실, 금단 현상을 걱정했지만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할 일이 없으니 술을 마셨던 것뿐이었습니다.
긴 시간을 혼자서 보내는 방법을 몰랐던 것뿐이었습니다.
물론 예전부터 술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가르쳐줘야죠.
세상에 즐거운 것이 얼마나 많은지.
말로 끝내지 않고 같이 산책하고, 같이 여행하면서요.


"그리고 형 들으라고 하는 소리 아니고, 이 수술 위험한 수술 아냐. 정말이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겠죠.
실제 위험한 수술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많이 외로웠을 겁니다.
늘 혼자였으니까요.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3년 후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형님 나이는 겨우 스물 하나.
힘들었겠죠.
철도 없었고요.


간호조무사님이 미는 침대 옆을 나란히 걸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손도 잡았습니다.
이제 형님의 손을 잡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아마, 건강해지면 그때는 어색해지겠죠.


간호조무사님이 수술실 앞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보호자 분은 여기까지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모습과 똑같았습니다.


형님에게 제가 뭐라고 말했을까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좋은 꿈 꾸고 나와."


아, 멋진 멘트였습니다.
놀라운 순발력.
엘리베이터에서도 몰래 울던 저였지만
마지막에는 아주 담담하게 들여보냈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죠.


물론 돌아서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입원 후 처음으로,
아주 잠시,
소리 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괜찮습니다.


금식하는 형님 때문에 저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밥 먹으러 갈 겁니다.
형님 나오면 또 잘 챙겨줘야 하니까요.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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