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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차 기자는 방산에 눈을 떴나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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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제 기자 인생은 늘 ‘새로운 길목’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치부 청와대와 국회에서 권력의 움직임을 좇았고, 사회부 사건팀장으로 범죄 현장과 재난 속을 뛰어다녔습니다. 복지부와 교육부를 출입하며 아이들의 미래와 노인들의 복지를 기록했고, 경제부 시절에는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국가 살림살이의 뼈대를 취재했습니다. 산업부에서는 부동산과 IT를 맡아 한국 경제의 체온을 쟀고, 지금은 뉴미디어팀장으로 46만 명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취재대행소 왱을 만들고 있습니다.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이슈와 사람을 만났지만, 여전히 제 안에는 ‘낯선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호기심’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안 해본 것, 내가 보지 못한 것, 내가 경험하지 않은 분야를 체험해보고 싶다. 새로운 분야를 취재하고, 공부해보고 싶다. 그 호기심은 뜻밖에도 방위산업이라는 분야를 향하게 됐습니다.


일단 제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특수한 분야입니다. 통상 한국 언론사에서 방산은 정치부 산하 국방부 출입기자가 담당합니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을 동시에 맡는 겁니다. 다만 중앙일간지에서 방산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취재도 참 광활하고 어려우니, 방산 업계 자체를 취재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특히 방산 출입기자 여러 명을 두고, 지면도 충분히 할애하는 경제지와 달리 일간지 국방기자는 방산 업계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면 중견 중소기업과의 미팅도 빠듯한 게 사실입니다. 저는 이런 기업들을 취재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주 강조했듯이, 방산은 절대 망하지 않고 망해서 안 되는 유망 산업입니다. 한 나라를 지키는 군사력과 직결되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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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국은 전쟁을 하지 않는데, 왜 방산이 이렇게 중요한 산업일까?”

하지만 곧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방산은 단순히 ‘전쟁을 위한 무기 산업’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힘이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 해협의 긴장,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는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사실 한국과 직결된 현실입니다. 국제 정세가 불안할수록 국방력은 단순한 군사적 개념을 넘어 경제와 외교의 언어가 됩니다. 무기를 ‘갖는 힘’뿐 아니라 무기를 ‘수출하고 만드는 힘’이 국가의 위상과 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 사실 한국이 연루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북한이라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지만, 사실 국제정세상 북한이 무턱대고 남한을 침범하거나 전 세계를 상대로 공식적인 전투를 벌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전쟁은 멀리 있지만, 방산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방산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깨달은 사실은, 이 산업이 결코 ‘총과 탱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투기에는 첨단 반도체와 AI가 탑재되고, 잠수함에는 고도화된 배터리와 소나 기술이 들어갑니다. 드론은 군사용을 넘어 재난 구조, 물류 배송으로 응용되고, 위성은 안보와 함께 우주 산업의 초석이 됩니다.

즉, 방산은 첨단 기술의 집합체입니다.


기술은 군사와 민간을 오가며 확산되고, 이는 곧 산업 전반을 진보시킵니다. 과거 인터넷이 군사 연구에서 출발해 전 세계의 생활을 바꿔놓은 것처럼, 방산은 미래 기술의 시험장이자 인큐베이터입니다. 기자로서 이 산업을 탐험한다는 건 곧 기술과 사회의 미래를 함께 탐구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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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던진 또 하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한국은 어떻게 방산 수출 강국이 되었을까?”


불과 20년 전만 해도 한국 방산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큰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폴란드, 노르웨이,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등 여러 나라가 한국 무기를 선택합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빠른 납기. 전쟁이나 분쟁이 벌어지면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단기간에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제조 역량을 갖췄습니다. 둘째, 가격 경쟁력. 서방의 무기에 비해 가격은 낮지만 성능은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셋째, 품질과 신뢰성. K9 자주포, 천궁 미사일, FA-50 전투기, K2 전차 등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성능을 입증했습니다. 이른바 ‘K-방산’은 이제 단순한 수출 품목이 아니라, 한국의 국가 브랜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산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군사 용어와 복잡한 계약 구조, 비공개로 진행되는 국제 협상이 얽히다 보니, 일반 독자들에게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분야입니다. 방산이 중요한 거 알고, 방산주도 주식 투자자의 관심을 끄는데 정작 방산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방산 업계의 폐쇄성도 여기에 한몫합니다. 아무리 국가 차원의 계약이 진행된다고 해도 너무 알려진 정보가 없습니다. 그러니 방산비리가 계속 회자되고 하는 겁니다. 군 출신이나 혹은 그 주변의 관계자들이 방산 업계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전문가의 손길이 불가피한 영역이라서입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베일에 쌓여있는 곳이 방산업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서 기자의 역할을 찾았습니다. 방산을 쉽게 풀어내는 다리가 되는 것. 군사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투자자가 아니더라도, 취업 준비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방산의 세계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방산을 단순히 ‘총과 미사일’의 세계가 아니라, 기술과 경제, 외교가 맞물린 산업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기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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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룰 이야기들


그래서 저는 이번 연재를 20편으로 계획했습니다.

한국이 방산을 키워야 하는 이유,

국내 주요 방산업체와 대표 무기 체계,

미국·유럽·이스라엘 등 글로벌 방산 강자들의 전략,

전투기·잠수함·미사일·드론 같은 무기별 해설,

방산 수출과 국제 협력의 구조,

드론·AI·사이버전·우주 산업 같은 최신 트렌드,

방산업계 취업과 투자 기회까지.


정치·경제·사회부를 두루 거친 기자의 경험으로, 방산의 입구를 넓히고 싶습니다. 기자의 언어로, 그러나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죠.


돌이켜보면 기자라는 직업의 본질은 ‘낯선 세계를 해석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처음 국회를 출입할 때도, 기재부를 출입할 때도, 저는 문외한이었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고 자료를 뒤지고 현장을 다니면서, 하나의 세계를 독자와 함께 해석했습니다.


방산 역시 지금은 낯설지만, 기자로서 두 번째 호기심을 불태우기에 충분합니다. 이 연재는 제 개인의 학습 과정이자 동시에 독자와 함께 떠나는 탐험입니다. 방산이라는 거대한 숲을 같이 거닐며, 기술·산업·외교의 결을 함께 읽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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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독자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방산은 어떤 의미입니까?”


누군가에게는 멀고 낯선 단어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투자나 커리어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방산은 더 이상 일부 전문가들만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국 사회가 평화와 안보를 지탱하기 위해 반드시 이해해야 할 산업, 그리고 미래 기술과 경제를 함께 끌어가는 새로운 엔진.


저는 기자로서 그 이야기를 풀어내려 합니다. 낯설지만 중요한, 멀지만 가까운 방산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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