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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여행자 박동식 Dec 30. 2019

병원 일기 4

20191213




섬망을 그저 치매의 다른 이름인 줄만 알았다.
하기야 그리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닐 테다.
증세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어제 형님에 대한 글을 남긴 후
누군가의 댓글을 읽는 순간 세상이 또 한 번 바뀌었다.
섬망.
형님 증세와 다를 것이 없는 경험담.
식사 후 평온하게 잠든 형님 보며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 댓글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곧바로 형님을 깨워서 휠체어에 태웠다.
수술 전에 돌았던 복도를 다시 돌며 복기했다.
기억은 또렷했다.
혹시나 싶어 입원과 수술 과정에 대해서도
돌려 돌려 물었다.
사라진 기억은 없었다.
단지, 낮과 밤이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
사라진 기억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지만
현실을 완벽하게 재인식시키는 것도 목적이었다.
그러니 비슷한 이야기를 자꾸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병원이고,
형은 목이 아파서 수술을 했고
당분간 입원을 해야 하고
빨리 낫기 위해서 주삿바늘이 꽂혀 있고.
그런 이야기를 이리ㅜ 돌리고 저릴 돌리며 반복하는 것이 이상했는지,
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을 많이 시키냐고 귀찮아했다.


저녁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7시가 되어가자 형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촉촉해지고 두리번거리고 환자 팔찌 등을 살피고.
조금씩 여기가 어딘지에 대한 판단력이 사라지는 느낌.
다시 말을 시켰고 그 사이 누님도 오셨다.
누님과 교대하고 잠시 집에 다녀왔다.
자리를 지운 시간은 불과 3시간.
집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샤워도 했다.
그 사이 집이 낯설어졌다.
도대체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병원에도, 그렇다고 집에도 없는 내 삶.


걱정되어 누님에게 전화하니 괜찮단다.
다행이었다.
하긴, 전날처럼 한낮부터 감금에서 구출되기를 열망하지는 않았으니까.
병원 주차장에 진입하는데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겁이 덜컥.
설마 또 시작한 것일까.
다행히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단다.
병실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9시 50분.
화장실을 해결해 주고
포장했던 도가니탕 절반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수술 후 형님이 혼자 있었던 시간에는 사소한(?) 사고가 발생했다.
목보호대를 혼자서 풀어버렸거나,
혼자서 화장실에 가겠다고 움직이다가 바늘이 빠졌거나.
이제 혼자 두고 밥을 먹으러 가는 것도 불안한 상황.


식사 후 누님이 집으로 돌아갔다.
어제의 섬망 증상 때문에 잠들기 전 약이 추가되었다.
아주 작은 알이었고 그나마 반쪽이었다.
저런 약을 먹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형님은 몹시 피곤해했고 일찍 자려했다.
10시 10분.
20분 사이 밥을 먹고 형님 잠자리를 챙긴 셈이었다.

아주 잠시 잠들더니 어김없이 눈을 떴다.
불안 속에서 누워 있던 나 역시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형님이 눈을 뜨는 것은 잠결에 뜨는 눈이 아니었다.
눈을 뜨면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시야의 반경이 점점 넓어졌고 나와도 눈이 마주칠 상황.
얼른 눈을 감고 실눈으로 감시.
내가 눈 뜬 것을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쌀알만 한 그놈의 약은 도대체 약발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그러다 살짝 잠이 들었다.
그리고 형님이 부르는 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화장실에서는 소변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형님에게 물었다.


여기 어딘지 알아?
호텔.


형님 기억에서 병원이 사라진 것이다.
집이 아닌 곳에서 자는 건 아마도 호텔밖에 없었겠지.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아직 12시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지 않고 끊임없이 주변과 팔을 두리번두리번.
잠을 설치니 나 역시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누워서 자는 척하며 형님을 살핀다는 것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병원 생활 불과 6일 만에 폐인이 된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잠시 잠이 들었다.
다시 잠에서 깬 것은 간호사 때문이었다.
간호사는 피로 흥건한 형님의 손을 누르고 있었다.
형님이 드디어 스스로 바늘을 뽑았던 것이고
나보다 먼저 발견한 것이다.
정신이 아득했다.
맨발로 일어나 간호사를 도왔다.
지혈을 하고,
옷을 갈아입히고,
시트도 갈고,
피 묻은 손도 닦았다.
그 와중에 다시 바늘을 꼽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액(?)을 중단시켰다.


간호사는 그런 처치를 하고 떠났지만
이후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이제부터는 목에 붙인 거즈를 떼어내려 했다.
머리에 달라붙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걸 떼면 바로 수술 부위.
설득에, 설득에, 다시 설득.


며칠만 기다려라.
피를 뽑는 통은 내일 제거해 줄 거다.
약속한다.
소변줄도 오늘 제거해 주기로 하고 약속 지키지 않았냐.


아무리 진정이 목적이었지만
목의 거즈는 내일 제거해 주겠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듯싶었다.
신뢰의 붕괴.
그래서 진실만 이야기했다.


목의 거즈는 절대 안 된다.
그건 내일도 제거해 줄 수 없다.
퇴원할 때까지 하고 있어야 한다.
불편해도 참아야 한다.
피 뽑는 통은 정말 내일 제거해 줄 거다.


