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짧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목 May 03. 2022

글쓰기 9년

  글쓰기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굉장히 세속적인 이유에서 시작했다. 평생토록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과연 그런 일이라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반복되던 어느 날 그 생각의 막바지에서 건져 올린 것이 글쓰기였다. 90세가 넘은 일본의 한 할아버지 교수님이 책을 냈다는 기사를 보고 글쓰기는 죽기 직전까지도 할 수 있는 대단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글이란 게 써보고 싶어졌다.     


  마음을 먹는다고 글이 써지지는 않았다. 읽던 책에 대해서 뭔가를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몰랐다. 이것은 보던 영화, 듣던 음악에 대해서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문단도 예쁘가 마무리가 되지를 않았다. 옷을 못 입는 사람이 멋 부리고 싶어서 이것저것 치장한 느낌이었다. 원고지에 쓰고 있었다면 찢어버렸겠지만 컴퓨터로 작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삭제, 삭제, 삭제. 전혀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한 문단도 원하는 대로 쓰는 게 쉽지 않았던 처음에는 도대체 작가라는 사람들은 글을 어떻게 쓰는 걸까 궁금했다. 글쓰기 책을 사 모으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것도 그때부터였다. 2013년 즈음에는 지금처럼 도처에 글쓰기 수업이나 모임이 없었다. 신문사나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 내지는 문학 창작에 대한 세미나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내가 들을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은 없었다. 어찌 됐건 나는 이미 글쓰기가 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글쓰기 수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수시로 상상마당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그리고 전방위 글쓰기 모집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곧바로 등록했다.   


  수업은 글쓰기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처음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에게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내용은 거의 없었고 이미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그 글을 가지고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나는 내 문장을 전혀 발전시킬 수 없었다. 무언가를 계속 써보기는 했지만 몇 번 쓰는 정도로 나아질리는 없었다. 애초에 수업 자체가 그런 수업이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글쓰기라는 게 어느새 좋아져 버려서 맨 앞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글쓰기보다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선생님의 안목과 깊이, 통찰, 내지는 관점이 좋았다. 획일화된 세계관에 살고 있는 내가 드러났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나는 늘 고정관념의 우주에 둘러싸여 외부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 채 살았다. 내 커뮤니티 안에서 상식이라 통하는 것들에 미처 '왜'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었다. 정답은 언제나 정답이라고 생각했고 다르게 해석하는 안목의 목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다. 수업을 듣는 매 시간 나의 하찮은 안목은 부서졌다. 저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를 깨달으면 나와 레벨이 다르다는 걸 매 수업 시간마다 느끼며 생각한 걸 글로 쓰기 시작했다. 과제와는 관계가 없었는데 그게 더 좋았다. 하지만 실력이 어디 가나. 몇 문단을 채 넘지 못했다. 언제쯤 원하는 글을 척척 쓸 수 있는 걸까 고민만 하면서 나의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에 만족했다.   


  그 후로는 닥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한 두줄 써 올리던 페이스북의 글은 점차 길어졌고 나도 모르게 내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쓰는 양 자체를 늘리기 위해 무지성으로 썼다. 때를 얻든 못 얻든 썼다. 새벽 두 시에도 한 문단의 글을 쓰고 잤고 글감이 생기거나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에 적어두고 글로 다듬었다. 블로그도 새로 만들어서 글을 쓰고 브런치에도 썼다. 내 문장은 논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으므로 나는 오직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해야 잘, 빨리, 깔끔하게 써낼 수 있을까에만 신경을 썼다. 생각을 꺼내고 그걸 글로 만들어가기 위해 매일매일 썼다. 글쓰기를 습관화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될 때까지 "글로 써야지"라는 인식을 해서 쓰는 게 아니라 어느새 쓰고 있을 때까지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계속 쓰자 글을 쓰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어느새 쓰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불과 몇 문단 되지 않지만 이런 글을 어려워하지 않고 쓰게 되는데만 9년이 걸린 거다. 이게 해야 하는 의무였을까, 아니면 꿈을 향한 열정이었을까. 둘 다 아니다. 성취 지향 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장기간의 에너지를 들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그저 미친 듯이 좋아하는 일 하나를 확신하는 데 드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각적 행위, 독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