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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Jun 01. 2020

커리어에서도, 화양연화

화양연화의 달콤함과 씁쓸함


1. 화양연화와 전성기

‘화양연화: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 

이 개념을 빌자면 커리어의 화양연화란 워킹 라이프에서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의미한다.

얼핏 전성기가 아닌가 싶지만 전성기와 화양연화는 커리어의 성숙함에서 차이가 있다. 커리어의 전성기는 직급으로 치자면 위에서 신망받는 부장급, 자신의 부서는 물론이요 인근 부서에서도 인정을 받으며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그 동안 쌓인 스킬과 연륜을 풀어내는 단계이다. 그래서 전성기는 본인이 의도치 않아도 빛난다. 신입사원에게도 저 사람이 전성기라는 것이 보인다. 반면 화양연화는 남의 눈과는 무관하다. 일하는 자로서의 새로운 자기를 발견하는 시기, 그래서 자신과 새롭게 사랑에 빠지는 시기, 그래서 화양연화는 달콤하며 은밀하다. 


2. 화양연화는 행운이지만…

대부분의 화양연화는 과장급 이하, 자신의 일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100%이상 지기 시작하는 실무자 시기에 발생한다. 다른 말로 새로운 일을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충만한 상태가 화양연화의 전제조건이다. 

두번째로는 자신의 일에 흥미를 느껴야 한다. ‘잘하지만 재미를 못 느끼는 일’과 ‘잘 못하지만 재미있는 일’ 둘 중 하나라면 후자의 경우이다. 새롭고 신선한 출발+ 흥미를 느끼는 일이 등장하면 사랑에 빠지지 않는게 더 놀랍다. 모든 아이디어가 일로 연결되고 이것저것 실험해보고 싶어진다. 자발적으로 많은 시간을 업무에 투입해도 아드레날린이 솟는다. 물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두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실패도 있고 좌절도 있을 것이다. 이 고통극복의 서사가 화양연화의 핵심이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워킹자아가 단단해진다. 사실 이후의 워킹 라이프란 (직무가 바뀌지 않는 한) 이미 경험한 프로세스를 반복하되 이를 얼마나 깊이있고 디테일하게, 그리고 성과의 확률을 높이는가에 달려있다(+일신우일신이 없다면 커리어의 성장은 멈춘 것이다)


그러나 이 화양연화는 건강(정신력이 아니다)이 허락해야 가능하다. 이것이 세번째 조건이다. 일과 사랑에 빠지려면 체력이 ‘동의’해야 한다. 하루 일하고 이틀을 앓아누워야 한다면 저렇게 일할 수도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 대부분은 월급을 받아 생활해야 하는데 건강을 잃으면 어디에도 다닐 수가 없다. (참고로 몸의 통증은 내가 이 일에 맞는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이다. 몸이 아프다면 당신은 그 일과 맞지 않다)  

그러므로 커리어 화양연화가 있다면 기뻐하라. 당신은 대단한 행운아, 신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다. 


3. 제 때 보내주어야 한다

 위에서 보듯 화양연화는 아름다운 한 때, 한 시절이다. 이미 지나간 첫사랑을 언제까지나 붙잡고 있을 수 없는 것처럼 화양연화를 통해 성장한 워킹자아는 이를 기반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화양연화를 넘어 성장하고 있는가? 


 당신의 이력서가 현재의 경력보다 이전 과거 경력과 성과를 더 힘주어 설명하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화양연화에 미련을 갖고 맴도는 중이다. 의외로 그런 이력서들, 많다. 이미 1년 이상 재직 중인 현재의 일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직무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직전 회사의 경력만 지나치게 길고 화려하다. 그리움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 드라이한 행간에서도 느껴질 정도. 


 대개 동종업계보다 이종업계로 이직한 경우 그런 현상이 많이 보인다. 한 회사에서 성장과 성공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은 좀 더 지명도가 높은 회사에서 커리어를 성장시키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마침 유명 기업의 잡 포지션이 오픈되면 이직을 고려해보게 된다. 문제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회사, 그것도 이종업계의 조직문화나 시스템에 적응하고 성과내기 그리고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옮긴 회사의 일이 신규사업일수록 자신의 직급이 높을수록 그렇다. ‘젊을 때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때 사랑인 줄 몰랐’던 것처럼, 쓴 맛을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가 자신의 좋았던 한때, 화양연화였음을 알게 된다. 그 달콤한 기억을 잊지못해 다시 이직에 나서지만 경력사원은 최신 경력을 파는 사람. 현재가 생략된 이력서는 이미 ‘피치못할 사연’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커리어의 화양연화는 개인의 성장서사가 담겨있기에 중독성이 있고 그래서 떨치기가 아쉽다. 그러나 어쩌랴, 당신은 이미 그 단계를 거쳤기에 지금의 자신이 된 것을. 이제는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어할 게 아니라 새롭게 전성기를 향해 나아갈 시간이다. 지나간 첫사랑에 연연하다가 현재의 연인도 잃기 쉽다. 그러니 넘어가자. 바이바이 화양연화, 헬로,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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