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May 01. 2024

무소불위 경찰청장    


12년 넘게 기자생활을 해 왔지만 가장 극혐하는 것이 기자들의 갑질이다. 기자랍시고 대접받으려 하고, 목에 힘 팍 주고 다니면서 취재원에게 막말하는 그런 치들을 많이 봐 왔다. 이제 시대가 지났다. 그런 갑질이 먹히지 않는다. 기자나 취재원이나 서로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게 새시대 새언론의 기본 자세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물어볼 수 있는 권리다. 이 가치 하나만큼은 양보가 불가능하다. 검찰 출입한지 하루밖에 안 된 기자도 검찰총장에게 전화나 문자, 혹은 대면으로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있다. 아니, 물어봐야 한다. 상대방의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기자는 예의를 갖춰 정중히 현안을 질문하고 취재할 수 있다. 기자는 독립 개체로서 각기 한 언론사를 대표해 출입처에 파견된다. 그러니 눈치볼 필요가 없다. 갑질과 막말은 무조건 자제하면서도 그래도 당당하게 CEO든 기관장이든 가리지 않고 질문해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거추장스러운 명사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언론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기레기란 말이 난무해도 우리는 그렇게 묵묵히 할 일을 하면 될 뿐이다. 평가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사건팀장으로 온지 이제 갓 세달이 됐다. 나는 현직인 윤희근 경찰청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여전히 그렇다. 저분은 경찰청장으로서 도대체 뭘 했고, 뭘 하고 있나. 대한민국 경찰의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나 깜냥이 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 출입 기자로서, 특히 캡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관심이다. 잘하고 있는지 계속 관찰하고 따져봐야 한다.


나는 많은 기사를 접하면서 윤희근 청장이 자기자신에게 관심이 참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부 표창장에 자신의 사진을 삽입해 수여한다든지 한 행사에서 '희망의 근본' 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딴 로고가 박힌 텀블러를 배포한다든지. 물론 경찰청 내부의 충성경쟁이 심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청장의 허가를 받고 이뤄지는 일들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자신의 고향인 충북에 내려가 오후 11시에 취침해 연락이 안될 정도로 책임을 방기한 인물이지만, 자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에 휩싸여 있는 분인것은 잘 알 것 같았다. 개인 성격이니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최근 황당한 일이 있었다. 경찰은 최근 기동순찰대를 도입했다. 묻지마 범죄에 대응한다는 차원이다. 우리 사건팀은 기순대 출범 50일을 맞아 미리 관련 데이터를 수집했다. 112 신고 건수나 관련 주민들 반응 등이다. 그리고 기사를 썼다. 그러자 갑자기 경찰청에서 전화가 왔다. 50일을 기념해 청 차원에서 자화자찬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왜 먼저 기사를 냈느냐며 따져댔다.


정신이 나간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쪽 부서에서 받은 자료도 아니고 본보가 다른 루트로 구한 자료였다. 경찰이 도대체 뭔데 기사를 언제 쓰라마라 지시하는 주체가 되었나. 본인들의 축제를 앞두고 초를 쳤다는 기분이 들수는 있겠지만 언론이 매일 쓰는 기사를 본인들이 통제할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걸 보고 지금 우리 경찰이 제대로 가고 있는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청장의 생각이 좀 궁금해졌다. 기순대에 대한 의견도 듣고 싶었다. 그래서 문자를 보냈다. 본보가 이런 기사를 썼는데 경찰청에서는 좀 불쾌해하시는거 같다. 청장님의 의견은 어떠시냐고 물었다. 사건팀장으로서 최대한 예의를 갖춰 연락을 보냈다. 답은 없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경찰청 고위관계자를 만날 일이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윤희근 청장에게 문자를 보낸 얘기가 나왔는데 다짜고짜 내게 '월권'이자 '오바'라고 했다. 해당 부서와 얘기를 해야지 왜 윤 청장에게 연락을 하느냐는 거였다. 윤 청장이 기자의 문자를 받고 좀 불편해했다는 식의 뉘앙스도 내비쳤다. 


언제부터 기자가 취재원에게 연락을 하는게 월권이자 오바가 되었나. 아주아주 높은 사람이라 기자도 몸을 수그려야 하나. 기순대는 대표적인 윤희근표 치안 정책이다. 윤 청장의 생각과 이야기도 듣고 싶어서 취재 차 연락을 한게 그렇게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나. 나는 그 경찰청 관계자와 한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헤어졌는데 아직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감히 네가 청장에게 연락을 왜 하느냐는 식의 그 경찰청 관계자의 표정과 말투,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내가 경찰에게 이런 소리를 왜 듣고 다녀야 하는지 부터가 자괴감이 든다.


내가 청와대에 나갈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정책실장과 수석들 모두 연락이 잘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기자가 연락하는 걸 월권이나 오바로 치부하진 않았다. 절차를 갖춰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답을 했다. 직급으로 따지면 경찰청장은 그들에 비해 한참 밑이다. 국가의전서열로도 비교가 불가하다. 그런데 그런 경찰이 월권이나 오바를 운운하는 그 모양새가 이미 그들은 그들만의 권위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국민들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그들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나는 기자 초년병 시절부터 이렇게 살아왔다. 대통령에게 직접 문자도 전화도 하고, 기자간담회에서 민감한 질문도 했다. 눈치를 보지 않았다. 연차 이런거 상관없이 진짜 당시에 현안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만하지 않게 하지만 당당하게 질문하라고 배웠고, 지금 우리 팀원이나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주눅들지 말고 할말은 하라고 조언한다. 기자를 계속 하는 동안 그렇게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윤희근 청장 산하 경찰청의 근본없는 오만한 모습을 보면 전투력이 급상승하게 된다. 대접해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예의를 갖춰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해달라는 것이다. 바로 옆에서 감시하는 기자에게도 이러는데 국민에게는 도대체 어떻게 하겠는가. 국민을 얼마나 낮게 보겠는가. 그래서 나도 열심히 더 경찰청의 음지와 치부를 두 눈 부릅뜨고 찾아볼 예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대서 강의하고 온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