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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만든 무기들, 세계가 놀라다

by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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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한국군의 무장 상태는 사실상 ‘기증품 박물관’에 가까웠다. 한국전쟁 직후 병사들의 손에 쥐어진 총은 미군이 쓰다 버린 M1 소총, 전차는 개조된 구형 M48, 하늘을 나는 전투기는 베트남전에서 퇴역한 노후 기체들이었다. 병사들은 싸우긴 싸워야 하는데, 총열이 마모돼 사격 정확도가 떨어지고, 전차는 고장이 잦아 부품을 해외에서 구해와야 했다. 군 내부에서조차 “우린 장비를 빌려 쓰는 나라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돌곤 했다.


그런 나라가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대 방산 수출국을 넘어, 이제는 ‘톱5’ 안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해외 무기 박람회에 가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한국 장교들이 미국·유럽 부스를 기웃거리며 ‘이 무기는 언제쯤 도입할 수 있을까’ 눈치 보던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아예 각국 장교들이 한국 무기 전시장으로 몰려든다. 어떤 이는 카탈로그를 받아들고 “K9은 사막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나?”고 하고, 또 다른 이는 “KF-21의 블록2형은 언제쯤 나오는가?”라며 일정을 따져 묻는다고 들었다. 한국 무기는 이제 단순한 전시품이 아니라, 전 세계가 계약을 맺고 자국으로 들여오고 싶어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 중심에는 한국이 독자 개발한 다섯가지 무기가 있다. 사막과 설원에서 모두 입증된 K9 자주포,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한국형 패트리엇’이라 불리는 천궁 미사일, 세계 전차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K2 흑표 전차, 그리고 탄도미사일 발사 능력까지 품은 KSS-III 잠수함까지.


이 다섯 무기는 단순히 ‘잘 만든 무기’가 아니다. 각각의 뒤에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예산이 부족해 개발팀이 야근 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버텼던 시절, 해외 시험장에서 “한국산 무기가 과연 될까”라는 의심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던 순간, 예상치 못한 결함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고도 다시 일어나 개량을 반복한 과정… 한 줄 스펙 뒤에는 늘 사람들의 고집과 실패, 그리고 다시 일어선 도전이 있었다.




이 무기들은 단순히 한국군만의 자산에 그치지 않는다. 폴란드의 혹한 속에서 K9 자주포가 불을 뿜고, 중동의 전장에선 천궁 미사일이 하늘을 지켰다. KF-21은 아직 개발 중이지만, 해외 언론은 “한국이 4세대와 5세대 사이의 새로운 옵션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K2 전차는 유럽 전장에서 레오파르트, 에이브럼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아시아산 전차로 주목받았고, KSS-III 잠수함은 일본·독일이 주도하던 디젤잠수함 시장에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이 다섯 무기의 개발 과정은 단순한 군수산업의 역사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도전과 성취를 압축한 이야기다. ‘우리가 어떤 나라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한국방산과 무기를 공부하면서 내가 주목했던 부분이 있다. 무기의 세부 제원보다도 그 무기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에 집중하려고 한다. 첫술부터 배부를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무기들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한국 독자 무기의 중요성을 고찰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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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자주포 - 현장이 검증한 화력


1990년대 한국 군의 화력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북한은 장사정포 전력으로 수적으로 우위에 섰고, 한국은 그에 맞서 사거리와 연사력, 기동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새로운 자주포가 필요했다. 그런 배경에서 시작된 것이 K9 자주포 프로젝트다.


개발은 1989년대 초·중반 연구검토에서 출발해,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삼성항공우주산업(현 한화디펜스)이 주축이 돼 1990년대 후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설계 목표는 단순했다. ‘먼 곳까지 쏘고, 빨리 쏘고, 빨리 옮기는’ 포병 플랫폼을 국내 기술로 구현하자는 것. 이 목표가 곧 K9의 설계철학이 됐다.


개발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52구경(포신 길이를 뜻함)이라는 긴 포신을 채택하면서 균형·반동·내구성 문제가 불거졌고, 자동장전장치와 사격통제시스템(FCS)을 결합하는 과정에서는 전기·유압 소자들의 정밀 조화가 시험대에 올랐다. 1996년 공개시험에서 사거리 목표(40km 이상)는 충족했지만 ‘3발 15초 급속발사’ 같은 고속 연사 요건은 초반에 불합격이었고, 1997년에는 연속사격 시험 도중 폭발사고가 나 한 연구원이 사망하는 비극도 발생했다.


이런 시행착오는 설계·발화체·추진약(탄약 연소 특성)의 형태 변경 등으로 이어졌고, 반복시험 끝에 1998년 개발 완료 선언으로 귀결됐다. 그 과정에서 ‘국산화율’과 ‘안정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수십만 회의 시험사격·주행시험이 반복됐다.


