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디서 읽은 글인지.
당나귀였는지, 심지어 동물이었는지, 사람이었는지 조차 확실하지 않은데, 아무튼 그 존재가 구덩이에 빠졌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파묻으려고 삽으로 흙을 퍼서 구덩이에 뿌렸는데, 자신을 파묻으려고 뿌린 흙을 밟고 올라서고, 또 밟고 올라서서 결국에는 구덩이 밖으로 나왔다는 이야기.
이 가물가물한 플롯의 이야기가 자주 떠오른다.
늘상. 심리 상태의 곤란함, 관계의 곤란함, 이어지는 삶의 전반의 곤란함, 나 자신에 대한 실망, 수치, 회한... 타자에 대한 분노. 지리하고 또 타격이 센 분노에서 비롯된 무기력함.
무기력으로 내 목숨보다 몇 갑절 더 값어치 있는 존재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 있을 지 모른다는 그 마음의 짐, 그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깊은 아픔의 곤란함...
계속해서 삶이 구덩이 속의 나에게 흙을 뿌리는데, 그래 한 번 뿌려봐라, 밟고 올라서줄게.
하고 싶은데...
왜 자꾸.
그 구덩이 속에 파묻혀 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건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피상. 아무리 봐도 그 보다 더 얄팍한 인간들의 겉 껍데기만 포장된 모습들.
어려도 놀라우리만치 악한 인간들. 성선과 성악을 규정하고 믿게 만드는 인간들.
그 속에서 늘 허둥대고 쩔쩔매는, 어떻게 매 번 대처해야 할 지 길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그 반복 속에서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병맛 인간이 되어가는.
선이라는 것은 결국 어떤 모습인지 이제 완전히 헷갈려 버리는 지경의...
왜. 라고 물으면 안되고, 어떻게. 라고 대응해야 한다는데...
그래서 선함은 강함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따르기로 했다.
강하지 못하면... 선의는 왜곡되고 구겨지고 비루한 가치로 전락한다.
선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선이 원형 그대로 세상으로 나가도록,
강함에서 비롯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