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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n 13. 2024

경찰과 기자가 상생하는 법


서울경찰청에서 좋은 기회를 마련해줘서 지난 11일 혜화권역 경찰서 과장(경정 급) 20여 분께 언론대응 요령에 대한 특강을 하고 왔다. 아무래도 경찰청 본청과 서울청에 비해 일선 경찰서 분들은 기자를 만날 기회도 적고, 언론 취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정보와 지식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싸울 일도 줄어든다. 그리고 상생과 협력의 가능성이 커진다. 3년 간의 일선 사건기자 생활과 5달에 걸친 사건팀장 경험을 바탕으로 강의를 준비하고 서울 혜화경찰서로 향했다. 


강의는 사건팀 소개부터 시작했다. 과거 사건팀은 언론사의 꽃이자 희망이었다. 좋은 기자를 육성하는 요람이었다. 그만큼 사내에서 대우도 좋았고, 사건팀 기자의 위상도 높았다. 모두가 선망하는 팀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달려졌다. 사건 사고 기사의 비중은 줄었다. 다행히 강력 사건이 감소한 영향이지만, 대중의 관심은 범죄보다는 문화 예술 패션 경제 등 다양한 다른 분야로 쏠리게 됐다. 그래서 사건팀을 이슈팀이라 부르는 언론사도 생겨났다. 단순히 사건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이슈를 다뤄야 한다는 뜻의 명명일 것 같다. 


요새 일부 짖궂은 선배들은 사건팀을 막장 혹은 밑바닥이라고 부른다. 일견 맞는 부분이 있다. 온갖 범죄자를 만나고, 험하디 험한 현장까지 다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도 불확실하다. 배현진 의원 피습사건, 김호중 음주운전 사건 등은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오후늦게나 밤에 터졌다. 일부 팀원은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경찰서로 향해야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경찰서나 병원, 소방서 여기저기를 쏘다니다 보면 몸이 힘들다. 육체적 피로도 몰려온다. 그건 오전 7시에 출근하는 팀장인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여유와 워라밸을 추구하는 일부 MZ세대는 사건팀을 기피한다. 기자를 하고는 싶지만 굳이 힘들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의인데, 이걸 뭐라고 할 수는 없겠다. 아무튼 그만큼 사건팀은 언론사내 3D 부서가 된 지 오래다.


그래도 사건팀은 중요하다. 도제식 교육을 통해 일반인을 기자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취재 방법, 보고 양식, 회사에서 쓰는 표현들, 취재원과 만났을때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지 등등. A부터 Z까지 사건팀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기자로서의 모든 것을 가르친다. 이 시기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면 다른 부서가서는 아무도 이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혼자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그래서 나는 꼰대같지만 우리 팀원들에게 매번 복받았다고 한다. 혼나고 지치고 힘들더라도 지금 제대로 배워놓으면 다른 부서에 가서도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든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경찰분들에게 사건팀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사건팀은 언론사 내 발로뛰는 거의 유일한 부서다. 물론 정치부 법조팀 다 고생하지만 대부분 활동반경이 국회나 대통령실, 주요 정부 청사나 검찰/법원 내부다. 우리 팀처럼 지방 갔다가 서울 왔다가 병원갔다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진 않는다. 왜 사건팀원은 바쁠까?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내는 보도자료는 1주일에 많아야 2~3개 정도다. 그마저도 대부분 크게 얘기가 되지 않는다. 결국 기획기사를 발굴해야 하는데, 어떤 아이템을 잡고 어떻게 취재할 지는 전적으로 기자에게 달려있다. 


그러니 아이디어를 얻고 원고지 7매짜리 기사를 채우려면 계속 바쁘게 돌아다니고, 전화할 수 밖에 없는 게 사건팀 기자다. 딱히 출입처나 나와바리 개념이 없고 쓰고 싶은 기사를 대부분 다 쓸수 있지만, 갑질은 상상도 못한다. 경찰에게 잘 보여야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다. 처음보는 일반인에게 정보를 얻으려면 일단 허리를 굽혀야 한다. 그러니 참 어렵다.



경찰에게도 사건기자는 꼭 필요하다. 요새 유튜브와 찌라시는 금방 온라인과 휴대전화를 통해 퍼져나간다. 잘못된 정보가 부지기수다. 사건 관련 찌라시도 마찬가지다. 틀린 게 너무 많다. 이때 경찰은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고, 애꿎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 사건 기자가 열심히 취재를 해서 경찰 내부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바람직한 자정작용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또 사건 기자의 위상이 올라가야 경찰의 위상도 오른다. 사내에서 사건팀이 힘을 얻고, 기사를 더많이 쓰면 그만큼 경찰과 국민의 접촉면이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언론과 경찰은 화합과 상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를 잘 모르고, 오해하고, 아예 접촉을 끊으려는 경찰발 움직임도 감지된다. 


