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면세점 - 열심히 한 죄
면세점 직원은 크게 두 부류였다.
면세점 소속인 직영사원과 각 브랜드에서 나온 파견직원.
직영은 굳이 실적을 내지 않아도 됐지만, 파견은 달랐다.
매출 압박 속에서 매일매일 전쟁처럼 살았고, 하루하루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나는 직영사원이었다.
사실 안내 데스크 면접을 봤는데, 키가 작아 데스크는 힘들겠다며 대신 판매사원으로 와 달라고 했다.
카페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 '커피 파는 거나 화장품 파는 거나 비슷하겠지' 하는 생각에 알겠다고 했다.
첫 출근 날, 반짝이는 매장들 사이를 지나 한 화장품 브랜드 매장에 도착했다.
직원들은 모두 여자였고, 20~30대 또래였다.
괜히 안도했다.
그런데 매니저가 처음 내게 던진 질문은 너무 당황스러워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네?" 하고 되묻자,
"아니 그 눈, 네 거냐고."
그 눈이 내 거냐니—쌍꺼풀 수술을 했느냐는 말이었다.
"네, 제 건데요."
"아, 그래?"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눈, 코, 입부터 몸무게까지 탈탈 털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여초회사 바이브인가 싶어 정신이 혼미했다.
일주일은 제품을 공부하며, 매니저와 선배들이 판매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집에 가서는 일본어로 어떻게 판매할지 연구하며 피곤한 날들을 보냈다.
드디어 첫 판매.
인기 상품인 팩을 팔고, 매니저와 선배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기분 좋게 웃으며 가는 나에게 매니저가 물었다.
"몇 개 팔았어?"
"한 개요."
"왜?"
"하나만 찾으셔서요."
"하나 사러 온 사람한테도 세 개는 팔아야지.
매출이 네 인성이고, 네 인품이야."
그렇다. 여기서 월급값을 한다는 건, 곧 매출을 올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인성 좋은(?) 매니저 덕에 선배들은 늘 시달리고 있었다.
'화이트 대전'이라고, 각 면세점 같은 브랜드끼리 화이트닝 제품 매출을 두고 경쟁하는 시즌이 있었다.
1등 팀에게는 무려 '칸쿤'여행이 주어졌다.
사실, 직영사원이었던 나는 열심히 해도 특별히 얻는 건 없었다.
칸쿤도 못 가지, 인센티브도 없지.
하지만 매니저는 데스크에 판매 실적을 기록하는 종이를 붙였고, 거기엔 내 이름도 적혀 있었다.
그 무렵 일에 익숙해졌고 나만의 셀링 멘트도 생겼다.
피부가 흰 편이라 화이트닝 제품을 곧잘 팔았다.
열심히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재미있었다.
종이에 '正'자가 차곡차곡 쌓이더니,
어느새 나는 우리 매장 1등 사원이 되어 있었다.
매니저가 좋아했고, 시프트도 함께 서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오후 출근했더니 선배들이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매니저 앞에서 혼이 나고 있었다.
"직영도 저렇게 파는데 너희는 뭐 하는 거야?"
나 때문이었다.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선배들은 착한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팔았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라며 오히려 다독여 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더 의지했다.
매니저는 그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사적인 대화는 하지 말라고도 했다.
면세점에는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많았다.
매니저들끼리 서로 매장을 감시했고, 매니저가 없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답답했다.
갑갑했다.
그러다 위까지 아팠다.
처음으로 위내시경을 받았다. 출혈성 위염. 위벽에 피가 나고 있었다.
다른 선배들도 원인 모를 손가락 피부염 같은 병을 달고 살았다.
모두가 스트레스 속에서 버티고 있었다.
죽과 약으로 4주를 견뎠다.
다른 매장에서 오래 근무한 직영 언니들을 보니, 판매도 느긋하게 하고 휴가도 잘 쓰고 있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화이트 대전'에선 2등을 했다.
매니저는 칸쿤은 못 갔지만 대신 2등 상품인 발리 여행을 갔다.
나는 60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다.
더 열심히 해 달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나는 그다음부터 적당히 했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구나.'
그렇게 적당히 하는 법을 배웠다.
그 매장에서 2년을 버틴 뒤 다른 매장으로 옮겼을 무렵,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그때는 뭔지 몰랐는데, 많이 힘들었는지 공황 증상이 찾아왔던 것 같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출근길에 시야가 좁아지고 아무것도 안 보이고 몸이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놀라서 병원에 갔다.
몸에는 이상이 없었고, 심리적인 원인이라고 했다.
의사 앞에서 펑펑 울었다.
이러다 나 죽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3년 만에 면세점을 나왔다.
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