거즈를 제거하려는 형님과 그걸 막아야 하는 나.
그 실랑이로 밤을 새웠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5시가 넘었다.
피곤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날 경험으로 6시가 되면 형님은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서서히 눈빛이 달라졌다.
6시가 되고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이제 식사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유일한 시간.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대로 몇 시간 동안만 식사 시간이 오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김없이 7시가 되었고 형님은 멀쩡하게 식사를 마쳤다.
솔직히 나는 무기력했다
불과 며칠 지나지도 않았았는데 벌써부터 감당하기 버거웠다.
복잡한 심경.
밥을 먹자마자 눕고 싶다고 했다.
나도 밥을 먹어야 했다.
전날 남은 도가니탕에 밥을 말아서 반찬도 없이 해치웠다.

이제 새로운 전쟁을 치러야 할 상황이었다.
낮에는 절대 잠을 재우지 않는 것.
그러려면 나도 잘 수 없었다.
형을 따라서 평온하게 잠들고 싶었지만 참았다.
형님도 일으켜 세웠다.
한사코 눕겠다고 해서 조건을 달았다.
잠자지 않기.
눕혀 주니 곧바로 눈을 감는다.
흔들어 깨웠다.
새로운 실랑이였다.


그리고 고민하다가 물었다.
혹시 지난밤 일을 기억하는지.
놀라웠다.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피를 흘렸고,
간호사가 왔었고,
거즈를 떼려 했고,
나는 말렸고.


이제부터 솔직한 대화를 시작했다.
그건 형 잘못이 아닌 거 안다.
형처럼 전신마취를 한 환자 중에 일부는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형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왜 그랬냐?

대답은 간단했다.
불편했단다.
나는 형 때문에 한숨 못 잤다.
그랬더니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러면 단호하게 이건 안 된고 말했어야 한단다.
어이 상실.

달래고 달래다가 결국 절대 안 된다며
형 손 때리면서 단호하게 말한 거 모르냐.
그때 형은 당장이라도 일 낼 것처럼 화냈다.

이런 대화를 하는 중에도 계속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농담이 시작되었다.

형도 당해야 한다.
내가 밤새 잠 한숨 못 잔 거, 형도 당해야 한다.
형은 눈이 감기면서도 웃었다.
그래서 약속을 받았다.
그럼 오전만 자라.
대신 오늘 밤부터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
약속을 받고 잠을 허락했다.
물론 조건이 남아 있었다.
오전만 허락.
오후에는 낮잠 불가.


그렇게 두려운 밤을 보내고 코미디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형님의 섬망은 첫날이 극에 달했고
어제는 조금 다른 양상이었으며
오늘은 사라질 것.

하지만 우리의 코미디는 끝나지 않았다.
아침에 하도 휴대폰을 달라고 해서 줬었다.
112와 친구에게 구조요청을 한 사건 때문에 숨겨뒀었다.
휴대폰 본다고 머리 숙이면 수술 부위에 문제 생긴다는 핑계를 댔었다.
하지만 휴대폰 보면 잠을 덜 자지 않을까 싶어서 건넸다.
역시 조건은 달았다.
밤에는 안 된다는 것.


다시 잠에 들던 형이 눈을 뜨고는 이렇게 말했다.
병원비가 청구되었다고.
꿈을 꾼 줄 알았다.
하지만 비용까지 알고 있었다.
중간 비용이고 400여만 원이라고.
헉, 내가 전날 병원 단말기로 알아본 금액이었다.


어찌 알았을까?
환자 당사자 휴대폰에 문자가 와 있었다.
5일 안에 납부하라는 일종의 고지서였다.
아침에 그걸 확인 후 계속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누워 있다가 결국 말을 꺼냈던 것.


“걱정하지 마. 알아서 할 테니까."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나왔냐."
"신경 쓰지 말라니까. 알아보고 있어. 형 장기 팔아야 하니까."
어쩌면 입원 후 처음 유쾌하게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비싼 곳에 팔아야 하는데 형은 늙어서 아직 마땅한 곳을 못 찾았어."
"ㅋㅋㅋ"
"400이면 콩팥 먼저 팔면 되겠네."
"그래, 다 팔아라."
"그리고 400만 원은 병원비만 청구된 거고 내 인건비는 600만 원이야."


더 크게 웃었다.

때마침 침대 시트를 교환해 준 아주머니가 오셨다.
형님은 거동이 불편해서 침대 시트를 받아두었다가
주로 화장실 가는 때를 이용해 침대 시트를 갈았다.
그것을 기억하는 아주머니가 시트를 건네고 가셨다.

그때 형님 하는 말.


"왜? 옷 갈아입고 도망가려고?"
"옷 아니고 침대 시트야. 그리고 돈 마련 안 되면 버리고 가야지."
"빨리 밧줄 좀 가져오라 해."
"왜? 도망 가게?"
"돈 없으면 도망가야지."
"형 몸속에 추적 장치 달아놔서 도망도 못가."


한 번 터진 농담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때마침 피 뽑는 통이 걸리적거렸던 모양이다.
지난 저녁 스스로 바늘을 뽑은 후 옷을 갈아입을 때
통과 연결된 줄을 옷 안으로 넣었던 모양이다.
상관은 없지만 줄이 몸에 닿으면 불편한 게 사실.
단추를 풀어서 통을 밖으로 빼주며 그랬다.


"이런 환자 만나면 보호자가 환자 돼요."


다시 웃으며 지나가는 오전.
악몽에서 시작해 코미디로 지나가는 날이다.

오늘 저녁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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