사실 근본적으로 경찰과 기자는 대척점에 있다. 한쪽은 정보를 캐내려하고, 한쪽은 정보를 굳이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피의사실공표를 비롯해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고(故) 이선균 배우 사건과 관련해 이런 분위기는 더 공고해졌다. 10년 전 내가 사건팀 기자일때와 지금의 경찰서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나 때만해도 경찰서 형사과 출입이 가능했는데, 이제 아예 들어가지를 못한다. 경찰이 사건을 흘려주는 건 먼 과거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얘기다. 그러니 지금 사건팀 기자들은 지구대나 파출소를 돌아서 사건 관련 아이디어를 얻는다. 또 검찰이나 법원에 넘어간 사건을 역으로 취재해 쓴다. 


아예 경찰처럼 기자들이 나름의 수사를 하기도 한다. 이번 김호중 사태가 그랬다. 경찰발로 확인되는 게 정말 하나도 없었다. 강남서 교통과!!! 에서 보안을 철저히 지키기도 했지만 결국 그 때문에 오보도 많이 나왔다. 본보도 사건 현장에 찾아가서 기자들이 주변 가게 등을 돌아다니며 CCTV 등을 확인했고, 당시 정황도 취재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예 요새는 기사 취재가 불가능하다. 경찰한테 한마디라도 듣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수사 기록을 마음껏 뒤져보고, 인권이란 가치조차 망각했던 과거 일부 언론 야만의 시절보다는 선진화된 것 같긴한데 과연 이런 변화가 100% 옳은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점이 남는다.


그래서 나는 경찰분들께 몇가지를 당부드렸다. 가장 큰 야마는 '기자를 피하지 말고 잘 활용하라' 였다. 무작정 사건 내용을 알려주라는 게 아니다. 사무실로 찾아오거나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는 만나달라는 것이다. 기자가 끈질기게 뭘 물어봐도, 민감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알릴 것이 있거나 홍보가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기자를 부르고 접촉하며 활용하는 것이 좋다. 아는 기자 인맥이 있어야 뭐라도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열심히 하는 기자를 인정해주고 가까이 해달라고 요청했다. 어차피 취재가 안 될거야, 어차피 안 만나줄거야. 이런 패배감이 최근 모든 매체 사건기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취재 환경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류의 최악의 상황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바위에 몸과 마음을 던지는 기자들도 있다. 되든 안되든 젊은 패기로 일단 부딪쳐 보는 것이다. 이렇게 끈질긴 기자들은 경찰들이 이해를 해주고, 보다 가까이 대해줬으면 한다.



아울러 경찰에게 듣지 않고 어떻게든 스스로 노력해서 기사의 80% 이상을 알아온 기자에겐 사건 내용을 일부 확인해줄 필요가 있다. 이들은 마지막 확인 차원에서 경찰을 찾아온 거라, 제대로 확인을 안 해줘도 어차피 기사는 쓴다. 이때는 오보 방지 차원을 위해 확인은 해 줘야 한다. 일부 경찰은 사건 확인이 들어오면 곧바로 연합이나 기자단에 내용을 알려주는 황당한 태도를 취한다. 이는 자멸이자 공멸의 길이다. 경찰한테 들은거도 아니고 자신의 시간과 인생을 갈아넣어가며 마지막 예의로 확인을 했는데, 이걸 그냥 풀해 버린다? 그런 양아치 같은 행태를 하는 경찰치고 제대로 승진하거나 잘 되는 경우를 절대 보지 못했다. 


최근 경찰서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Z세대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예의가 바르다. 팀장인 내게 보고할때도 압존법을 잘 몰라서 인지 '수사과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만큼 취재원을 존중하고, 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어린 친구들에겐 일선 경찰분들이 좀 더 따뜻하게 말한마디라도 걸어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하는 초년병들과 경찰들이 좋은 관계를 맺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10년전 강남경찰서에서 만난 경찰 일부분들과 아직도 연락을 하고 가끔 만난다. 그들이 부탁하는 걸 알아봐드린적도 많다. 이제 경찰과 기자가 아니라 그저 인생 선후배로서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관계가 되었다. 


처음 그분들의 사무실을 방문했을때 고생한다며 손에 쥐어준 박카스를 잊을 수 없다. 선배에게 혼나고 취재는 안되고 몸과 마음이 지쳐서 그만두고 싶을때 그들의 한마디는 정말 말로 할 수 없는 큰 위로가 됐다. 이제 나도 연차가 쌓이고 경찰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 인맥이 생겼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사회는 좁아서 내가 아는 분들이 알고보니 서로 또 아는 사이고 그런 적이 많다. 그러니 일부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힘든 젊은 기자와 진심을 다해 관계를 맺으라고 조언하면서 특강을 끝냈다.


어찌보면 순진하고 또 우직한 경찰분들이 행복하게 업무를 수행하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찰 출입인 우리 기자들도 그분들과 함께 잘됐으면 좋겠다. 이 조그마한 배려와 신뢰, 말 한마디, 예의와 이해가 경찰과 기자가 상생하는 단초가 될 것 같다. 사건팀장으로 일하는 동안 대단한 단독이나 기획 기사를 쓰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두 집단의 접촉면을 늘리고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물꼬를 트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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