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부님들 애쓰셨습니다.
어른이 되고 보니 5월은 사실 굉장히 잔인한 계절이다. 금전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그 시작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친정엄마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거 사주라며 10만 원을 통장에 보냈다. 받으면서도 기쁨 마음보다는 어버이날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
빨간 날에도 당연히 출근을 해야 하는 기자인 남편은 6:20분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6:50분에 일어난 아이들. 미리 사놨던 디폼 블록을 꺼내주며 (총 2만 원) 어린이날을 시작했다. 어린이날에 비가 많이 온 덕분에 다행이랄까. 아침부터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디폼블록을 만들고, 쿠키를 만들면서 조촐한 어린이날을 보냈다. 감사하게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크게 어린이날 행사를 하고 왔으니, 집에서는 '다소 조용해도 괜찮겠지'라며 올라오는 죄책감을 슬쩍 눌러 넣었다.
그리고 어버이날이 됐다. 아침부터 고민이다. 친정 부모님께 얼마큼 드려야 할까. 내가 10만 원을 받았으니 10만 원만 다시 돌려주기에는 뭔가 염치가 없는 것 같고, 10만 원은 친정 엄마에게, 또 10만 원은 친정 아빠에게 보낼까. 20만 원을 그냥 친정 엄마에게 보낼까. 아, 이런 10만 원에 쪼잔하게 고민하는 내가 싫다. 우선 출근부터 하고 고민하자. 그리고 점심시간에 친정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아빠가 어버이날인데 아무 연락도 없다고 너무 속상해한다며
매일 출근길 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한 달에 3번 정도 서울로 올라가는 KTX티켓을 끊어주고, '00가 없다' 하면 쿠팡으로 바로바로 보내주는데도 어버이날에 연락이 없어 서운하다니! 평상시 부모님께 하던 자잘한 일들이 치사하게 생각난다. 몇 천만 원씩 (투자)해줬던 남동생은 현재 부모님과 연을 끊었고, '혼자 장학금을 받으며 아등바등 유학을 다녀온 나는 아직도 이렇게 자잘한 업무를 해결해주고 있는데!'라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물론 부모님도 없는 살림에 우리에게 정말 잘해주신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보내주시기도 하시고, 텃밭에 있는 채소도 손질하여 가득 보내주신다. 사실 부모님이 건강하게 두 분이서 재밌게 사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어버이날'이 뭐라고 나를 이렇게 치졸하게 만드는지.
스승의 날에는 정성이 들어간 편지와 종이접기 카네이션을 붙인 작은 쿠키를 보내며 김영란법에 감사했다. 부부의 날은 뭔지도 몰랐고 서로 챙기지도 않았다. 어른이 되고 보니 5월은 현금이 숭텅숭텅 나가는 계절이었다.
고물가는 이제 일상인 시대이다. 기후 변화로 인하여 마트물가는 최고가를 찍었고, 과일보다 옷이 싸진 세상이다. 세계 각국의 전쟁을 시작으로 원유값과 원자재 가격 연실 최고가를 기록 중이다. 최저임금이나 주휴수당 등을 고려하면 자영업자에게 아르바이트를 쓰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카페 카운터 포스기 앞에서 쩔쩔매는 사장님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적자 가구의 비율은 26.8%로 집계됐다. 즉 5집 중에 1집은 가계 재정이 적자라는 이야기이다. 우리 집도 맞벌이를 하고, 일반 유치원과 국공립 어린이집을 보내는데도 현금이 항상 부족하다. (저학년까지가 돈을 모을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 더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있다.)
이런 고물가 시대에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역시 바뀐 게 다만 우리 집뿐만은 아니리라. 김영란법이 가정에도 존재하면 좋겠다. 특별한 날이나 기념일에 선물이나 놀러 가는 비용은 최대 3만 원으로.
특별한 날이라 무조건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일상을 특별한 날로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기념일로 보내자. 어린이날에는 집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체험하기. 어버이날은 영상편지 속 말로 감사함을 표현하기. 스승의 날에는 글로 감사하다며 표현하기로 바뀌는 그런 문화로 정착되길.
*구멍 난 통장을 멱살 잡고 오시느라 힘드셨던 주부님들 및 모든 어른이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