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찬란 Nov 15. 2016

SF, 과알못 탈출 작전의 시작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나는 개인적으로 SF에 대해 단순히 SF=상업영화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 과알못인 내가 접한 SF라고는 상업주의적 색채가 짙은 SF영화 정도였기때문이다. 내게 SF는 초등학교 과학 경시대회에서 그린 '상상력 그리기'가 리얼하게 펼쳐지는 사진의 나열정도에 불과했다. 어쨌든 대학교 때까지는 손도 대지 않던 과학책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였다. 과제의 자료를 찾기 위해서 도서관에 방문할 일이 잦았다. 그날도 도서관에서 얼쩡거리다 "신"이라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은 후에 나는 베르나르의 책에 푹 빠졌다. 베르나르는 문학에 과학을 적절한 수준으로 배합한다. 그냥 설렁설렁한 글이 아니라 지식의 헐렁한 파편이라도 글에 담고 싶은 나에게 과학이라는 주제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베르나르의 책을 읽고 나면 과학적 지식이 확연히 나타나는 작가의 세계가 부럽고 질투가 났다. 그래서 과학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탕이 될 과학적 지식이 없으니 사실, 어떤 책도 쉽지 않았다. 추천을 받으면 굉장히 두껍거나, 어느 정도(라고 쓰고 상당한이라고 읽는) 지식이 필요하거나, 단어가 무척 어렵거나, 혹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접한 것이 SF 장르의 소설이었고 너무 길지 않은, 단편 모음을 찾다가 처음 만난 것이 바로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시작한 책이었다. 그래서 였는지는 몰라도 첫 번째 단편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 아, 내가 그동안 접한 SF는 SF가 아니라 상업주의 영화에 불과했구나. 나는 SF영화를 앞서도 말했지만 '기승전 미국 최고'의 결말을 내는 할리우드발 자본력 빵빵한 상업영화로 취급해왔다. 남자 주인공이 늘씬한 여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서(사실 여자 주인공은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 목숨을 걸고 공주님의 기사가 되는, 그런 진부한 영화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MSG를 퍽퍽 넣은 SF라는 포장지를 뒤집어쓴 상업영화 가운데에서 발견한 반짝거리고 쫄깃한 유리구슬이었다. 테드 창은 독자의 손을 잡고 끝까지 간다. 독자와 주인공, 작가가 시작한 이야기를 결코 결말 속에 독자만 남겨두고 주인공과 작가만 나가버리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결말의 파격적임, 혹은 애매모호함에 싫증이 나서 그동안 현대 작가의 책을 잘 읽지 않았는데 적어도 나에게 이 책은 그렇게 끝내버리지는 않는다.


  SF는 정의가 워낙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특정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운데, 오죽하면 일부에서는 'SF는 포르노와 정의가 유사하다. 아무도 그게 뭔지 모르지만 일단 보면 알게 된다.'라고 했을 정도다. SF는 상상력을 재료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판타지와 비교가 된다. 가장 큰 기준점은 개연성이다. SF나 판타지는 장르와 종류를 넘나들며 다채롭게 상상력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SF는 애초에 개연성 위에 지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보다 더 있음 직한 것'이 되고 판타지는 마법과 같이 허구성을 기반으로 하여 '보다 덜 있음 직한 것'이 된다.

 

  소설, 여행기와 같은 소프트 SF에서 시작한 SF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상의 수준이 변화했다. 기존의 우주에 대한 관심과 함께 환경 문제, 사이버 공간 등에 대한 관심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발달을 만나 SF의 영화화에 가속도를 붙였다. 이에 따라 SF의 일부는 거대한 자본력과 함께 대중성을 잡기 위한 가벼운 SF 장르의 상업영화로 자리 잡았고 또 다른 일부는 인문학적 주제와 함께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면서 마니아 중심의 무거운 SF 소설과 영화로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SF 소설은 상상력의 한계가 없다는 점에서 영화에 비해 큰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뒤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책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의 스케일에 놀라움이 생긴다. 게다가 그 큰 스케일을 짧은 단편에 녹여내니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이 거대한 몸통의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려고 하는지 몇 장 남지 않은 장수에 손을 끼워놓고 고민하며 책을 읽었다. 사실 메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편을 읽고 나서는 한동안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결말도 충격이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는 방식이 꽤 충격적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은 여러 소설에서 꽤 다루는 방식이지만 테드 창이 이어가는 방식이 참 촘촘했다. 책을 놓는 순간까지 작가가 참 강력하게 이야기를 밀어나가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또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이어 새로운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생겼다. 나에게, 이런 작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정찬란 남김

- 사진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컨텍트(arrival, 2016 개봉)의 스틸컷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폴라익스프레스-산타클로스를 믿으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