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음식의 혁신, 공유 주방 고스트키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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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준, 신규로 음식점을 오픈한 사업자의 수이다. 전체 음식점 수의 1/4 수준. 그리고 같은 해 169,164개의 음식점이 폐업했다. 어마어마한 시장 사이즈지만, 외식업자 숫자 자체는 커지지 않는다. 식당의 평균 운영기간은 2년 정도로 짧고, 그만큼 많이 망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외식업에 뛰어든다.
외식업 한 번 해볼까?
한 번쯤 해볼 상상이다. 요즘 트렌드에 맞고 잘 팔릴만한 음식이 있고, 열심히 레시피를 개발해서 요리도 가능하다. 이 정도면 다른 식당보다 맛있게 만들겠다 싶다. 인테리어와 브랜드에 대해 고민하고 뚝딱뚝딱 시공까지 마쳐 가게를 오픈했다. 이제 돈 벌 일만 남았다. 아니 그런데 왜, 손님이 안 오지? 이미 돈은 나갔는데... 되돌릴 수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수수료를 내고 배달앱에 가게를 등록하고 SNS 마케팅을 해도 잠깐 뿐이다. 심폐소생술에 실패한 음식점은 그렇게 빚만 안겨주는 애물단지가 된다.
정말 많은 사람이 외식업에 뛰어든다. 진입장벽이 낮을뿐더러, 온라인이 대체할 수 없는 몇 안 되는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망하고, 큰 손실을 입는다. 손실의 가장 큰 부분은 냉장고 등 주방 기물, 인테리어, 집기 비용 등이다. 초기 세팅에만 3-4천만 원, 목이 좋은 곳은 권리금까지 생각하면 대략 5천만 원 이상이 든다. 아무리 열심히 일했다한들 망하면 오히려 손해다. 권리금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중고로 집기를 판매하면 완전 헐값으로 넘어간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음식점 폐업에 따른 사회적 손실은 연간 1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외부에서는 음식이 만들어지는지 알기조차 어려운 45평 남짓한 공간에서 여러 셰프들이 음식을 만드는 주방이 있다. 바로 '공유 주방'. 고스트키친. 배달만 하기 때문에 매장의 인테리어나 입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음식 자체로만 인정받을 수 있다.
공유 주방인 고스트키친은 오프라인 외식업을 혁신코자 시작된 생산 플랫폼이다. 고스트(유령)처럼 보이진 않지만 어디선가 음식이 만들어지고 집으로 배달된다. 고스트키친이 운영하는 공유 주방은 배달음식점이 입점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조리에 필요한 집기를 제공하여 초기 자본금을 확 낮추었다. 인테리어 비용, 권리금도 없어서 설령 망하더라도 리스크는 현저히 적다. 고스트키친은 누구나 음식 사업을 쉽게 시작해볼 수 있도록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다. (고스트키친은 500스타트업의 시드투자 이후, 금년 2월 총 21억원 투자 유치를 완료했다.)
고스트키친의 타겟 고객은 자본가보다는 요리를 좋아하고 실제로 잘하는 사람이다. 은퇴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요식업보다는 20-30대에 일찍 본인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공유 주방은 외식업을 해보고 싶어서 고민하던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와 의욕을 주고, 더 많은 사람이 사업을 시작하게 돕는다.
배달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시장으로, 잘 될 수밖에 없다
고스트키친의 최정이 대표는 이공계 출신으로 19년간 다섯 개의 IT 분야 스타트업을 거쳤다. 마지막 직장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배달의 민족'에서 IR과 투자 관련 일을 하다 다시 뛰쳐나와 고스트키친을 시작했다. 요식업 경험이 없었던 최정이 대표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그는 푸드테크의 혁신은 LEAN Startup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디어, 즉 판매할 음식을 시제품으로 만들어보고 시장 반응을 보고, 다음 메뉴 구성에 반영한다. 기존의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도입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예를 들어 샐러드를 다양한 구성으로 내놓았는데, 생각보다 시장 반응이 좋지 않다. 혹은 꽤 맛있는 피자 레시피를 개발했는데, 브랜드 피자와 경쟁이 어렵다. 그럼 접고 다른 메뉴 개발에 집중하면 된다.(스타트업으로 치자면 PIvoting) 주방만 있고, 오프라인 매장이 없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 끝에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영업이익 대비 배달비가 결코 저렴하지 않기 때문에 점주 입장에서는 배달 비용이 꽤나 부담스럽고, 소비자는 배달비를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공유 주방은 배달 방식에 혁신을 일으켜 배달 비용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여러 업체가 모여 있으면 출발지가 동일하기 때문에 동선만 잘 짜면 배달원을 함께 고용할 수 있다. 또한 IT 기반으로 어떤 메뉴가 어떤 동네에서 무슨 요일에 잘 팔리는지 정량화하여 예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최정이 대표는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하루에 66건 배달을 해보기도 했다.
공유 주방이라는 개념이 생소하기 때문에, 건물주를 설득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건물주를 대상으로 IR을 할 줄이야) 적합한 건물을 찾는 것도 굉장히 어렵고 공사 또한 쉽지 않다. 한 개 층 전체가 주방으로 꾸며진 경우는 전혀 없기 때문에 시공 업체들도 어떻게 물음표가 가득하다. 최초의 사례기 때문에 공사를 할 때마다 표준화 작업도 병행 중이다.
그리고 기존 외식업과는 다르게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보장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강남권은 늘 수요가 있어 브레이크 타임에 온전히 쉬기 어렵다. (일반적인 업주는 하루 10-12시간 근무하는 사람을 원하고, 대부분 거의 5.5일을 인한다) 적절한 요리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커피전문점만 해도 처음에는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장이 성장하며 새로운 직업이 생겨난 케이스다. 호텔 출신 셰프의 레시피가 있지만 바리스타처럼 각 지점에서 근무할 요리사를 육성해야 한다.
규제 제한 또한 많다. 식품 위생법상 식당은 독립된 공간이어야 하며, 보건소에서 위생 신고를 해야 한다. 고스트키친은 구획을 명확히 나누어 해당 문제를 해결했지만, 전처리 작업을 하는 공간이라도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
동시에 재미있게 도전할 영역은 정말 많다. 포장 패키지를 함께 구입하여 단가를 낮추고, 식자재를 공동 구매해서 신선도를 유지하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입점 업체 간의 노하우 공유, 그리고 콜라보 메뉴를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정식당의 셰프가 쉑쉑버거와 콜라보한 것처럼)
최정이 대표는 배달의민족에서 일할 당시 김봉진 대표로부터 놀라운 인사이트를 많이 얻었다. 그중에 하나가 경쟁자를 대하는 태도. 누구도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무엇이 정답인지 상대방을 견제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경쟁자를 의식하지 않고 정말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에 집중하고, 고객이 무엇을 더 원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본업에 집중하는 고스트키친, 고스트키친의 향후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