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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여행자 박동식 Jan 03. 2020

병원 일기 6

20191216



'병원 일기 5'를 쓸 때까지만 해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오늘 저녁은 괜찮을 것 같은 예감. 하지만 셋째 날이 나를 가장 피폐하게 만들었다. 저녁 식사 후 잠든 형님을 보고 휴게실에서 누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연 형님 때문에 닥친 현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의 불안은 계속. 형님 곁을 잠시라도 떠나면 늘 사고가 났었고 더욱이 이제 저녁이 아니던가.


누나랑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수시로 병실을 다녀왔다. 휴게 장소가 병실이 보이는 위치지만 그건 병실만 보이는 곳이지 병실 안의 형님을 볼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 불과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형님을 확인하기 위해 병실에 가는 순간, 병실 안의 형님이 보였다. 아직 혼자서 움직이기에는 걸음과 행동이 매우 어눌한 상태다. 그러다 넘어지면 대형 사고. 그런 형님이 일어나서 사물함에서 옷을 꺼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집에 가야겠다는 것. 집에 가야 하는 이유는 씻기 위해서. 그때부터 형님은 매우 폭력적으로 변했다. 초반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화를 키운 느낌도 있었다. 이미 집에 가야 하는 일이 확고해진 것이다. 옆에 있었다면 초반에 진정을 시키거나 달랬다면 상황이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나와 누님과 간호사 3명. 많은 인원이 오히려 형님을 더욱 흥분시키는 느낌이 있었다. 최대한 흥분을 줄이려고 누님도 돌려보냈다. 그 와중에 누님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간호사들이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미숙하고 오히려 더욱 자극하기도 했다. 뒤늦게 진정제를 투여하려 했지만 주사를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위험해서 곧바로 수액부터 중단시켰다. 하지만 진정제 주사를 놓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무력을 쓰는 것도 불가능했다. 수술 부위 때문에 노심초사.


오늘은 자고 내일 가자고 달랬다. 거짓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더 이상 그걸 지키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내일 가자는 설득도 소용없었다. 일단 간호사들을 병실에서 내보냈다. 그들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아니라고 판단한 듯했다. 나 혼자 병실에서 형을 달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무가내. 형님 침대를 제외하고 병실 불은 한참 전에 꺼진 상태였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옷을 입혔다. 대충 입히고 집으로 가는 시늉만 하며 틈을 보려고 했지만 형님은 자신이 입고 온 옷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결국 형님이 입고 온 옷을 그대로 입혔다. 다행히 바지는 환자복을 유지했다. 바지를 갈아입기는 번거롭다고 생각했는지 바지는 직접 손으로 들었다.


이때부터 형님을 휠체어에 태워 1시간 넘게 병원 복도를 맴돌았다. 집에 가는 길인 척하려고 했지만 엘리베이터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던 형님은 엘리베이터를 두고 뱅글뱅글 도는 것에 대해서 더욱 분노했다. 피가 말랐다. 휠체어에서 일어서려고 했고 벽의 손잡이를 붙잡고 휠체어를 멈추려고 했다. 정상인의 힘과 큰 차이가 없었다.


진정제는 근육 주사라 엉덩이가 아니어도 가능했다. 간호사는 겉 점퍼만 벗게 하면 셔츠를 입고 있어도 팔뚝에 놓겠다고 했다. 워낙 흥분해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퍼를 벗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집에 가야 하는데 점퍼를 벗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해도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결국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그리고 잠시의 여유(?)가 생겼을 때 형님 앞에 마주 앉았다. 휠체어에 탄 형님을 쪼그리고 앉아서 마주 보았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하나밖에 없었다.


"나, 힘들어. 형 때문에 너무 힘들어 죽겠어."


울고 말았다. 참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병원에 형님을 버린 채 나가버리고 싶었다. 온몸에서 똥냄새가 나서 집에 가서 씻고 오겠다는데 왜 못 가게 하냐. 형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수술 후 제대로 씻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씻고 오겠다는 걸 말리는 것도 이상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완고하고 폭력적이던 형님은 내 눈물 앞에서 얼굴을 돌렸다. 내 눈물을 피하는 행동이었다. 다행이었고 긍정적인 신호였다. 어렵게 침대에 눕히고 진정제를 맞혔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형님은 그저 잠시 후 다시 집에 갈 생각뿐이었을 테니까.


진정제를 맞은 후 병원과 담당 의사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왜 이렇게 일을 키운 다음에 처치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진정제는 쌀알 보다도 작았고 그깟 주사는 효과가 1시간 반밖에 되지 않았다. 간호사는 주사 하나 놓고 나가면 끝이지만 난 이후 밤새 형을 감시해야 했다. 일어날 때마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 문이 닫힌 병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저 주사 하나 맞고 잘 자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히 담당의사가 당직이었다. 당장 면회를 신청했다. 진료비는 내면 될 일이었다. 응급실 환자 업무 마치면 곧바로 오겠다고 했다. 형님은 주사 하나 맞고 잠시 잠든 상태. 내 영혼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다음 날 곧바로 병원 일기를 쓰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공황 상태.

의사가 도착하기 전 주사 약발이 떨어졌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만약 잠들어 있는 형님을 보았다면 현실 직시에 어려움이 있었을 테니까. 의사가 병실 문을 열었을 때는 다시 일어난 형님과 내가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의사는 다시 처방을 내리고 나가려 했다. 너무 화가 났다. 형님 처방은 처방이고 나는 보호자니까 면담을 요청한다. 의사 하는 말이, 어디서요? 아니 밖에 간호사 공간도 있고 의사 면담실도 있는데 어디서라니. 의사 하는 말이, 여기서 하란다. 당사자인 형님이 있는 상태가 아닌가. 그뿐인가. 다른 환자 다 자고 있는 병실에서 무슨 면담을 한단 말인가. 하긴, 소란 속에서 누가 잠들 수 있겠는가. 불만 꺼져 있었을 뿐이었다.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대충, 마구 떠들었다.


여기 목 치료하러 온 거다. 그거 치료 끝내는 것이 중요하니 그때까지 저녁 난동(?)을 부리지 못하도록 미리 안정제나 약을 처방하면 얼마나 좋으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 후 처방을 내리는 것이냐. 그깟 주사도 1시간 반 지나면 약효 떨어져서 또 일어난다. 그때부터 새벽 5시, 6시까지 나 혼자 사투를 벌인다. 옆 환자에게도 미안해 미칠 지경이다.


의사는 일시적인 것이니 너무 걱정 말아라, 약은 더 처방하겠다. 그러면서 간호사들에게 형님을 묶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떠나버렸다. 묶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목에 무리만 갈 것이 뻔했다. 살면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의사였다.


결국 형님은 침대 째 처치실로 이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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