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내시경은 처음이라 처음 대장을 비우는 약을 먹고 신기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두 번째 약을 먹는데 너무 짠 이 액체를 왜 먹어야 하는지 이해하지를 못 했다. 한 모금 마시면 짠맛을 느끼는 미각들이 죄다 봉기하는 듯했다. 그들은 화가 난 듯 마구 날뛰었다. 액체를 삼키고 나서는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물을 한 모금 마셔야 한다. 그래야 미각님들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 마신 후 나는 벌렁 드러누워 나의 죄를 헤아렸다. 나의 이런 고난은 예수님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하찮은 생각들이 이어질 무렵 신호가 온다. 깨끗해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새삼스럽게 묵상하게 된다. 화장실에 앉아있으니 이것을 위해 음식을 조절하고 500ml 약을 두 번 먹어야 하는 과정의 맥락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아 나도 이렇게 고객들에게 순결해야 되는 데를 되뇌었다.
9시 50분에 병원에 도착해 약 하나를 더 먹고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았다. 내시경 전문 복장으로 정성스럽게 옷을 갈아입고 시력을 측정했다. 측정 전에는 눈을 수십 번 크게 깜빡거리면 흐리멍덩했던 안구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시력이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1.2가 나왔다. 노안 검사는 안 하는구나. 간호사님 청력 검사기 지직거려요. 건강검진에 의문이 생긴다. 간호사님이 시트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쓰신다. 이제 내시경 하실게요. 드디어 왔어.
누워있는 자세를 설명 받고 그대로 누워있는데, 다른 간호사님이 오셔서 수액을 놔주신다. 아 이런 거도 해주는구나. 작년에 다른 데서 위내시경 할 때는 이런 거 없었는데 대장 내시경은 역시 대장님이라 그런지 경호가 다르다. 그러고는 입속에 마취제를 뿌려주신다고 했다. 작년에는 이런 거 없었는데, 이 병원이 좋은 건가 보다. 입에 마취제를 뿌리는데 쌉싸름한 맛이 났다. 몇 초 입에 두었다가 침을 삼키라는데 그러고 나니 입안이 멈춘 느낌. 혀가 나무토막이 된 거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장갑을 끼우며 위내시경이랑 대장 내시경 둘 다 하시죠? 나는 "에" 나오지 않는 대답을 짧게 했다. 그리고 바로 수면유도제를 넣어주셨다. 왼쪽 팔에 주삿바늘이 들어가 있었는데 뭔가 팔을 타고 점점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바이탈을 오른쪽 손가락에 끼우고 있었는데 다섯 번 정도는 손가락을 까딱거려 볼까 생각한 나는 하나, 둘, 11시 30분이 되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죽을 먹고 다시 한숨을 잤다. 작년보다 더 어지럽고 몽롱한 게 이번에는 대장 내시경을 해서 수면유도제를 더 많이 투여한 것은 아닐까. 쿨쿨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는데 저 약은 뭐냐며 아내가 물었다. "내가 약을 사 왔어?" 옆을 보니 20일 치 약이 약봉지에 터질 듯이 들어 있다. 아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의사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게 기억은 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옷을 갈아입고 온 건 맞고 약국 간 건 뭔가 기억날 거 같기는 한데 내가 갔다 온 건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15,000원이나 결제되어 있었으니 생시다. 내 위에 뭔가 작은 염증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작년엔 헬리코박터 균 제거하는 치료를 받았다. 요즘 먹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서 소화에는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약을 지어준 것은 병원과 약국의 카르텔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약 먹는 것도 까먹고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약 잘 챙겨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