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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기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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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한바탕 챗gpt가 유행인 것 같다. 카카오톡이나 SNS 알림이 떠서 들어가 보면 온갖 아저씨들이 지브리 스타일로 사진을 바꿔 올려놓았다. 그 모습에 약간 웃음이 나면서도 머리를 치는 의문 하나. 첫 등장 이후 아예 온 국민의 소통 창구가 되어버린 카카오톡처럼, 챗 gpt도 그저 유행처럼 지나가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닌 우리의 일상이 되는 것 아닐까? 소소한 재미 정도로만 여겨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일이나 여가 모두 챗 gpt가 없으면 영위가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다. 일러스트레이터나 번역가들이 벌써부터 울상을 짓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사실 기자라는 직업이 위험하다는 말은 벌써 구문이 됐다. 특히 신문기자. 인터넷과 영상에 익숙해진 대중들이 신문을 보지 않을 거라는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래도 신문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사실 신문 구독료는 신문사 전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파급력이 줄다 보니 들어오는 광고비가 감소하는 게 훨씬 더 큰 문제지만. 아무튼 신문기자가 쓴 기사를 신문 그 자체로 보지는 않지만, 그 기사는 온라인에도 올라가고 그 기사를 대중이 소비한다. 텍스트가 아무리 천시받는 나날이 됐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대중은 그런 긴 기사를 읽는다. 그래서 난 신문기자가 당분간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챗 gpt 등장 전까지는.


AI가 일상까지 파고드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내 믿음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AI가 곧 기자를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당장 생계가 우려되는 현직 기자뿐 아니라 미래의 기자를 준비하는 언론고시생 분들도 이 질문에 대해선 고민을 많이 해두셔야 할 것 같다.


AI를 활용한 로봇저널리즘은 이미 국내 언론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주로 날씨나 증권 등 기상청이나 거래소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단순 예측 기사나 분석 기사를 쓴다. 연합뉴스와 NC의 협업 사례로 케이스 스터디를 해 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연합뉴스는 NC와의 협력을 통해 2020년 4월 국내 처음으로 머신러닝 기반 AI가 자동으로 작성하는 날씨 기사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이 기술을 통해 AI가 모든 문장을 100%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이용자는 매일 새벽과 점심, 저녁에 AI 날씨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방식을 좀 더 들여다보면, AI가 대량의 데이터를 읽고 스스로 기사 작법을 학습하는 구조다. 기상청 일기예보 데이터와 한국환경공단의 미세먼지 자료 등을 바탕으로 AI가 기사를 쓰고, 편집을 거쳐 포털과 웹사이트 등에 게재된다. 연합뉴스에선 보통 사회부 당직기자가 하루 세 번 기상청으로부터 날씨 정보를 받아 일일이 작성했는데, 그런 수고가 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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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뿐 아니라 증권 기사 영역에선 이미 다양한 AI 기사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파이낸셜뉴스(fnRASSI), 아시아경제(아경봇 기자 r2), 이투데이(e2bot), 조선비즈(c-biz봇), 국민일보(웨더봇), 매일경제신문(MK라씨로, 아이넷 AI 로봇 기자), 서울경제신문(서경뉴스봇, 아파트 실거래가 뉴스봇), 한국경제신문(한경로보), 한국경제TV(라이온봇), 헤럴드경제(HeRo) 등등. 주로 증권 관련 자동기사 생산 솔루션을 보유한 업체와 협업해 개장시간 동안 하루 수십~수백개 기사를 선보이는 형태라고.


아직까진 AI 기술이 취재나 기사 작성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진 않다. 다만 곧 기사요약이나 영어 외신 기사 한국어 번역 서비스 등이 도입된다면 그 활용도가 점점 더 커질 듯싶다. 기자 혼자서 일일이 체크하고 해야 할 업무들이 로봇에게 넘어가는 로봇저널리즘의 시대가 곧 올 것 같기도..




만약 앞으로 내가 기자를 계속한다고 치면. 적게는 15년 많게는 20년 정도가 남은 것 같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세월 안에 기자가 정말 사라질까? AI가 정녕 나를 몰아내고 내 자리를 대체할까? 사실 잘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껏 기술 발전과 시대의 변화 속에 얼마나 많은 직업군이 사라졌는가. 인류 역사상 무수한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졌지만 결국 다수의 대중이 편리함을 택하면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던 직업은 사라지고, 기계가 그 자리를 대체할 수밖에 없다.


사실 AI 등장 전부터 기술 발달은 기자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었다. 소수의 매체밖에 없던 시절, 내선 전화로 기사를 읽고 그걸 타이핑해서 신문에 넣던 그때 그 시절. 기자는 특권층이었다. 정보를 독점하고 한정된 매체와 통로를 통해서 조금씩 뿌려나갔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고 국민 모두가 정보 제공자 혹은 전달자가 되면서 기자의 위세도 점차 떨어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이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전 국민이 AI를 갖고 노는 시대가 됐으니 이제 기자들도 이에 맞춰서 새롭게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




차라리 AI가 절대 넘보지 못할 취재영역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 취재원을 만나 소속 기관의 내밀한 사정이나 누군가의 하마평을 듣는 그런 작업. 인간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나 호불호 같은 것들 말이다. 가령 차기 외교부장관으로 A가 거론되는데 그는 북미국 출신이 아니라서, 다른 직원들이 좀 무시한다든지. 이런 취재를 로봇이나 AI가 할 수 있을 리 없다. 소위 정무의 영역, 형이상학적인 분야다. 숫자와 수치, 통계와 계산, 정형화된 자료를 분석하는 건 인간이 AI를 이길 수 없으니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대화와 눈 맞춤을 통한 그런 취재에 기자들이 역량을 더 쏟는 거다.


과거 NC도 연합뉴스와 날씨 분야 협업을 도모하면서 홈페이지에 이렇게 명시했다. '날씨 기사처럼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업무는 AI에 맡기고, 그 시간에 기자는 깊이 있는 취재가 필요한 기획 기사나 르포, 발로 뛰는 기사를 더 쓰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고. 기자가 본인의 주 업무인 취재와 아이템 발굴에 집중할 수 있도록 AI 혹은 로봇이 일상적 업무를 돕는다는 거다. 이렇게 따지면, AI는 기자 업무 일부를 침범하고 대체하겠지만 그래도 본질적인 영역까지는 넘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


다만 기자들에게도 AI는 숙제를 남기고 있다. 수치로 표현되는 일상 기사를 AI가 대신하는 대신, AI가 넘볼 수 없는 영역과 분야의 기사 발굴을 위해 더 뛰어야 한다는 것. 자사 기자나 타사 기자들과만 경쟁을 하면 되었는데, 이제 로봇에게조차 지지 않기 위해 취재 활동에 더 열을 올려야 하는 셈이다. 점점 더 기자질하기 어려워지는 시대지만 뭐 어쩌겠나. 쉽게 돈 버는 직업은 없고, 그저 그때그때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면 AI 광풍도 우리의 밥줄 자체를 건드리진 못할 것이라고 그렇게 자기 위안을 삼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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