K9이 의미하는 바는 다층적이다. 첫째, 전술적 의미다. K9은 155mm 52구경의 강력한 포신과 자동장전, 탑재탄 수량 등으로 ‘전장에서의 화력 집중’과 ‘사격 후 신속 이동(shot-and-scoot)’ 전술을 가능케 했다. 전통적으로 포병은 화력의 왕좌였지만, 반대로 적의 관측·카운터배터리 공격에 취약했다. K9의 빠른 발사 속도와 기동성은 이 약점을 줄여주었다.


둘째, 산업·전략적 의미다. 단일 플랫폼을 설계·시험·양산해 수출할 수 있는 능력은 단순한 무기 하나를 넘어 방산생태계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K9은 그 후 한·중·러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입 의존형’이 아니라, 설계와 생산을 자국 산업에서 주도한 사례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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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수치’로 K9을 들여다보자. 구경은 NATO 표준인 155mm, 포신은 52구경장이다. 이 조합은 표준 포탄으로도 장거리(통상 40km 전후, 특수탄으로 50km대) 사격을 가능케 한다. K9은 급속사격 3발을 15초 안에 발사할 수 있고, 최대 연사로는 3분간 분당 6발 수준을 기록한다. 실전 운용에서는 초기 급속발사로 화력을 집중한 뒤 즉시 위치를 이동해 보복 사격을 회피하는 ‘샷앤무브’가 핵심 전술이다. 차량에는 통상 48발 내외의 포탄을 적재하고, 자동장전장치는 승무원 부담을 줄여 연속사격 능력을 보장한다. 차체는 궤도형으로 험지 기동성이 뛰어나며, 서스펜션과 엔진 출력은 높은 기동성을 뒷받침한다.


다만 K9의 성능은 단일 숫자로 설명하기 어렵다. ‘네트워크’와의 결합이 핵심이다. 사격통제장치와 탄도계산소, 감시 레이더·자산과의 데이터링크가 맞물리면 K9은 단독 무기가 아니라 ‘포병 전력의 노드’로 기능한다. 예컨대 정찰 UAV가 표적 좌표를 전송하면, 포병 지휘통제소가 탄도계산을 한 뒤 K9에 사격명령을 내리고, K9은 자동조준·장전 후 발사한다. 그 사이 시간이 짧을수록 적의 반격 전에 기동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최근 개량형에서는 자동화·통제시스템 개선과 정밀유도탄 호환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해외 수출 과정은 드라마였다. 인도는 2010년대 중반 K9을 현지화·라이선스생산하는 조건으로 100문 수주(‘Vajra-T’)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은 단순 판매가 아니었다. 현지 조립·기술이전·부품 공동조달 같은 ‘산업포함(industrial participation)’ 조항이 포함되었고, 이를 통해 한국 방산의 제조 역량과 협상력이 시험받았다.


폴란드 사례는 유럽 시장 진출의 상징적 전환이었다. 폴란드와의 계약에서는 현지 생산·기술이전·장기 운용지원이 화두였고, 이를 통해 K9이라는 플랫폼이 단순 수출품을 넘어 ‘파트너십 모델’로 확장되는 계기가 됐다. 핀란드와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의 채택은 혹독한 기후·운용 여건에서의 신뢰를 증명했다.


반면 영국의 사례처럼 모든 시장에서 무조건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몇몇 국가에서는 산업정책·현지화 요건, 혹은 경쟁 플랫폼과의 비교 심사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이는 기술력만으로 승부할 수 없는 방산시장 구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출 협상 과정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인도 수출 때는 포탑 설계·조건에 관한 기술적 협의가 장기간 이어졌다. 인도군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부 체계를 현지화하는 대신, 핵심 역량은 한국이 제공하는 식의 ‘역할 분담’이 진행됐다.


폴란드 계약에서는 납품 외에도 현지 유지·보수와 탄약 조달을 위한 장기 계약 협상이 병행되었고, 이는 ‘무기 판매=장기 사업’이라는 방산 비즈니스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수출 계약은 군사외교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아 단순 가격 경쟁을 넘어 전략·경제·외교가 맞물리는 복합 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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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진화는 멈추지 않는다. K9 계열은 A1·A2·A3 등으로 진화하며 자동화와 사거리 확대, 크루 축소를 목표로 한다. K9A1은 전자광학·탄도계산·자동제어 개선형으로 여러 국가에 팔렸고, K9A2는 탄약 자동화·무인포탑·크루 축소를 목표로 한 차세대 모델 로드맵에 포함됐다.


