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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Oct 01. 2023

탈모정의연대


"오빠, 이런 거짓말은 범죄야."


상철(28)은 사귄지 일주일이 지난 여자친구와 일본 여행을 떠났다. 그는 첫날 밤 숨겨왔던 비밀을 여친에게 고백했다. 바로 자신이 M자 탈모 환자라는 점이었다. 상철은 300만원이 넘는 앞머리 가발을 착용하고 여친을 만났다. 요새는 기술이 워낙 발달해 진짜 머리 같았다. 상철은 일부러 여친의 손이 머리로 가면 피했다. "원래 남이 내 머리는 게 만지는 게 싫다"는 핑계를 댔다. 여친은 참 착하고 상냥했다. 우람한 상철의 근육을 연신 칭찬했다. '그래, 이 여자라면 내 아픔까지 이해해 줄 것 같아' 하는 마음에 상철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오사카의 한 호텔방에서였다. "저기, 미연아. 오빠가 하나 고백할 게 있어." 막장 드라마 보다 더 막장같은 나는솔로 16회에 몰입하던 여친은 갑자기 심각해졌다. 


"뭔데 그래 오빠" "나 사실 거짓말한게 있어." "잠깐만.. 내가 맞춰볼게. 사실 서른 넘는 나이지?" "아냐 그런거." "그럼 직업을 속였어? IT 엔지니어라고 했잖아." "직업도 맞아." "아 그럼 회사가 다른가? 네이버 다닌다고 했잖아." "그것도 사실이야." "그럼 뭐가 비밀인건데? 뭐든지 다 말해봐. 오빠가 말하는 건 다 들어줄게."


상철은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여친에게 잠시 뒤돌아 보라고 했다. 여친이 고개를 돌리자 상철은 앞머리에 착용했던 부분 가발을 해제했다. '똑'하는 소리가 났다. "이제 뒤돌아봐." 그 순간 여친은 괴성을 내뱉었다. 대머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머리가 아니라고 하기는 뭣한 애매한 대머리의 사내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서있었다.


"오빠가 고자라도 괜찮아. 그건 고치면 되니까. 근데 대머리는 어떻게 할수가 없잖아.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 상철은 당황했다. "아니 요새는 머리 심는 것도 많고 그렇대." "머리는 점점 더 빠지잖아. 들어보니까 심는데에는 돈도 엄청 많이 든다던데.. 어떻게 이런 거짓말을 해? 머리 날리는 거 싫어서 모자를 쓴다더니 머리가 없어서 쓰는 거였잖아!" 여친은 노발대발하며 갑자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디가?" "도저히 오빠를 만날 수가 없겠어. 대머리라는 사실보다도 대머리라는 사실을 숨긴 오빠를 믿을 수가 없게 됐어. 나 먼저 한국 갈께. 연락하지마." 상철은 그날 호텔에서 쓸쓸히 홀로 클론의 노래를 들었다. 구준엽의 머리가 반짝 빛나는 뮤직비디오가 끝나자 상철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상철에게 탈모가 찾아온 것은 20대 초반 무렵이었다. 입시 때부터 상철은 고약한 버릇이 있었다. 바로 손을 올려 머리를 돌리는 거였다. 어려운 수학문제에 직면하면 상철은 매번 왼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짓누른뒤 오른쪽 왼쪽으로 살살 돌렸다. 그러면 놀랍게도 뇌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번 습관을 들이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대학 교수인 엄마 아빠의 극성도 한 몫했다. 스트레스에 습관까지 더해지니 매일 아침마다 머리털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상하게 상철은 정수리보다 이마가 넓어지는 탈모 경향이 짙게 나타났다. 정수리를 만져도 이마쪽 털이 빠졌다. 수능시험 날에도 상철은 수백 가닥의 머리카락을 책상에 흩뿌렸고, 결국 명문대에 합격했다. 


대학에 합격한 상철은 모든 대학생이 그렇듯 술과 담배에 빠져들었다. 그러자 머리 빠지는 속도가 더 심해졌다. 원래 귀여운 소문자 엠자 수준이었는데 이제 맥도날드 간판 급의 대문자 엠으로 변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자 아버지보다 더 머리가 없을 정도가 됐다. 누구는 상철보고 40대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속으로 더 들어보인다고 생각했다. 


