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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혹의 우뇌 Jan 22. 2018

Yellow, Blue, and Red?

이른 아침, 이민국 심사가 있어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콜롬비아에 장기체류 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입국 후 이민국에 15일 안에 보고하는 것이 의무다. 무표정한 이민국 관리들에게 여러 질문을 받기 시작하니, 보고타에 온 게 더욱 실감이 났다. 적어도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하면, 세계 어디를 가나 이민국이 친절한 나라는 찾기 힘는 것 같다.


이민국 심사는 서류를 보완해서 다시 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싱겁게 끝이 났지만, 워낙 이른 시간에 나온 탓에 회사에서 다음 미팅을 하기 전, 마중 나온 회사 동료와 커피 한 잔을 마실 여유가 생겼다. 남미의 스타벅스라 불리는 후안 발데스 (Juan Valdez)에 잠시 들러서 커피를 한 잔 하기로 동의를 하고, 근처를 살피는 중에 도로에 걸린 커다란 콜롬비아 국기가 눈에 들어왔다. 콜롬비아 국기는 보고타의 높은 산을 배경으로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선명한 노란색, 파란색, 그리고 빨간색.


이민국 앞을 나오는 그 순간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느낌은 이 사진과 어느정도 비슷했다. 사진 출처: https://practicalwanderlust.com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동행해 준 회사 동료에게 물었다. "국기의 색깔에 어떤 상징이 있니?"

"노란색은 금(gold), 파란색은 물(water), 빨간색은 피(blood)를 상징해!"


금은 콜롬비아가 보유한 거대한 광물자원을 상징한다. 사실, 콜롬비아는 광물 채굴 산업에 상당한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광업(mining industry)은 콜롬비아 전체 GDP의 2.4%를 차지하고 있는데, 현재 전체 채굴 가능 지역 중 20% 정도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즉,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라는 뜻이다. 한 리서치 회사(Behre Dolbear group)에 의하면 콜롬비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4번째, 전 세계에서 7번째로 광업에 투자하기 좋은 국가라는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광업은 산림을 벌채하고, 환경과 생물다양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콜롬비아가 현재 범정부적으로 추진하는 녹색성장 정책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실제 요즘 광업 관련 회사들도 환경파괴에 대한 상쇄(offset) 개념으로 기업의 (환경적) 사회적 책임(CSR)을 다 하거나, 실제 광물 채취 과정에서 환경 부하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지난해 말, 콜롬비아 정부는 탄소세 (Carbon Tax)를 제정하며,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에 톤당 미화 5달러를 부과해 녹색성장 계획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의 주목과 찬사를 받았지만 (기사 참조), 사실상 석탄 산업 (Coal Industry)에 종사하는 기업을 탄소세 부과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광업이 아직도 이 나라에서 큰 경제활동의 원천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에 따른 로비가 진행되고 있음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파란색은 물을 상징한다. 콜롬비아는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카리브 해와 맞닿아있다. (참고로, 카리브해의 항구도시 카르타헤나(Cartagena)는 라틴아메리카의 낭만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젊은 열정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아마존 산림과 안데스 산맥을 관통하는 여러 강도 흐른다. 강과 바다가 이 대륙과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콜롬비아에는 아름다운 강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 그중 하나는 "크리스털 수로 (Caño Cristales)"라 불리는 강이다. 이 강은 메타(Meta) 주에 위치한 구아 야베로 (Guayabero) 강의 지류인데, 이 강은 "오(五) 색의 강 (River of Five Colors) 혹은 "무지개 강(LIquid Rainbow)"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매년 7월부터 11월 사이에 강의 색깔이 조류(algae; 藻類)의 영향으로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검은색, 빨간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강이 흐르는 지역은 게릴라군의 소유여서 접근하기 위험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참조: Youtube 영상)

무지개 강이라고 알려져 있는 Cano Cristales, 출처: http://www.cano-cristales.com/


마지막으로 빨간색은 스페인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운 콜롬비아 인들의 피를 상징한다. 현재의 콜롬비아는 1800년대의 그란 콜롬비아 (Gran Colombia), 대 콜롬비아 공화국으로부터 유래한다. 구체적으로는 1819년부터 1831년 사이의 콜롬비아 공화국을 의미한다. 당시의 영토는 오늘날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 전체 및 코스타리카, 페루, 브라질, 가이아나의 영토도 부분적으로 포함하고 있었다고 한다. 12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맹주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란 콜롬비아를 이끌던 인물은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 해방을 이끌었던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로, 스페인 식민지배에 대해 저항하던 라틴 아메리카 세력을 통합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쟁취 후 연방주의자들과 분리주의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고, 미국도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 통합된 강력한 국가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 등, 대내외적 이유로 그란 콜롬비아는 해체되고 만다. 오늘날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의 국기는 그란 콜롬비아 국기의 영향을 받았다.


콜롬비아에 입국했을 때부터 라틴아메리카인들이 사용하는 다채로운 색감과 색의 어울림 등에 관해 감각적인 동요가 있었는데, 그런 생각들이 국기를 형성하는 세 가지 색과 함께 묘하게 어울려 콜롬비아라는 나라에 대한 내 고유한 관점이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콜롬비아 국기. 세 가지 색에 대한 궁금증으로 부터 콜롬비아 역사를 잠깐 더듬어 봤다.
베네수엘라의 국기.
에콰도르의 국기.
그란 콜롬비아 시대의 국기 (1821년 ~ 1831년). 이 국기가 현재의 콜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의 국기에 영향을 미친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p.s. 이렇게 콜롬비아 국기에 대한 이야기를 공부하고 나니, 갑자기 태극기가 떠오른다. 끊임없이 창조와 번영을 희구하는 한민족(韓民族)의 이상, 라틴아메리카 한 복판에 서서 태극기의 의미도 다시 곱씹어 본다.(참조: 태극기에 대한 역사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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