한화는 자율주행·무인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개발을 진행 중이며, 장기적으로는 L58(58구경) 장포로의 이행을 통해 표준탄으로도 사거리를 대폭 늘리는 구상까지 보고 있다. 이런 업그레이드는 단순한 성능 향상이 아니다. 유지보수 비용·훈련·탄약 보급 체계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제도 명확하다. 첫째는 ‘핵심 부품의 자립’이다. 엔진·유압장치·전자광학·반도체 등 일부 핵심 요소는 여전히 외산 의존도가 남아 있다. 수출 시장에서의 제약은 때로는 이 부품의 수급에 달려 있다. 둘째는 ‘군수지원(물류·예비부품) 생태계’다. 무기 판매는 계약 체결로 끝나지 않는다. 탄약·예비품·정비·훈련을 포함한 장기 패키지를 어떻게 제공하느냐가 신뢰도를 좌우한다. 셋째는 ‘전술·운용 개념의 지속적 업데이트’다. 드론·정밀유도탄·전자전 환경에서 포병 전력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 K9도 이 흐름 속에서 센서 융합·네트워크 전투에 더 깊이 결합돼야 한다.


한편 국내적 관점에서 K9은 단순한 무기를 넘어 ‘기술 축적’의 상징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쌓아온 설계·시험·생산 역량은 이후 다른 무기체계 개발에도 영향을 미쳤다. K9 개발 당시의 실험·데이터·공정관리 방식은 지금의 장비 자동화·품질관리 체계로 이어졌고, 이는 한국 방산의 ‘경쟁력’ 토대가 됐다. 또 K9의 수출 성공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방산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고, 방산 수출을 둘러싼 산업생태계의 성장을 촉진했다.


마지막으로, K9이 증명한 한 가지는 ‘무기는 현장·사람·제도’가 함께 성장할 때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엔지니어의 설계, 사수와 장비 정비사의 훈련, 탄약과 예비부품의 안정적 공급, 수출을 위한 산업정책과 외교적 뒷받침. 이 모든 요소가 맞물릴 때 K9은 단순한 포병 장비를 넘어 한국 안보·산업의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핵심 부품의 국산화와 공급망 회복탄력성 강화, 자동화·정밀화에 맞춘 운용 전술의 혁신, 그리고 수출 이후의 장기적 군수지원 체계 구축이다. K9은 이미 ‘성공한 플랫폼’이지만, 미래 전장과 시장은 또 다른 도약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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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21 보라매 - 하늘을 바꿀 한국형 전투기


한국이 오랜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온 국산 전투기 사업이 이제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KF-21 ‘보라매’는 단순한 기체 한 대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항공우주 산업의 전체 생태계를 키우고, 군의 전력 구조를 바꾸며, 수출로 국가 산업 경쟁력을 증명하려는 복합 국책사업이다. 그간의 시행착오와 내부 갈등, 기술적 숙제 역시 속속 드러났지만, 최근 양산 전환과 엔진·레이더 확보 등 가시적 성과가 연이어 나오면서 프로그램은 전환점을 맞고 있다.


한국이 독자 전투기 개발을 결심한 배경은 명확하다. 냉전 시기 이후 한국 공군은 대부분의 주력 전투기를 미국 등 외국에서 들여와 운용해왔다. 그러나 주변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구형기의 대체 필요성이 커지면서, 자주 국방의 상징으로서 자체 전투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단순히 하드웨어를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항전자, 레이더, 센서퓨전, 유도무기 통합 등 고부가가치 기술을 국내에서 직접 개발·축적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었다. 또 전투기 수출을 통한 산업 확장 가능성 역시 정책적 고려의 핵심이었다.


사업은 정부 주도로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삼각축을 이루며 시작됐다. 초기에는 인도네시아가 파트너로 참여했지만, 지분과 비용 분담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참여 비율이 축소되기도 했다. 이는 국제 협력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으며, 일정 지연과 재원 부담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남겼다.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KF-21은 ‘4.5세대급’ 성능을 목표로 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성능 개량을 통해 5세대급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내걸었다. 하지만 가장 큰 난제는 핵심 부품의 확보였다. 고성능 엔진, AESA 레이더, 스텔스 소재 등은 한국이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특히 엔진은 사업의 최대 난관이었다. 결국 GE의 F414 계열 엔진을 우선 도입하면서, 국내 정비와 생산 라인을 구축하는 절충안을 택했다. 장기적으로는 국산 엔진 개발을 병행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검증된 외산 엔진을 활용하는 현실적 선택이었다. 이는 전력화 시기를 앞당기고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에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비용과 일정 관리도 문제였다. 대규모 국책사업 특성상 예산 증액과 일정 지연 논란이 반복됐다. 여기에 인도네시아의 불투명한 분담금 납부 문제까지 겹치며 프로젝트는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프로토타입 제작과 시험비행이 속속 이어지고, 초음속 돌파, 무장 분리시험 등 주요 시험 항목에서 성과가 확인되면서 신뢰를 회복해 나갔다.