상철은 그때부터 탈모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프로페시아로 시작했다가 아보다트로 약을 갈아탔고, 너무 비싼 값 탓에 모모페시아라는 약에 안착했다. 모두 처방전이 필요한 약들이다. 피부과에 가면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상철이 병원에 들어서면 간호사들은 먼저 물었다. "탈모약 처방 받으시는 거죠?" 진료실에 들어서면 의사는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 20대 맞으시죠?" 상철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면 약사들은 더 무거운 표정이었다. "힘내세요" "곧 효과 있을 거에요" 그들의 응원을 뒤로한채 약국을 나오는데 왠지 오늘따라 바람이 더 세게 불어 머리칼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상철은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부모는 상철에게 두피 문신을 권했다. 머리를 심는 것은 너무 비싸기도 하고, 금방 다시 빠진다는 괴소문이 돈다고 했다. 상철은 3박 4일간 인터넷을 뒤졌고 여의도의 한 탈모전문 병원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이미 여러명의 환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여성도 많았다. 모두가 눈을 내리깔고 바닥을 응시하거나 마스크를 쓰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상철이 들어서자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보다 풍성한지 쳐다보는 모양새였다. 건너편의 한 여성은 누가봐도 정수리 부분이 훤했다. 상철은 남일같지 않았다. 태어났을 때는 모두가 바야바급 풍성 모발이었을 터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입시를 치르다보니, 연애나 결혼을 준비하다 보니 탈모가 왔을 게다. 또 유전적 탈모도 있지 않은가. 개인의 잘못이 아닌 천형, 혹은 사회적 질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저번 대선때도 한 후보의 탈모 공약을 떠올렸다. 탈모 치료를 지원한다는 후보에게 상철은 한표를 던지지 않았다. 그의 모발이 풍성했다는 이유때문이다. 탈모인도 아니면서 감히 탈모인을 생각해주는 척을 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상철 씨 들어오세요."

상철은 모자를 살짝 벗고 진료실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하는 의사의 머리 상태부터 확인했다. 매우 풍성했다. 얼굴을 보아하니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 이 사람에게 내 소중한 머리를 맡겨도 되겠군, 하는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두피문신 비용은 100만원대 후반이었다. 리터치에는 비용이 더 든다고 했다. 상철은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의사는 전후 사진을 보여주며 "모두가 만족해요. 우리 동생도 제가 이거 해줬습니다"라고 했다. 


수술실로 이동한 상철은 마사지를 받는 자세로 누웠다. 의사는 상철의 머리에 마취크림을 발랐다. 수십분이 지난뒤 수술이 시작됐다. 침같은 느낌의 도구로 한땀한땀 상철의 머리에 색을 입혔다. 마취를 해도 따가웠다. 딱딱딱!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다. 의사는 수술 내내 80~90년대 팝송을 틀었다. 상철은 그 은은한 팝송의 리듬과 자신의 머리를 찌르는 바늘의 리듬을 맞추기 위해 애를 썼다. 손을 들어 머리를 짓누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 끝났습니다. 정말 가득 채워졌지요?" 의사가 문신 부위를 거울로 비춰주었다. 상철이 보기엔 크게 달라진게 없어보였지만, 큰 돈을 쓴만큼 시간이 좀 지나면 효과가 있겠다 하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한달이 지나자 전과 거의 다를바가 없이 M자가 보였다. 오히려 더 커진 것 같았다. 

    



퇴근한 상철은 판교역에서 우연히 은사를 마주쳤다. 대학 교수였다. 우악스럽게 상철의 손을 잡는 교수는 완벽한 대머리였다. 아예 숱이 하나도 없었다. 상철은 과거의 교수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머리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워 사시사철 가발을 쓰고 다녔다. 과거 여당 대표나 현직 장관이 애용한다는 고급 브랜드의 가발이었다. 교수는 짐짓 자연스러워 했으나 수업시간에 에어컨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가발이 부자연스럽게 흔들거리는 꼴이 퍽 우스웠다. 그랬던 교수가 수년만에 저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2030대가 무수한 판교 거리에서!!


