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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Apr 11. 2019

그저 그런 상념에 관한 상념

  글을 쓴 지 참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폰 메모장에 문득 생각나는 문장을 써놓곤 한다. 불과 며칠 전엔 섬광처럼 스쳤던 문장들이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그때의 나는 왜 이 문장에 꽂혀나 싶기도 하다. (최근 메모 문장. “새들이 우는 길을 걸어요. 가끔은 귀머거리가 된 것 같아.”) 


  나의 글들은 방구석 여기저기에 파편화되어 숨어 있는데, 도무지 끈질기게 완결까지 이어나간 역사가 없다. 여기에 나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처음에는 대상에 정신없이 몰입하지만, 열정은 이파리를 뉘인 무순처럼 금세 쪼그라들고 만다. 그럼에도, (‘그럼에도’는 참 매력적인 단어다) 어쨌든 성인이 된 해부터 지금까지 나의 열정에 꾸준히 기름칠을 하는 건 글과 책뿐이다. 그리고 글쓰기는 일종의 (연약하지만 단단한) 해방감 같은 것이다. 작은 방 곳곳에 흩어져 있는 오글거리고 폼 잡기 바쁜 문장들이 그 당시의 나를 일으켜 세워 준 것이므로, 어쨌든 남에게 보일만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요즘엔 공공기관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아직 한 달 차 신입사원인 나에게, 일을 ‘하고 있다’는 완결 어구는 어딘가 어색하다. 배우고 눈치 보며 하루를 살아가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일을 해내는 느낌은 거의 없다. 아무튼 바쁘다는 이유로 글 쓰는 행위는 올스탑인 상황에서, 갑작스레 쓰게 된 글감이 ‘회사 생활’이라니, 나도 참 투명한 인간이다.


  옆 자리에서 들려오는 대리님의 한숨 소리에 괜히 눈치를 보기도 하고, 할 일이 없으면 할 일이 없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다 지난 회의록을 들쑤셔 보기도 한다. 내 자리에 전화라도 울리면 화들짝 놀라지만, 마음을 재빨리 가다듬고 “감사합니다, 연화입니다.”라고 프로-페셔녈하게 대답하는 건 기본이다. (그러나 곧 전화를 끊자 한 선배님은 전화받는 것부터 신입티(?)가 난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나에겐 안면 홍조가 있는데, 특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갑작스레 말을 하게 되거나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특히 회사에선 자주 볼이 달아오른다. “연화씨, 이번 행사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 있으신가요?”라고 묻는 팀장님 앞에서, 나는 부끄럽게도 안면홍조를 싹틔웠다. 신입사원의 의견도 경청해주는 사내 문화를 늘상 꿈꿔왔으나, 막상 이 삭막한 규율 사회의 톱니바퀴 속으로 들어오니 ‘그냥 알아서들 하지.. 어차피 내 의견은 반영 안 되면서!’라는 모순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퇴근 후엔 가끔 친구들을 만났는데, 방정맞게 웃고 떠드는 스스로의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방금 전까지 선배들 앞에서 굉장히 조심스럽고 수줍었는데! 처음에는 전자의 모습이 나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했으나, 회사에서 하루의 삼분의 일의 시간을 보내는데, 그 많은 시간을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자니 몹시 우울해졌다. 그러니 요즘은 이것도 저것도 나의 모습이려니 생각한다. (그러나, 명심. 무조건적인 ‘love myself’는 삼가자.)  


  어쨌든 입사 한 달을 지나고 있는 요즘은 몰래 카톡도 하고 회의에서 의견을 내보기도 한다. 답답하고 볕이 덜 드는 사무실 분위기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뭐 하나 특출 난 건 없어도 어려서부터 적응은 기가 막히게 잘했다. 이번 회사의 계약이 끝나고 또 다른 회사의 면접관이 나의 장점을 물을 때 이렇게 말하기로 한다. “저는 여행을 가도 머리 뉘일 곳만 있으면 곧바로 잠에 빠지곤 합니다. 저는 빠르게 적응(이라 쓰고 순응이라 읽는다)하는 인간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활발히 진행되는 현시대에 발 빠르게 적응하여 귀사의 이익 추구 활동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어쨌든 글을 썼다. 한 바닥이라도 썼다는 데 의의를 두자. 사실 취업 전에 상상했던 직장인 라이프는 퇴근 후 운동하고,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뭐 그런 것들이었는데 그중 지켜진 것이 거의 없다. 아직 직장인 한 달 차니 나를 좀 봐주자,라고 생각하기엔 나는 이십 대 초반의 헬렐레했던 학생이 아니다. 스무 살의 후반쯤을 지나고 있는 지금, 가끔은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무거워 몸이 바스러질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늘어나는 짐의 양만큼 고민과 다짐과 애정결핍이 늘어만 간다. 그토록 고대하던 일을 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행복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행복이 뭐 대수라고. 어차피 미세먼지가 그득한 세상에선 누구의 입에서나 쉽게 오르내리는 충만한 행복이 가능할 리 없다. 가끔 글이나 쓰며 사막 같은 사회를 물기 있게 버텨내자. 타인의 생활과 말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그러나 타인의 말에 쉽게 상처 받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살아가자. 

  이것이 요즘 나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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