프로토타입의 첫 비행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수백 차례의 시험 비행을 통해 공기역학적 안정성, 전자 장비 신뢰성, 무장 호환성을 검증했다. 2024년 이후 한국 정부가 양산 계약을 체결하고 초도 물량 발주에 나서면서, KF-21은 ‘실험용 시제기’ 단계를 넘어 실제 전력 증강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동시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GE와 협력해 엔진 도입 및 국내 생산 체계를 구축하며, 초기 양산형 안정화에 필수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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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21의 기술적 특징은 ‘스텔스 개념을 일부 채택한 다목적 전투기’로 요약된다. 외형은 스텔스 형상을 부분

적용했지만, 초기 블록에서는 무기를 외부 장착하는 구조를 채택했다. 내부 무장창은 차기 블록에서 적용될 예정이다. AESA 레이더, 전자전 장비, 적외선 탐지·추적 장치, 데이터링크 등이 통합돼 네트워크 전투 능력을 구현한다. 이로써 공중우세 확보뿐 아니라 공대지·대함 임무도 수행할 수 있는 다목적 전투기 개념이 가능해졌다.


산업적 의미도 크다. KF-21은 단일 기체가 아니라 항공 생태계를 키우는 프로젝트다. 기체 제조, 엔진 생산, 전자 장비, 유도 무기, 정비, 시험평가 등 수십 개 기업과 연구기관이 연결돼 산업 전반의 역량을 끌어올린다. 양산 라인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국내 부품 업체들이 성장하고, 항공 산업의 품질·안전 체계도 성숙한다. 이 때문에 KF-21은 단순히 군 전력 보강 차원을 넘어 ‘산업 생태계 육성’이라는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수출 가능성도 주목된다. 이미 폴란드, 페루, UAE 등 일부 국가에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투기 수출은 가격 경쟁력만으로 성사되지 않는다. 정치·외교 관계, 무기체계 통합, 장기 정비 패키지 등 복합 요인이 작용한다. 특히 엔진과 항전 장비에 얽힌 수출 통제 규정, 현지 생산 요구 등은 협상 과정에서 큰 변수다. 미국·유럽, 러시아, 중국 등 기존 강자들과, 터키·파키스탄 같은 신흥 경쟁자까지 존재하는 시장에서 KF-21은 ‘첨단 성능 대비 합리적 가격’이라는 포지션을 통해 틈새를 노리고 있다.


개발 주체를 살펴보면, 방위사업청과 ADD가 정책과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KAI가 총괄 제작을 맡았다. 여기에 한화, LIG넥스원, 중소 협력업체들이 전자 장비, 무기, 부품을 분담했다. 인도네시아는 초기 참여국이었으나 갈등을 겪으면서 비중이 축소됐다. 그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이 더 많은 몫을 떠안으며 역량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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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과제는 여전히 크다. 무엇보다 엔진의 국산화가 핵심이다. 외산 의존을 줄이지 못하면 진정한 독자 전투기로 자리매김하기 어렵다. 국산 엔진 개발은 수년의 시간과 막대한 예산을 요구하므로,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기업의 기술 투자 모두 필요하다.


두 번째는 블록 업을 통한 성능 완성이다. 내부 무장창, 공대지 능력 강화, 스텔스 성능 확대 등이 단계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세 번째는 수출 전략이다. 단순 판매가 아니라 장기 정비, 부품 지원, 훈련, 현지 생산까지 포함된 패키지를 설계해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마지막은 단가 문제다. 대량 생산과 부품 국산화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수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KF-21은 기술, 산업, 외교가 맞물린 국가 프로젝트다. 시험과 양산을 거치며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고 있는 지금, 한국 항공 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앞으로 10년간 엔진 자립, 성능 개량, 수출 성공 여부가 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내가 취재 중에 여러 관계자 의견을 종합한 결론은 명확하다. KF-21은 아직 완성형은 아니지만, 한국이 독자 전투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큰 성취다. 이 사업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한국 항공 산업의 지속 가능한 도약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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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지키는 한국의 방패, 천궁


2000년대 초 한국은 대공 무기와 관련해 큰 고민에 빠져 있었다. 북한은 꾸준히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며 위협을 키우고 있었고, 주변국 역시 최첨단 전투기와 장거리 무기를 속속 도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군의 방공망은 여전히 미국이 만든 패트리엇 미사일에 의존하고 있었다.


