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단기알바 - 안 좋은 일은 몰아서 오는 법
면세점에서 살려고 뛰쳐나왔는데, 정말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몸은 금세 좋아졌다.
집에만 있기는 눈치가 보일 만큼 회복한 나는 결국 알바몬을 뒤적였다.
보험회사 사무직 공고였다.
흥미로웠다. 판매가 아닌 사무직도 단기로 구하는구나.
어떤 일을 하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고, 집에서 멀지 않아 바로 지원했다.
하는 일은 단순했다.
게시판에 올라온 증권 재발행 요청을 처리하는 것, 그중에서도 팩스나 메일로 보내는 업무였다.
요청은 게시판·메일·쪽지로 들어왔다.
그중 게시판은 여러 명이 함께 보는 공간이었다.
먼저 본 사람이 제목에 표시를 남기고 ‘찜’하면, 그게 곧 담당자가 되는 식이었다.
속도가 붙으니 게임 같았다.
칸이 채워지는 오셀로처럼, 내 표시가 늘어날수록 괜히 뿌듯했다.
끝도 없이 일이 들어왔지만, 최대한 많이 처리해 두고 퇴근하려고 애썼다.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실장님이 제안했다.
“계속 같이 해보면 어떻겠니?”
잠시 흔들렸다.
사무실에 앉아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도 괜찮았고,
대기업 이름이 적힌 사원증을 목에 거는 기분도 썩 나쁘지 않았다.
그 겨울, 내 인생에서 가장 잊기 힘든 일이 닥쳤다.
아빠가 신장암에 걸리신 것이다.
우리 아빠가 ‘암’이라니.
드라마에서나 듣던 단어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것은 0기에 발견되었다.
의사도 “이때 발견하기 힘든데 어떻게 아셨냐”라고 물을 만큼 극초기였다.
엄마는 가끔 신기가 있는 것 같다.
이번에도 정기검진 때가 아닌데 괜히 검사해 보라고 하셔서, 덕분에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수술은 피할 수 없었다.
한쪽 신장을 떼어내는 수술실 앞에서 나는 몰래 눈물을 훔쳤다.
두 시간이라던 수술이 세 시간이 되자, 아빠께 잘못했던 일들만 떠올랐다.
수술만 잘 끝난다면 세상에서 제일가는 효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동안이라는 말을 자주 듣던 아빠는, 수술 한 번에 순식간에 제 나이로 변해버리셨다.
그 후에는 병문안을 다니고, 아빠 없이 혼자 일하느라 바빠진 엄마 대신 집안일도 챙겼다.
그래서 보험사 일은 연장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빠가 갑자기 말씀하셨다.
“딸, 공인중개사 공부해 보는 게 어때?”
그 시절 엄마는 이미 자격증을 따 아빠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근처에 사무실을 하나 더 내고 싶으셨던 아빠는 내게 제안을 하신 것이다.
효녀가 되겠다고 다짐도 했고, 원래 공부를 좋아하던 나는 곧장 교재를 폈다.
시험까지는 석 달밖에 남지 않아 1차만 준비했다.
엄마가 다녔던 학원에 등록하고, 동네 도서관에서 인강을 들었다.
부동산학개론과 민법.
생각보다 인생에 도움이 되고, 재미있는 공부였다.
1차 시험은 무난히 합격했다.
2차는 1년 뒤라, 공부만 하기엔 시간이 아까워 오전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알바몬을 보던 중, 27분 전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
지원하자마자 연락이 왔다. 곧 면접을 보러 갔다.
사내 카페 아르바이트였다.
그렇게 내 인생의 겨울은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