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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Jun 26. 2022

좋은 사람, 좋은 이별

감자도리와 마시마로, 그리고 정의되지 않는 관계

 중학교 시절 반마다 으레 있는 일진이 우리 반에도 있었는데 그녀의 별명은 감자도리였다. 작은 키에 '감자도리'라는 캐릭터와 매우 닮은 얼굴이어서 겉보기엔 앙증맞고 귀여웠지만, 성격은 정반대였다. 일단 입을 열면 그때부터 '아, 외모와 별명이 귀엽다고 해서 마냥 귀여운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 시작되는데 걸걸한 목소리에 내뱉는 말 중 절반 이상이 욕이었다. 사립 여중이었던 학교에서는 교복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을 수 있었다. 나를 비롯해 겨울에 추워서 바지를 입은 친구들이 많았다. 그녀도 역시 바지를 입었다. 바지 길이가 발목 위로 달랑 올라오게 밑단을 자르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껄렁한 표정으로 복도를 걸어 다니면…….


 참 귀엽고도 무서운 희한한 포스의 감자도리가 친애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마시마로’였다. 동글동글한 인상에 웃을 때 눈이 감겨 붙여진 별명이었다. 에이치오티(H.O.T.)와 젝스키스, 에스이에스(S.E.S.)와 핑클 등 1세대 아이돌의 팬덤이 확실할 때였다. 마시마로는 원래 에이치오티의 팬이었지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든 말든, 남녀 구분 없이 앞서 말한 네 팀을 모두 좋아했다. 조금 더 좋아하고 조금 덜 좋아하는 선호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이 팀은 좋아하고 저 팀은 싫어하고 무조건 우리 오빠들이 최고라는 정도의 팬심은 없던 것이다.


 이른바 잡팬이었던 그녀는 한창 신인이던 가수 플라이 투 더 스카이(Fly to the Sky)와 원타임(1TYM) 역시 좋아했다. 1세대 아이돌 가수들은 해체를 하니 마니 했다. 잠시 헤어지더라도 다시 돌아올 거라고 덧없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으면서 기다리는 마음을 품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가수들을 좋아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 실제로 예능 프로 등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합체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눈치챘을지 모른다. 맞다. 감자도리는 원타임의 팬이었고 한낱 잡팬이었던 마시마로를 본인과 동일시하며 온갖 애정을 퍼부었던 것인데, 그 마시마로가 바로 나였다. 나는 애초에 이 팀도 좋아하고 저 팀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잘해줬을 리가 없다. 매점에 다녀올 때면 매점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게살 튀김을 하나 더 사와 건네주고 원타임의 새 앨범이 나올 때면 레코드 집에서 앨범 하나당 한 개만 주는 포스터를 기어코 두 개 받아와서 나에게 주었다. 하루는 책가방을 안 메고 도시락이 든 보조 가방만 덜렁 들고 등교했다. 그날 감자도리는 새 책이나 다름없는 교과서를 몽땅 나에게 빌려주고 맨 뒷자리에서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쉬는 시간, cd 플레이어로 노래를 듣는데 누군가 한쪽 이어폰을 가져가 자기 귀에 꽂았다. 그 '누군가'는 감자도리였고 내가 듣던 노래는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노래, 'Sea Of Love'였다. 감자도리는 아무 말 없이 교실을 나갔다. 딱히 숨기진 않았지만 차마 한 번 더 정확히 말하지 못했던 나는 오히려 홀가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돌아왔다. 이끄는 무리 중 여섯 명쯤 되었던가, 예닐곱 명이 복도에서 나를 에워싸고 넌 뭐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한참을 따졌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마시마로 너를 얼마나……. 이 배신자!"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며 자리를 떠났다. 그때 난 알았다. 가수든 누구든 사람을 저렇게 좋아할 수 있구나. 아무런 교차점이 없어도 한 사람에게 무한정 잘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구나.



 여전히 잡팬으로서 꾸준히 좋아하던 플라이 투 더 스카이가 2014년 새 앨범을 냈다. 2009년 초에 불화설과 해체설로 사실상 활동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새 앨범이 나온다니. 반가운 마음에 그들의 옛 음악을 다시 듣고 활동 시절 영상을 찾아보며 그들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알앤비 음악을 좋아해서 노래는 줄곧 들었지만, 막상 그 팀을 이루는 사람들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뒤늦게, 무려 20대 후반에 덕질(팬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비닐에 싸인 채로 보관된 오래된 앨범을 사 모으고 굿즈를 사서 콘서트에도 갔다. 이 시기는 5년여 동안 공무원 공부를 하다가 점점 미련을 버리던 시기와 같고, 하나뿐인 언니가 결혼하면서 괜한 서러움과 외로움이 가득했던 시기와도 같다. 그들을 실제로 만나고 '오빠'를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오빠’들의 소식을 가장 빨리 접할 방법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이었다. 덕질을 위해 나도 SNS를 시작했다. 트위터에서는 팬들 간 트윗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인스타그램에 그 연장선으로 내가 찍은 '오빠들'의 모습을 올려 ‘좋아요’를 주고받았다.