물론 패트리엇은 뛰어난 무기였지만,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만능 방패는 아니었다. 더욱이 한국 입장에서는 언제까지나 해외 무기에 의존할 수 없었다. “우리 하늘은 우리가 만든 무기로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군과 연구기관에서 동시에 커졌다. 이때 탄생한 사업이 바로 ‘천궁’이다. 이름부터 한국 하늘을 지키는 수호신의 기운이 묻어난다. 천궁은 단순히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한 게 아니라, 한국이 본격적으로 독자 방공 체계를 구축한다는 상징적인 선언이었다.


천궁을 이해하려면 먼저 방공망의 구조를 떠올리면 된다. 보통 한 나라의 하늘은 다층 방어 체계로 보호된다. 가까운 거리의 위협은 단거리 미사일이, 중간 거리는 중거리 미사일이, 멀리서 날아오는 적은 장거리 미사일이 각각 맡는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 ‘중거리 층’이 비어 있었다. 축구로 치면 수비진의 한쪽이 뻥 뚫려 있는 상황이었다. 단거리 방어망과 장거리 방어망은 있었지만, 그 사이를 메워줄 중거리 무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국군은 중거리 지대공미사일을 독자 개발해 빈틈 없는 다층 방공망을 완성하기로 결심했다. 이 결심이 곧 천궁 개발의 시작이었다.


다른 무기들과 마찬가지로 천궁의 개발 과정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천궁은 단순히 미사일 한 발만 만드는 게 아니었다. 적 미사일을 탐지하는 레이더, 탐지한 정보를 미사일에 전달하는 지휘통제장치, 그리고 표적을 향해 날아가 정확히 명중하는 미사일까지 모두 하나의 체계로 묶여야 했다. 즉, 천궁은 ‘복합 무기 시스템’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을 총괄했고,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 등 방산 기업들이 각각 핵심 부품을 맡았다. 특히 레이더와 유도 기술은 세계적으로 몇 나라만 보유한 첨단 영역이었다. 수십 킬로미터 밖의 목표를 찾아내고, 그것이 적인지 아군인지 식별한 뒤, 순간적으로 미사일을 쏘아 정확히 맞히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개발진은 수없이 실패를 겪었다. 시험 발사에서 목표를 놓치고, 유도가 흔들리고, 탄두가 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손으로 끝까지 해낸다”는 신념으로 연구를 이어갔다.


천궁의 가장 큰 장점은 똑똑함이다. 발사와 동시에 마치 내비게이션처럼 중간까지 유도받고, 표적에 가까워지면 스스로 센서를 켜 정확히 목표를 찾아 들어간다. 이른바 ‘중간 유도 + 종말 유도’ 체계다. 중간 구간에서는 지휘소가 방향을 안내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미사일이 스스로 눈을 떠 목표를 추적한다. 덕분에 기동하는 전투기나 고속으로 날아오는 미사일도 맞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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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천궁-II 개량형은 사거리와 정확도가 한층 강화되어 한국 하늘의 ‘스마트 미사일’로 불린다. 최신 스마트폰을 사면 카메라 화소가 올라가고 성능이 더 좋아지는 것처럼, 천궁도 업그레이드될수록 더 정밀하고 강력해졌다.


천궁은 국내에서만 활약하는 무기가 아니다. 해외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막대한 국방비를 투입해 최첨단 방공 체계를 도입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의 천궁을 선택했다. 사막에서 진행된 실사격 시험에서 천궁은 날아오는 표적을 정확히 요격하며 합격점을 받았다.


이 모습은 곧바로 국제 언론에 보도되었고, “믿을 수 있는 한국산 방패”라는 평가를 얻었다. 과거에는 미국, 러시아, 유럽산 무기만 선택지였던 중동 시장에서 한국산 무기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무기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 군수지원과 기술 협력까지 이어진 점도 눈에 띈다. 수출국 입장에서는 단발성 계약이 아니라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무기를 운용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천궁 수출은 그런 신뢰를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천궁이 가진 의미는 크다. 첫째, 한국 방공망의 빈틈을 메워 다층 방어 체계를 완성했다는 점이다. 단거리 미사일, 중거리 천궁, 장거리 패트리엇과 사드가 각각 역할을 나누며, 하늘을 겹겹이 막아낸다. 둘째, 한국이 세계적 수준의 중거리 미사일 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었지만, 이제 한국은 레이더·유도·발사까지 독자적으로 통합 운용할 수 있다. 셋째, 국제 무기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다는 점이다. 천궁의 성공은 단순히 수출 성과에 그치지 않고, 한국 방산산업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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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앞으로의 과제도 있다. 전쟁 양상은 빠르게 변한다. 드론, 전자전, 극초음속 무기 같은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고 있다. 천궁 역시 이런 변화에 맞춰 계속 진화해야 한다. 드론 군단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다중 요격 능력, 전자전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레이더 성능, 그리고 장거리 요격 능력 확장 등이 필요하다. 또 수출 과정에서 늘 따라붙는 가격 경쟁력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천궁이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면 다른 나라들이 선택하기 어렵다. 반대로 가격을 낮추려다 핵심 기술이 유출되면 장기적으로 손해다. 기술 보호와 가격 경쟁력 사이의 균형은 한국 방산산업이 늘 직면하는 숙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궁은 분명 한국 하늘의 든든한 파수꾼으로 자리 잡았다. 더 이상 외국 무기에만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손으로 만든 방패로 우리 하늘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국방력의 자존심이다. 나아가 천궁은 한국 방산산업이 기술 독립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뻗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하늘을 덮는 보이지 않는 우산처럼, 천궁은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새로운 진화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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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흑표 — 한국이 만든 차세대 전차의 질주


