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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Jan 17. 2024

흑염소와 보톡스로 시작하는 마흔 맞이

요양병원에서도 보톡스를 맞아야겠어

30대 극후반을 향해가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나이가 대수냐라는 마인드가 강하고, 영어 강사라는 직업상 누굴 만나면 “안녕하세요. 몇 년생이세요...?”라는 말 대신 “Hello. How are you?”를 말해야 하니 점점 나이를 말할 기회가 사라졌다.


그렇게 내가 3X이라는 라며 희미하게 나이를 잊고 살아갔다. 하지만, 아이 두 명을 출산을 하고 나서 둘째가 이제 세돌을 앞두고 나니 (첫째는 예비초등) 뭔가 긴장한 마음이 풀렸나 보다. 온몸이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했다. 독감은 커녕,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튼튼한 몸은 코로나와 독감 원투펀치를 맞고 두 달을 회복을 못하고 빌빌거렸다. 온몸이 간지러운 소양증은 갑자기 시작됐고, 어깨와 목에 올라간 담은 사라질 기미가 안보였다. 괜히 이게 마흔을 초입에 둔 30대 후반의 몸인가 싶다.


두 달 동안 콜록거리며 통화를 하는 딸이 지방 사는 친정엄마 마음에 걸렸나 보다. 지난 주말에 올라오시면서, 흑염소 몇 팩을 가지고 오셨다. 양의학을 선호하고 한의학을 불신한 딸이 얼마나 콜록 거렸으면 챙겨왔나 싶다. 한약이든 보약이든 뭐든 해준다는 친정엄마보고, “거기에 뭐가 들어갔을지 어떻게 아냐”고 투덜거리며 안 먹은 딸의 상태가 오죽하면 들고 오셨을까.


둘째를 낳은 다음 해에 친정엄마는 텃밭에서 직접 키운 약호박에 우슬만 넣은 호박즙을 내려주신 적이 있다. 하지만  너무 고약한 맛이 나서 한 팩만 먹고 다시 친정엄마에게 더 필요한 약같다며 돌려줬다. 이런 전력이 있는 딸에게 흑염소를 주는 친정엄마는 영- 못 미더운지 계속해서 반복한다.

엄마가 한약재는 하나도 안 넣고ㅡ
딱 흑염소랑 당귀랑 대추같은
일반 약재만 넣은 거니
저녁에 따뜻하게 마시고
엄마한테 이야기해


몸도 아프기도 하고, 엄마의 부탁의 콜라보로 혹시나 싶어, 할 수 없이 먹은 지 일주일쯤 지났다. 흑염소가 뭔지 자세히 알면 못 먹을 것 같아 검색도 안 해보고, 눈 뜬 장님처럼 먹고 있는데 흑염소의 효능이 잠을 부르는 건가? 하루종일 잠이 쏟아진다.


워낙 예민해서 밤에 두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서 뒤척이는데, 흑염소를 먹으니 9시에 자서 다음날 6시가 넘게까지 취침을 했다. 새벽 글쓰기 모임도 놓친 적도 생겼다. 와, 이렇게 잠을 많이 자면 없던 면역력도 생기고 피부도 좋아지겠다. 흑염소는 잠을 잘 오게 해주는 효과를 보며 어찌어찌 일주일정도 꾸준히 먹는 중이다.


따뜻한 물에 따끗하게 데워서 한팩을 저녁에 먹고 자야한다는 복용법을 지키는 중




지난주에 친한 언니를 일 년 만에 만났는데,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한다.

해내내야, 너 보톡스 좀 맞아야겠다.

얼굴의 미간 주름이 너무 깊어져서 가만히 있어도 화가 난 얼굴 같다나. 그렇게 (처녀시절 뻔질나게 다녔지만, 출산과 동시에 발길을 끊은) 피부과를 갔다.


피부과라는 건 다닐 때는 모르는데, 안 다니면 바로 티가 나는 것이 흡사 집안일과 같다. 하지만 ‘애기엄마‘라는 면죄부와 ‘선크림은 꼬박 발라주니깐 ‘이라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거울을 외면했다. 그렇게 6년 만에 찾은 피부과에서 진찰한  피부 상태는 처참했다. 보톡스를 맞으러 간건데, 출산 후 생긴 기미에서 시작한 상담은 레이저 치료 계약으로 마무리 했다. 한 달 생활비 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피부과에서 ‘미용목적’의 치료를 받기 시작하다니.

미간보톡스와 레이저, 대환장 가격의 콜라보


마취 크림의 차가움이 가시고 레이저 치료의 따끔거림과 토닝레이저의 타는 냄새가 나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내적 고민이 한창이다. 한 달 생활비보다 더 큰돈을 단지 내 피부에 써도 되는 것인가? 요즘은 할머니들도 보톡스를 많이 맞는데, 나라고 못 맞을 건 또 뭐야?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꾸준하게 피부과를 다닐 생각을 하니, ’이 돈이면 첫째 스케이트 학원이랑 피아노 학원을 몇 달을 더 다닐 수 있는데”라며 가성비를 따지고 있다. 피부과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내 모습이 보인다. 얼굴 빼곡하게 붙은 재생밴드를 보니, 내일 유치원으로 출근해서 아이들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변명을 생각해 본다.



출산을 하고 난 이후에는 나에게 투자하는 미용실 값과 네일가격은 두려워 파마도 못하고 네일아트는 사치라고 느꼈다. (물론 갈 시간도 없었다.) 그러면서 아이의 전집과 교구는 몇 백만 원씩 일시불로 사버렸다.


하지만 이제 마흔을 앞두고 온몸이 아프고 피부가 늘어지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한 나에게 약간은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이왕 예뻐지는거에 투자했으니깐, 올해는 꼭 '책을 써서 어른 대상으로 강의를 해야지' 라는 죄책감에 물드는 대신 희망회로를 돌린다.


'내가 행복해지고 (예뻐져야), 애들도 행복해질 것이야.' 조용한 주문을 외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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