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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여행자 박동식 Jan 12. 2020

병원 일기 7

20191217



의사는 그대로 떠났고 결국 형님은 간호사들에 의해 침대 째 처치실로 실려갔다. 물론 묶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장 강력(?)하다는 안정제를 맞았다. 이걸 맞고도 2시간 후에 깨어나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주사는 추가로 처방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오히려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며 6시에 깨우지 못하면 응급실로 실려간다고 했다.


보호자 침대도 처치실로 옮겼다. 형님은 코를 골며 잠들었지만 난 지난 이틀보다 더욱 피폐해져 있었다. 한 마디로 죽고 싶었다. 형님과 함께 죽어버리는 것이 가장 편안할 것 같았다.


처치실을 나와서 누님과 통화했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의 감정은 형님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분노였다. 섬망이 형님 탓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언젠가 보았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난동이 지나치게 낯설지 않다는 것. 만약 퇴원 후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면 나타날지도 모르는 행동이라는 생각.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퇴원 후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형님을 모시려고 했던 것도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었다. 누님도 오늘의 모습에서 20~30대 때 폭력적이었던 오빠를 보았다고 했다. 결국 모든 신뢰가 깨져버렸다.


우선 내일이 급했다. 나는 다시 병실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다른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누님도 이해했다. 결국 1인실로 옮기기로 했다. 40만 원이 넘었지만 한 달은 아니니까 둘이 나눠서 부담하기로 했다. 1인실이라면 적어도 다른 분들에 대한 민폐는 없어질 것이고 나에게 큰 스트레스 하나가 해결되는 것이기도 했다. 그 순간 40만 원은 문제도 아니었다.


강력한 안정제를 맞은 형님에게는 이상한 의료기가 연결되었다. 형님의 귀에 귀걸이처럼 무언가가 붙어 있었고 이어진 선이 의료기에 연결되었다. 의료기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몇 개의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중에 가장 큰 글씨는 100이었다. 그 숫자가 밑으로 내려가면 경고음이 울렸고 그럴 때마다 간호사들이 달려왔다. 환자가 숨을 쉬지 않으면 경고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워낙 강력한 진정제라 안전을 위해 설치한 장비로 보였다.


처음에는 달려왔던 간호사가 두 번, 세 번 지나자 처치실을 찾아오는 속도가 늦었다. 형님이 호흡하지 않았던 것은 약 때문이 아니고 코를 골면서 발생한 무호흡 때문이었다. 기계가 그것을 알 수 없었을 테니 기계적으로 신호를 보낸 것이다.


어두운 처치실에 누워서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새벽 6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깨워야 한다더니 5시부터 난리를 쳤다. 우선 관장을 했다. 그리고 어깨 근육을 꼬집으며 환자를 깨웠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내가 가슴을 두드리며 형님을 부르자 간호사가 그랬다. 그런 건 아무 효과도 없다고. 강력한 통증을 느낄 수 있는 어깨 근육을 끊임없이 꼬집어야 한다고.


조금만 눌러도 아픈 부위지만 형님은 끔쩍도 하지 않았다. 아주 강하게 비틀면 인상을 쓰기는 했지만 깨우는 건 불가능. 물론 처치실에서 나 혼자 한 일이다. 간호사는 관장을 한 후 무슨 일이 있어도 형님을 깨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남긴 채 병실을 돌아야 하는 아침 업무를 위해 떠났다.


아주 잠시 눈을 뜨기는 했지만 다시 감았다. 무려 1시간을 깨웠다. 아주 간혹 실눈을 떴지만 이내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있어야 하나고 아무리 일깨워도 소용없었다. 그러니 말이 깨운 것이지 깨운 것도 아니었다. 어렵게 어렵게 휠체어에 태웠고, 형님은 휠체어에서도 잠에 빠져들었다. 형님을 깨우는 게 급선무였지만 내 마음속에는 걱정보다 분노와 절망만 남아 있었다. 그 추운 새벽에 병원 밖까지 나갔다. 추워야 정신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1시간을 깨웠고, 1시간을 휠체어에 태워 병원 안팎을 맴돌았다.


병실 복도로 돌아왔을 때 약간의 정신이 들었던 형님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수술 직후보다도 몸을 가누지 못하는 형님을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알았다. 바지에 이미 대변을 지린 상태였다. 샤워기는 병실 안 화장실에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페이퍼 타월을 물어 묻혀서 최대한 처리를 했다. 바지만 갈아입히고 다시 휠체어에 태웠다. 화장실 바닥도 청소했다. 그리고 샤워실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하의를 벗기고 깨끗하게 씻겼다. 형님이 앉아만 있는 것도 고마울 정도로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약은 매우 강력했다.


온몸은 아니지만 그래도 샤워를 하고 나니 꽤 말끔해졌다. 휠체어를 타고 돌아온 형님을 보고 간호사도 그 정도면 된 거 같다는 했다. 침대에 눕혔다. 아침은 먹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오전이 흘러갔다. 토요일의 일이었다. 형님은 점심이 되기 전에 침대에 누운 채 다시 한번 소변을 지렸다. 화장실에 데려가 변기에 앉히고 다시 씻겼다. 병실 화장실은 샤워기가 있어서 씻기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다시 옷을 갈아입히고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당부를 한 후 형님을 화장실 변기에 앉혀둔 채 서둘러 침대 시트를 갈았다.


토요일은 동창 송년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고 밴드 '연습만 3년째'의 작은 발표도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싫었다. 송년 모임 불참은 형님과 처치실에 누워 있는 새벽 2시경에 문자로 통보했다. 단톡방도 나와버렸다. 세상 모든 인연을 끊고 싶을 정도였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다. 깨우지 않으면 며칠이고 잘 것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잠을 깨워야 했고 밥을 먹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일으켜 세워 밥을 먹였다. 그때부터 조금씩 정신이 드는 듯했다.


하지만 형님은 완전히 바보가 되어 있었다. 걸음은 입원 직전보다 못했고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말을 하지 못했고, 몇 마디의 단어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발음이 어눌했다. 지난 저녁에 맞은 주사는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약 기운이 빠질 것이고 그럼 수술 후 조금은 호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겠지만 한편 불안하기도 했다. 지나친 약물 투여 때문에 수술 효과가 둔화되거나 혹은 약물이 또 한 번의 전신마취 역할을 해서 형님의 정신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더 감당하기 어려운 섬망 증세가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1인실로 옮기려는 계획은 취소했다. 다른 두 분의 환자에게는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렇게 3일 내내 섬망 증세에 시달렸다. 첫날은 자신을 죽이려고 감금했다고 했고, 둘째 날은 드디어 스스로 바늘을 뽑았으며 목에 붙인 거즈를 가리켜 머리에 뭔가 잔뜩 붙어 있어 떼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셋째 날은 온몸에서 똥냄새가 나니 집에 가서 씻고 와야 한다고 우겼다. 내 인생에서 가장 피폐한 3일이었다.


도대체 형님은 지난 저녁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묻고 싶지도 않았고 형님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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