한국의 K2 흑표 전차는 ‘묵직한 존재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찍이 한국은 기갑전력의 중요성을 절감했고, 외국에서 들여온 전차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우리식 전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K2다.


K2는 단순히 기동성과 화력, 방어력을 고루 갖춘 전차가 아니다. 한국 지형과 전술을 고려해 설계된 ‘한국형 주력전차’로서, 고속도로를 달리듯 도로 위를 질주할 뿐 아니라 산악과 들판을 가리지 않는 기동성, 적의 공격을 버텨내는 생존성, 표적을 놓치지 않는 정밀 사격 능력을 동시에 목표로 한 복합체다. 개발 초기에는 ‘왜 굳이 국산 전차를 만들느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으나, K2가 현실화되며 그 질문은 곧 ‘우리가 왜 더 일찍 만들지 않았냐’는 찬사로 바뀌었다.


K2의 설계 철학은 간단하면서도 근본적이었다. 빠르게 움직이며 생존력을 확보할 것, 이동 중에도 정확히 명중시킬 것, 전투 환경의 첨단화에 대응할 전자장비와 네트워크 능력을 갖출 것. 이를 위해 개발진은 엔진과 서스펜션, 주포와 사격통제장치, 복합장갑과 전자전 장비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새로운 전차 개념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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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과정은 이렇다. 1990년대 말 설계가 시작되어 2000년대 초중반까지 수많은 시험과 개량을 거쳐 2010년대에 이르러 본격 전력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시간 동안 엔진 성능 확보, 복합장갑 구성, 자동사격통제 시스템의 신뢰성 확보가 핵심 난제였다. 특히 엔진은 고출력·경량화·연비를 동시에 만족해야 했고, 국산 엔진 개발과 외산 엔진 도입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장갑 설계에서도 고민은 많았다. 단순히 두께를 늘려 방어력을 강화하면 무게가 늘어나 기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개발진은 복합장갑과 반응장갑을 혼합 적용해 관통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동시에, 무게 분산 설계를 통해 기동성과 보호력을 함께 확보하는 길을 택했다.


사격통제 시스템은 K2의 자랑거리다. 이동 중에도 빠르고 정확하게 사격할 수 있도록 자동탐색·추적 알고리즘, 안정화 포탑, 고성능 열영상카메라가 결합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전차가 표적을 정밀하게 맞히려면 정지 상태에서 발사해야 했지만, K2는 이동 중 교전 능력을 대폭 끌어올려 기동성과 화력을 동시에 달성했다. 이는 전장에서 ‘한 번 쏘고 빠지는’ 전술을 가능케 해, 적의 반격을 최소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K2의 전투 개념은 단순한 전차 운용을 넘어 ‘네트워크 전투’의 일환으로 설계됐다. 사격통제장치와 관측장비는 센서 정보를 실시간 공유해 다른 전력과 연계된 기습·타격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K2 운용 부대에서는 타 플랫폼과의 연계 훈련이 반복되며 전투 효율을 끌어올리는 사례가 보고되었다.


수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K2는 폴란드와의 협상을 통해 유럽 시장에 진출했다. 일부 수출 계약과 라이선스 생산 논의는 한국 전차가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췄음을 보여준다. 폴란드 딜은 단순히 물량 계약을 넘어 현지 생산, 장기 유지보수까지 포괄하는 복잡한 협상이었고, 이 과정에서 한국 방산기업들은 ‘제품 판매’에서 한 단계 나아가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확립했다.


물론 수출의 길은 순탄치 않다. 전차 수요국은 자국 방위산업 보호, 군사전략, 재정 상황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다. 따라서 K2의 경쟁력은 기술성능만이 아니라 현지화 전략, 금융 지원, 장기 군수지원 등 종합적 패키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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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주체를 살펴보면 K2는 민관협력의 산물이다. 국방과학연구소와 방위사업청이 개발 목표와 시험평가를 주도했고, 현대 로템이 설계·생산을 맡았다. 여기에 수많은 중소·중견기업이 부품과 시스템을 공급하며 방산 생태계를 구성했다. 다양한 기업이 참여하면서 기술 분산과 역량 축적이 이뤄졌고, 산업계 전체의 수준이 끌어올려졌다.