교수는 상철에게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인근 이자까야에서 교수는 상철에게 뜻밖의 권유를 했다. "자네도 그렇게 거추장스러운 가발은 벗어 던지게. 나는 새로운 모임에 들어서 새로운 눈을 떴다네." 상철은 "아니, 탈모 명의라고 대전의 한 의대 교수를 소개해주신게 교수님 아니었나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하고 물었다.


교수는 탈모정의연대라는 단체를 언급했다. 탈모인, 그중에서도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갖춘 탈모인만 가입할 수 있는 비밀단체라고 했다. 한달에 한번씩 재단 이사장 소유의 한 강당에서 모이는데 상철도 한번 와보라는 이야기였다. 상철은 의심스러웠으나, 같은 탈모인끼리 정보도 공유하고 하면 좋을것 같아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요새 탈모 까페는 약 광고, 병원 광고로 쓰레기 같은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이었다. 




모임 날이 되었다. 상철은 교수가 알려준 주소로 갔다. 한 중견기업 건물이었다. 상철이 지하 1층으로 들어서자 민머리에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상철을 가로막았다. A 교수 소개로 왔다고 하자 상철에게 모자와 가발은 따로 사물함에 넣으라고 했다. 


상철이 강당으로 진입하자 진풍경이 벌어졌다. 성한 머리의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남녀 가리지 않고 M자 탈모, 정수리 탈모, 민머리, 원형 탈모 등 가히 탈모의 하모니라 아니할 수 없었다. 시간이 되자 무대 중앙에 백발의 정수리 탈모를 가진 노인이 등장했다. 뉴스에서 본 인물이었다. 해당 중견기업 회장이었다. 


회장은 말을 이어나갔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모두모두 반갑습니다. 우리는 머리털이 풍성하지 않다, 조금 부족하거나 없다는 소중한 고리를 매개로 만났습니다. 얼마나 숱한 모질감을 느껴야만 했습니까. 대머리는 정력이 좋다는 괴소문을 우리는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정력이 좋지 않지만 머리가 없다는 이유로 색마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대머리는 공짜를 좋아한다는 루머도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공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치보면서 돈을 더 많이 냅니다." 상철은 어느새 회장의 말을 응원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끔 배려를 합니다. 머리가 없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요. 일부 맞는 말입니다. 현 카카오 사장을 보십시오. 머리가 없는데도 유명 연예인과 재혼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가수 구준엽씨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이들은 머리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 재단은 탈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꾸고, 약한 탈모인을 착취하는 사회악 들을 척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과잉 진료를 통해 탈모인에게 수백 수천만원을 갈취하는 일부 병원과 의사를 처단해야 합니다. 또 대머리를 놀리고, 탈모를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시키는 미디어를 단죄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인간극장의 한 영상이 상영됐다. 주인공이 뚜루뚜루~ 하면서 가발을 벗자 이런 나레이션이 붙었다. 옷이 아니라 다른걸 벗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가녀린 머리털이 살짝 흔들릴정도로 큰 박수 소리였다.


회장은 이번주에 새로 적발된 병원 등을 공지한 뒤, 각기 민원을 제기하거나 불법 영업을 신고하라고 독려했다. 그러면서 탈모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해지자고 소리 높여 외쳤다. 수백명의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저 멀리 은사의 모습도 보였다. 소중한 사람들을 이 연대 모임으로 데려오자, 1000만 탈모인이여 일어나라 하는 구령을 마치고 화합은 끝났다.


집으로 돌아온 상철은 이상한 꿈을 꿨다. 기원전 9세기 무렵의 인물인 예언자 엘리사가 된 꿈이었다. 성경을 보면 열왕기하 2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라고. 엘리사는 신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저주했고, 곰 두마리가 나타나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였다. 그러니까 왜 우리를 놀리는가. 왜 우리를 못살게 구는가. 왜 우리는 원치 않은 질병으로 수백 수천만원을 써야 하는가. 4조원에 달하는 탈모시장의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가. 상철은 다음달에도 탈모정의연대에 출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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