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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Nov 05. 2023

"기사 좀 고쳐주세요"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 7시30분이 됐다. 전화가 울린다. 기재부 혹은 산업부 공무원 분이다. "가판 봤습니다. 이런 이런 부분은 좀 너무 나가신거 같은데.. 좀 수정이 가능할까요?" 마감이 끝나고 저녁이 되면 늘상 찾아오는 항의 또는 해명 전화의 시간. 통상 '딜 타임(deal time)'이 시작된다.  


우리 신문은 가판을 낸다. 신문은 원래 매일 새벽 배달원을 통해 구독자를 찾아가지만 온라인 PDF판으로 전날 밤에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이게 가판이다. 스크랩마스터나 아이서퍼와 같은 신문 PDF 서비스 앱에 구독을 신청하면 전날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신문 지면 기사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 가판을 내는 신문은 국민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 세계일보, 서울경제, 한국경제, 서울신문 등이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다만 아마 가판 구독료를 더 벌어들이고 싶은 심산일 것이다.


본보 가판이 뜨는 시간은 오후 7시쯤이다. 청와대나 국회, 대기업, 각 정부부처나 시민단체 등은 대부분 가판을 본다. 어떤 기사가 떴는지 하루 전에 미리 확인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후 7시 30분이나 8시쯤에는 전화가 온다. 아마 이런 루트일 것이다. 공보실, 홍보실, 대변인실이 가판을 확인하고 각자 기관이나 회사와 연관된 기사를 찾아서 위에 보고한다. 위에서는 어떻게 대응하라고 지시를 하고 대변인실 혹은 관련 정책의 실무자가 직접 기자에게 연락을 해서 본문을 수정해 달라거나 제목을 바꿔달라거나 하는 식이다.


기자의 대응은 시나리오 별로 다르다. 만약 팩트가 틀렸다면? 순순히 인정하고 기사를 고치거나 내려야 한다. 이런 경험은 지금껏 거의 없었다. 뭐, 그만큼 민감하거나 임팩트 있고, 확인이 어려운 기사를 많이 쓰지 않았다는 뜻도 되겠다 ^^.


대부분의 시나리오는 팩트에는 이상이 없는데, 뉘앙스가 좀 걸린다는 식의 반응이 많다. 예를 들어보자. 정부가 담뱃값을 올린다고 발표했다. 어떤 신문은 국민적 건강을 위해 정부가 결단을 내렸다고 쓸 수 있다. 반면 다른 신문은 세수부족 사태에서 정부가 국민 건강을 명목으로 곳간을 채우려고 하고 있다, 혹은 그나마 서민의 친구인 담배 마저도 비싸지는 것은 서민 생활에 좋지 않은 시그널이 된다는 식으로 쓸 수 있다. 정부가 담뱃값을 올린 건 팩트인데, 이를 해석하고 향후 영향을 분석하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이 지점을 수정해 달라는 요구가 제일 많다.


십년간 기사 수정 관련 별의별 민원과 때로는 협박을 겪은 나로서도 이제 그 유형이 좀 나눠진다. 일단 최악의 유형. 으름장형이다. 주로 정부 부처나 기업의 초짜 직원이나 언론 대응을 처음해보는 사람이 하는 말과 어투다. "저희가 올해 기자님 회사에 광고를 이만큼 했는데 좀 고쳐주시죠." 일견 맞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를 했으니, 기사도 좀 우리의 입맛에 맞게 고쳐달라. 지극히 당연한 요구다. 신문 시장 자체가 폐허가 되어가고 있고, 신문사 수익의 60%가 광고인 상황이다. 광고주의 요구를 어느정도는 기자들도 들어줘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근데 이런 부분은 있다. 안 그래도 사양산업을 선택한 기자들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것. 내가 대기업이나 로스쿨 등을 선택하지 않고 그래도 이 박봉의 산업에 종사하는 명분이 대기업이나 권력자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광고 안 받고, 그냥 우리회사가 사업을 따로 해서, 또 성공을 해서 누구한테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기사를 썼으면 좋겠다. 그게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광고 기사도 쓰고, 민원 기사도 쓰고, 제목도 고치고 본문도 수정한다. 다 이해한다. 하지만 그 찝찝함과 마음 한편의 불편함이 내 눈앞에서 재차 현실화되는 순간 자존심이 폭발한다.


현대차그룹이 그랬다. 자동차 출입할 때인데, 담당 부장이 전화와서 "이번달은 박기자님 앞으로 얼마 광고 했습니다. 보고드립니다" 했다. 저 돈이 나한테 오는 것도 아닌데 왜 매번 나한테 저러지, 싶었는데 곧 알게 됐다. 제보를 받아 현대차 차량 결함 관련 기사를 썼는데 전화가 오더니 또 광고 얘기를 했다. 이러려고 밑밥을 깐 것이다. 당시는 젊을 때라서 "그럴꺼면 광고 다 빼세요"하고 말았다.