 덕질은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단순히 팬 계정으로 시작한 SNS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 1월 매일 집 앞산을 등산하기로 결심하고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등산을 다녀올 때마다 인증사진을 올렸다. 베란다에 바질과 토마토를 키우고 새싹이 돋을 때부터 수확할 때까지 자라는 모습을 올리기도 했다. 자연스레 좋아하는 책에 대해 올리고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올리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알아갔다. 좋아하는 것을 올리니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인친'이었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알고 싶은 것만 알 수 있는 관계라고 해도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또 있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 위로가 되니까.


 실제로 연락하고 만나게 된 사람도 여럿 있다. 공통된 취향이 있으니 때로 어릴 적부터 친했던 친구보다 마음이 잘 통했다. 그래서 다소 급하게 알고 급하게 헤어지곤 했다. 소울메이트인 줄 알았지만 중요한 가치관이 전혀 다른 사람, 나에 관한 이야기는 전부 한 것 같은데 자신의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 사람, 좋아하는 건 비슷하지만 목소리가 크고 성격이 너무 쾌활해서 부담스러운 사람 등등. 오히려 그중 가장 안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과 가장 오래 연락을 주고받으며 생각했다. 하나의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 관계가 오히려 오래간다고. 


 며칠 전에도 그를 만났다. 약 3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가방에 넣을 자리가 없어서 주는 거라며 건넸지만, 누가 봐도 날 위해 일부러 준비한 책을 선물해 주었다. 어떤 관계냐고 물어보면 답할 말이 없어 그냥 서울 친구, 아는 동생이라고 얼버무리지만, 분명히 좋은 관계이다. 좋아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 멈추면 그도 이미 멈춰있고, 서로의 플레이리스트가 같은, 말이 필요 없는 관계. 그의 말을 빌리자면, ‘낯선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좋았던 시절에 만났는데, 어느덧 이제는 오랜 친분이자 익숙한 사람으로 만나는 게 편한’사람이 되었다.



 귀엽고도 무서웠던 감자도리가 나에게 '배신자'라고 하며 울어버렸을 때 가장 큰 걱정은 나를 해코지할까 봐서였다. 잘해준 만큼 악독하게 괴롭힐까 봐.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 뒤로 날 모르는척하는 것에 그쳤다. 그냥 내버려 뒀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조금 시간이 지나 원타임의 새 앨범이 나왔을 때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함께 노래를 들었다. 덕분에 그 일은 "있잖아, 중학교 때 우리 반에 감자도리가 있었는데…" 하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재미난 추억이 되었다. 그녀와의 기억이 재미있는 이야기로 남아주었기에 좋아하는 것도 많고 취미도 많은 나는 나의 취향을 늘어놓고, 나와 닮은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감자도리는 분명히 또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는 마음이 괴로운 아이였지만 나에겐 좋은 친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한 가지가 비슷해도 다른 한 가지가 다르면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예단하고 거리를 두었다.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별의 순간들로 돌아가 좋은 이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든다. 너무 어렸고 생각이 짧았다는 말로 미처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서툰 이별의 시간이 이제 와 하나씩 떠올라서이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적어도 그렇게 급하게, 함께 했던 시간의 의미를 모두 저버리며 헤어지진 않을 텐데. 상대가 누구든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고 서로의 앞날을 응원할 수 있는 이별을 할 텐데. 그것도 지금의 심정을 안고 돌아가야지, 단순히 그때로 돌아가선 안 될 일이지만.


 열일곱일 때 만나 나를 위해 기도해주던 서른네 살 목사님이 당신의 꿈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에게 잘해주었으니 이미 좋은 사람이라고 하자 자기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고, 잘못한 일이 많아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지금 나의 마음과 비슷했던 걸까. 며칠 전 만난 그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예전 목사님의 말을 그대로 내뱉진 않았지만 속으로 곱씹으며 생각했다.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우선은 좋은 이별을 하는 사람이 되자고.









<커버 이미지는 유튜브 애니원에 있는 감자도리 1화 장면 중 캡처한 화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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