현장에서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복합장갑과 능동·수동 방어 시스템은 대전차 위협에 높은 생존성을 제공했고, 고속 기동성과 자동사격통제의 결합은 공격·방어 양면에서 유연한 전술 운용을 가능케 했다. 다만 초기에는 정비 인력 숙련도와 부품 공급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교육과 공급망 개선으로 점차 해결되었다.


향후 과제도 뚜렷하다. 전차 무인화·원격화로의 진화, 능동방어체계 고도화, 전자전 대응력 강화, 단가 절감을 통한 수출 경쟁력 확보가 핵심이다. K2가 더 빠르고 똑똑하며 오래 버티는 방향으로 업그레이드될수록, 그 경험과 노하우는 차세대 무기 개발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결국 K2 흑표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한국의 기술 자신감과 산업 역량, 그리고 전장 운영 개념의 변화를 상징하는 플랫폼이다. 앞으로 K2가 걸어갈 길은 곧 한국 방산이 어디로 향할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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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S-III 잠수함 - 해저의 보이지 않는 잠수함


한국의 KSS-III 도산안창호급 잠수함은 바다 속에서 조용히 위력을 발휘하는 ‘해저의 전략자산’이다. 이 함정은 단순히 물속을 오래 누비는 배가 아니다. 은밀히 접근해 정보를 수집하고, 필요하면 강력한 타격 능력을 행사하는 플랫폼으로 설계되었으며 한국 해군의 작전 범위를 바다 아래로 깊숙이 확장시켰다.


KSS-III의 등장은 한국 조선·방산 기술의 집약체가 해군 전력에 도입되었음을 의미한다. 긴 개발 여정과 수차례의 시험을 거쳐 진수와 전력화가 진행되는 과정은 국내 조선소와 방산업체, 연구기관이 어떻게 협업해 첨단 해양 플랫폼을 만들어내는지를 드라마처럼 보여준다.


KSS-III는 처음 구상될 때부터 ‘대형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의 범주를 넘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과거 한국 해군이 운용하던 잠수함은 주로 단순한 수중전 수행과 해상경비 역할에 국한됐지만, KSS-III는 그보다 훨씬 넓은 임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 장시간 잠항으로 은밀히 작전하며 전략적 억지력을 보완할 수 있고, 수중발사 수직발사관(VLS)을 탑재해 순항미사일이나 탄도탄 계열 탑재 가능성을 열어두는 설계적 유연성이 특징이다. 이런 설계 방향은 단순한 전력 증강을 넘어 ‘해양 전략의 확장’이라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둔 결과였다.


개발은 기술적 난제로 가득했다. 대형 잠수함은 단지 물길을 잘 가르는 선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소음 저감·수중 음향 신호 처리·추진 및 배터리 시스템·수중 통신·각종 센서와 전자장비의 통합 등 수많은 요소가 한꺼번에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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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음은 잠수함의 생존성과 직결된다. 적의 소나(음향탐지장비)에 얼마나 잘 들리지 않느냐가 바로 은밀성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함형 설계부터 소음 저감 장비, 축계(프로펠러 샤프트) 설계, 추진기(프로펠러) 형상, 기계실의 진동 완화 설계 등 전방위적 노력이 들어갔다.


또한 대형 함체를 움직이는 엔진과 발전기, 배터리 관리 시스템의 신뢰성 확보도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특히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은 공기불요추진(AIP) 또는 대용량 배터리 기술은 잠수함의 잠항 시간을 결정짓는 핵심이었다. KSS-III 개발 과정에서 국내 기술의 축적과 외부 기술 협력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 반복되었다.


설계 단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결정 중 하나는 바로 수직발사관(VLS)의 채택이었다. 수직발사관은 잠수함이 수중에서 다양한 유형의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게 해준다. 전통적인 잠수함 어뢰발사관과 달리 VLS는 순항미사일이나 잠수함발사탄도탄(SLBM) 등 장거리 타격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KSS-III의 초기 블록은 주로 순항미사일 운용을 염두에 둔 설계였지만, 향후 옵션으로 더 큰 전략무장 탑재 가능성까지 열어둔 설계적 여백은 전략적 의미가 크다. 이는 상대적으로 얕은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은밀한 억지력으로서 잠수함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계기가 된다.


