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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나을 May 23. 2024

엄마에게도 실패할 기회가 필요하다

아이에게 관대한 만큼 나에게도 관대해지자

"귤, 귤!"


오늘도 어김없이 냉장고 앞에 서서 당당히 외치는 티거. 어찌 먹는 것과 관련된 어휘만 빠르게 늘어가는 가운데, 귤은 그 사랑에 비례해서인지 발음마저 정확하다.


“귤 줄까?” 물으니 “응!” 대답하며, 그 자리에서 콩 뛰며, 고개까지 끄덕인다. (요새 좋아하는 걸 물어보면 저렇게 온몸으로 대답한다) “그래!” 나도 흔쾌히 대답하고 귤 하나를 가져와서 거실에 앉았는데 마저 앉은 티거가 까지 않은 귤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엄마가 까줄게” 하니까 손사래를 치며 고개까지 도리도리. (긍정도 부정도 참 정확한 우리 티거다) “귤 안 먹어?” 했더니 더 격하게 도리도리.

“네가 까먹는다고?” 하니까 그제야 고개까지 크게 끄덕이며 “응!” 대답한다.


방금 목욕했는데, 옷도 새 옷인데. 잠시 갈등했지만 초롱초롱 빛나는 두 눈을 보니 에이, 뭐 까짓것 닦이고 갈아입히자, 금세 관대해져서 귤을 내밀었다.


그러자 신중하게 귤을 두 손으로 받아 드는 티거. 하지만 귤 까기는 시작부터 난관이었으니, 손가락에 힘을 적당히 줘야 하는데 푹, 하고 힘을 주는 바람에 이미 손가락 절반이 귤에 들어가 있다. 그 손가락을 빼다 동그란 귤이 데구루루 굴러가고, 다시 귤을 줍고, 또 손가락 넣기를 반복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어유, 잘하네. 잘 까네! 우리 티거 대단하다!” 열심히 응원했다.


짜증이 날만도 한데 제법 꿋꿋하게 귤을 까더니, 무려 절반 가까이 까고는 이제 더는 안 되겠는지 나에게 다시 귤을 건네는 아이에게 “우와, 티거가 절반이나 깠네. 나머지는 엄마가 까줄게” 했더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뿌듯하게 웃는다.


이 귤도 계속 까다 보면 언젠가 능숙하게 까겠지.


문득 막 돌이 지나고 유아식을 할 무렵의 아이가 떠올랐다. 턱받이가 무색하게 사방팔방으로 음식을 흘려서 만들고 차리는 것보다 치우는 게 더 일이었는데, 이제는 국에 만 밥도 제법 능숙하게 숟가락으로 떠먹으니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래, 무슨 일이든 실패할 기회를 줘야 해. 그래야 발전하지.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아이에게는 이토록 관대한데 나에게는, 남편에게는?


아이가 새로운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 우리도 엄마·아빠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당연히 하루하루가 우당탕쿵탕일 수밖에.

‘기특하다’까지는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건데, 실패는커녕 작은 실수에도 과도하게 남편을 몰아붙이거나 스스로를 자책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까짓 기저귀, 어설프게 채워서 소변 좀 샐 수 있는 건데. (이불 빨래 내가 하나, 세탁기가 하지) 까짓 이유식, 한 끼 정도 실패할 수 있는 건데. (아이가 맛없는 음식 한 끼 먹는다고, 혹은 맛없어서 좀 덜 먹었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물론 실패를 줄이는 게 가장 좋겠지만, 아예 안 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니 나와 남편의 실패에 좀 더 관대해지는 게 앞으로의 육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빠에게도 실패할 기회가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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