현장 기자를 제끼고 바로 윗사람과 거래하는 족속도 있다. 주로 오랫동안 홍보나 공보일을 한 베테랑 아저씨 아줌마들이 이렇게 한다. 기사는 A 기자가 썼는데 A 기자를 뛰어 넘고 팀장이나 부장, 심지어 편집국장에게 전화해서 딜을 치는 식이다. 이런 치는 많이 사라졌다. 요새 젊은 기자들은 과거와 다르다. "야, 그사람 나랑 친해. 한번 봐줘. 술이나 한잔 하지 뭐" 하는 식의 말장난에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참 고마운 선배들과 일해서 나를 제끼고 부장에게 연락한 사람을 도리어 부장이 지적하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최근에 모 부처 관련 기사를 하나썼다. 예산 낭비가 주된 야마였는데, 해당 과장이 전화와서 "이게 기사입니까? 이게 기사가 됩니까?" 하고 따졌다. 공무원인 자신이 봤을때는 하찮고 당연한 일인데 왜 이렇게 각잡고 썼느냐는 거였다. 흥분한 취재원 만큼 위험한게 없기 때문에 최대한 진정하도록 말씀을 드렸는데 갑자기 나도 열이 좀 받기 시작했다. 내가 발제하고 팀장과 부장이 OK하고 편집회의를 수차례 거쳐 나간 기사였는데 기사 가치 판단 자체를 지적하는 것은 우리 신문 자체를 문제삼는 것 같아서다. 결국 어떻게 좋게좋게 끝이 났다.


나나 회사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이유는 사실 없다. 광고를 받기 때문에 잘 보여야 한다는 그런 차원에서 접근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언론사는 일반 하청 기업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출입처 혹은 취재원과 잘 지내고 싶고, 상대도 예의를 갖춰서 정중하게 요청하면 마음이 흔들린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은 더 그렇다.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그런데 안 그래도 전화도 잘 안되고, 연결이 되면 "기자라는 사람이 이런것도 모르느냐"고 힐난하고, 자기 잘난 줄만 알던 취재원이 전화와서 팩트도 틀리지 않은 기사를 가지고 시비를 턴다? 그러면 나는 모든걸 걸고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억지로 침소봉대 한 기사도 아니고, 지적할 만한 수준의 기사였다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오후 7시30분은 참 괴롭고 어려운 시간이지만 또 한편으론 누군가의 반박에 대응할 논리를 미리 준비해두고 즉각 대응해야 하는 그런 때다. 대화 도중 내가 우물쭈물하거나 밀린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내 기사에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취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초라한 기사일 수록 나의 말발은 더 떨어진다. 그러면 기사 수정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회사로 찾아오는 취재원도 많았다. CEO나 장관, 혹은 대통령이 기사 수정을 요청하니 아예 편집국으로 와서 부탁하는 것이다. 그중에도 압권은 국세청이었다. 까만 양복을 입고 수십명이 동시에 편집국으로 쏟아져 들어온 날도 있었다. 편집국 문 앞에서 넥타이 차림으로 연신 상사에게 전화하는 홍보팀도 많이 봤다. 다들 살기 위해 열심히 눈물나게 뛰고 있다.


난 공보실과 홍보실, 대변인실이 제대로 돌아가야 그 조직과 회사가 비로소 바로 설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무 부서에선 "저 언론사에 우리가 돈줬는데 왜 나쁜 기사가 나오는 거야" 하고 정신 나간 소리를 한다. "그 기사 한줄 바꾸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이딴 삽소리도 한다. 그들이 쉽게 말하는 그 한줄을 쓰기 위해 기자들이 뛰는 노력과, 또 그 한줄을 바꾸기 위해 밤늦게 언론사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의 노오력을 무시하는 말이다. 본인은 본인 부서에서 이렇게 열심히 제대로 뛰고 있는가. 그게 아니면 좀 말을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가판이 나온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그렇게 기자와 취재원은 계속 대화하고 얘기하고 수정하고 한다. 그러고 나면 다음날 아침 신문은 가판과 조금 달라져 있을수도, 아니면 그대로 나갈 수도 있다. 정부나 언론, 기업과 언론의 유착이라고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그저 각자 맡은 바 업무를 성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심하게 싸울때도 있지만 그래도 각자 무기를 가지고 예의를 갖추되 살얼음판 같은 말의 전쟁을 거치고 나서야 완성된 기사가 독자를 찾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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