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2017)
한국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화의 크랭크업 소식은 인터스텔라의 후속작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다. 방대한 이야기의 배트맨 시리즈를 통해서 부조리한 사회와 이를 대한 인간의 모순적인 태도의 민낯을 성찰하였던 바 있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번에는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전쟁에서 사상 최대의 규모로 실시된 철수작전을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하였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벨기에와 프랑스까지 함락당하였고,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은 40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군과 영국의 대륙원정군을 덩케르크 항구에 몰아 포위하였다. 병사들을 탈출시켜야 했지만 군함은 적기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해군만으로는 전체병력의 10%밖에 구출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영국정부는 민간 선박 모집령을 내린다. 그렇게 5월 26일 프랑스 덩케르크 항구에서는 '다이나모 철수작전'이 시작되었다.
영화 덩케르크(Dunkirk, 2017)는 독일에 포위되어 고립된 군인들의 불안한 마음과 적과 대치한 상황에 기인한 긴장감, 그리고 구출을 기다리는 간절함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특히 한스 짐머의 음악과 함께 절묘히 어울리는 감독의 연출은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에게 내 감정을 이입하게 할 뿐 아니라 마치 직접 현장에 있는 것처럼 만든다. 한편,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2017)는 이처럼 긴박한 덩케르크 구출작전을 전후하였을 당시 영국 수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덩케르크가 전시의 긴박한 상황을 현장감 있게 담아냈다면 후자는 해당 작전이 실시되는 과정과 그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의 상황과 그의 심리에 촛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런데 덩케르크 작전은 정말 성공한 작전이었는가. 독일 공군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민간 선박의 도움으로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군인 33만 8천명을 탈출시킨 것은 분명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철수작전을 위해서 프랑스의 칼레와 불로뉴 지역의 부대는 함락되었고 수천명의 병사들은 희생되었다. 철수 작전 그 자체의 성공을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했고 이는 전쟁의 역설적인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사례였다.
처칠이 수상으로 임명된 날은 공교롭게도 영국군과 프랑스군 40만이 덩케르크에 고립되었던 1940년 5월 10일이었다. 그만큼 그는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수많은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세워지게 되었고 이는 보수당 내에서도 비주류였던 처칠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주류 정치인이었던 할리팩스와 챔버레인은 전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독일과의 화친을 주장하는 온건파였는데 이들은 칼레의 병력을 포화가 빗발치는 적장의 한가운데로 몰아넣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다. 갈리폴리 전투의 실패가 처칠때문이라 생각하던 보수당의 대다수 역시 칼레병력을 희생시키는 처칠의 결정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온건파에서 주장하였던 소위 '평화조약'의 필요성은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본토를 침략하려는 독일군의 전력을 보고받는 상황에서 최고조에 달하였다.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중재를 통한 독일과의 평화조약은 참혹한 전쟁의 끝과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담보하는 것처럼 달콤해 보였다. 유럽국가들의 연이은 함락과 패전의 어두운 그림자는 독일군의 막강함을 실감하기에 충분했기에 독일에 대한 화친만이 유일한 방책으로 보였다. 처칠의 전시내각마저도 그에게 등을 돌렸고 평화조약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신임까지도 더이상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참혹한 전쟁을 일으키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영국의 침략을 앞두고 있는 이른바 '악'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의지를 읽고 하원과 보수당을 설득함으로써 적에 대한 투쟁을 시작하였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처칠의 이와 같은 결정이 없었다면 향후 유럽의 지배권은 오랫동안 독일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고 미국의 참전이 유보됨으로써 제2차대전의 참혹함이 무기한으로 연장될 수도 있었다.
처칠이 스스로 생각한 본인의 역할은 악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오늘날까지 세계는 평화를 외치지만 당시에 필요했던 것은 용단이었고 처칠은 영국 수상의 자리에서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지만 꼭 필요한 결정을 내렸다. 2002년 영국 BBC에서 방영된 "영국의 위대한 100인(100 Greatest Britons)"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실시한 설문에서 1위는 처칠이었다. 이처럼 오늘날까지 그는 영국과 세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은 처칠의 경우 꼭 들어맞는 표현이다. 담배와 술을 좋아하고, 주변사람들에게 상냥하지 못했으며. 무리한 전쟁으로 많은 희생을 낳았고, 정당 내에서도 회피대상이었던 그가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수상의 자리에 앉음으로써 역사에 중요한 획을 긋고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그의 영웅적인 면모는 하루이틀만에 갖춰진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악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은 누구보다 강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대립각을 세워왔던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그의 면모는 십분 발휘되었고 불만과 조롱을 감내해야 했던 그 자리에서 역설적이로 가장 빛을 내며 사용될 수 있었다.
영웅은 되고 싶어서 세우기 원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차곡차곡 쌓고 이를 발휘할 상황과 만났을 때 영웅은 탄생하는 것이다.
칠흑의 새벽에 별은 가장 밝게 빛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