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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Nov 04. 2019

살아간다 vs. 살아진다
(ft. 고민과 소설가)

 

요즘 '살아진다'는 말을 곱씹고 있다. <고민과 소설가>때문이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질문자님처럼 말입니다.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인생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정진하면 되고,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그저 순리대로 닥쳐오는 상황을 해결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올여름, 지인 B씨가 '이쯤 살아보니 인생 별거 없어, 그냥 살아지는 거야'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것이 나보다 나이든 이의 삶에 대한 피곤함과 패배감이라고 생각했다.

덩달아 맥이 빠지기도 했다.


달려나가고자 출발선에서 온몸을 긴장시키며 호각소리를 기다리는데 막상 그 호각에서 삑사리가 난 느낌.

헛웃음이 나오고 팽팽하게 긴장한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 

달려봤자 이미 늦겠다 싶어 출발선에서 뒤쳐진 느낌.


열심히 살아도 잘 모르는게 삶의 목적인데,

살아지는 대로 즉 대충대충 살면 그나마도 어떻게 삶의 목적을 알 수 있을까.

너무 수동적인 사고방식인데?? 음식을 씹으며 의문도 꿀떡삼켰다.


열심히 사는 사람은 삶을 의지대로 ‘살아가'려 한다. 당연히 목표의식과 기합으로 힘이 넘친다.

이때의 힘은 자신에 대한 충만한 기대에서 나온다. 이게 과도하면 reflection이 어렵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그러나 매사 힘주고 사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다. 게다가 삶은 이 기대를 깨부수는 연속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어서와, 인생은 처음이지? 후훗”)


그래서 그런가, 이 책에서 다시 ‘살아진다’는 말을 만나고 보니, 마음이 훅 당긴다(아아 전투 의욕이 사라진 것인가). 사전을 보니 순리란 ‘도리나 이치에 순종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 삶을 관통하는 도리 혹은 이치가 있다는 것이며, 이를 알아야 그 흐름에 따를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살아진다’는 것 또한 파닥거리며 삶을 몸부림치며 '살아간'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살아진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불필요한 기대나 이유 없는 패배의식 없이 그저 덤덤하게 거울속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열심히가 아니라 제대로는 살아갈 수 있으리라. 아아, B 선생님, 제가 오만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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