운용 측면에서는 잠수함 승조원과 유지관리 체계의 성숙도도 중요한 요소였다. 수중에서 장시간 작전을 수행하려면 승조원의 숙련도와 임무지속 역량, 그리고 정비·보급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KSS-III의 배치 초기에는 정비 인력 교육과 수리 체계 안정화가 병행되었는데, 이는 신형 플랫폼이 상시 운용 능력을 갖추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함정의 성능은 단지 설계 수치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오래, 신뢰성 있게 바다에 나갈 수 있느냐’로 평가된다. 그래서 많은 노력이 승조원 교육, 정비 인프라 구축, 예비부품 공급선 확보에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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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S-III가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정보수집 능력이다. 잠수함은 표면 함정이나 항공기와 달리 적의 레이더와 시야 밖에서 움직이며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소음 저감 기술과 고성능 소나, 탑재형 전자전 장비는 잠수함이 적 해역 깊숙이 침투해 전자 신호를 수집하고, 심층 정보를 제공하는 데 유리하다. 이런 정보는 해군뿐 아니라 국가의 전략적 의사결정에도 중요한 영향을 준다. 적의 해군 전력 배치, 해상교통 감시, 전술·전략적 상황 판단 등에서 수중 정보의 가치는 매우 크다.


수출과 관련해서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잠수함은 고도의 기술과 함께 정치·전략적 민감성을 동반하는 무기체계다. 어느 나라에 팔 것인가, 어떤 기술을 어느 수준까지 이전할 것인가, 현지 생산을 허용할 것인가 등 수많은 변수가 수출 협상에서 논의된다. KSS-III 설계·건조 역량은 한국 조선업과 방산업체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측면에서 수출 잠재력이 크지만, 실제 수출은 기술 이전 문제와 국제 규제, 수입국의 운용 능력 등에 좌우된다. 또한 잠수함 수주는 단일 거래가 아니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요구한다.


교육·훈련, 유지보수, 예비부품 공급, 아울러 초기 몇 년 간의 운영 지원까지 포함된 패키지가 되어야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KSS-III의 수출은 기술적 성취와 더불어 외교적 역량과 금융, 군수지원 체계의 정비가 결합되어야 가능한 과제다.


KSS-III의 개발 과정에서 산업적 파급효과도 컸다. 잠수함은 고도의 정밀 가공과 복합 자재, 전자장치 통합을 요구하기 때문에 관련 중소기업과 부품 공급업체들의 기술 수준이 함께 올라갔다. 대형 조선소의 건조 노하우와 방산업체의 시스템 통합 역량이 만나면서 국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강화되었다. 또한 시험·평가 인프라의 확충, 해군과 산업체 간의 협업 경험 축적은 이후 다른 해양 플랫폼 개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즉, KSS-III는 그 자체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해양·방산 산업 생태계의 레벨업을 촉진한 촉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첫째는 에너지·추진 기술의 고도화다. 디젤-전기 잠수함은 공기 불필요 추진(AIP)이나 대형 배터리의 도입으로 잠항 시간을 늘릴 수 있지만, 이러한 기술의 안정적 확보와 실전 배치에는 비용과 시간이 요구된다.


둘째는 소음 저감의 지속적 개선이다. 적의 소나가 점점 정교해지는 만큼 잠수함의 은밀성 유지도 계속해서 개선되어야 한다. 셋째는 수중 감지·통신의 한계 극복이다. 수중에서의 통신은 물리적 제약이 크기 때문에 데이터 전송과 실시간 지휘통제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 예를 들어 수면으로 부상했을 때의 위성통신 연계나 무인수중체계(UUV)와의 연결 등이 연구되고 있다. 넷째는 인력과 운용 개념의 고도화다. 잠수함은 고도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므로, 장기적으로 승조원 육성과 유지 체계의 안정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KSS-III의 가치는 단순한 전력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잠수함은 ‘감지되지 않는 존재’로서 억제력을 가진다. 전쟁 억지력의 핵심은 상대가 비용을 계산하게 만드는 능력인데, 잠수함은 그 자체로 상대에게 불확실성과 위험을 강요한다. 적이 어느 해역에 잠수함이 숨어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작전을 펼치는 것은 큰 부담이다. 따라서 KSS-III의 운용 능력 향상은 지역 안보에서의 한국의 발언권을 높이고, 유사시 국익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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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KSS-III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교훈도 분명하다. 첨단 플랫폼의 개발은 기술 축적뿐 아니라 사람과 조직, 제도와 인프라의 결합을 요구한다. 설계·건조·시험·운용의 전주기가 매끄럽게 이어져야 성과가 나온다. 또한 수출을 포함한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을 바라봐야 진정한 경제적·전략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KSS-III는 이미 한국 해군과 산업계가 함께 만들어낸 성과지만, 앞으로의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더 커질 수도, 한정될 수도 있다.


한국의 KSS-III는 바다 밑에서 조용히 움직이지만 그 존재감은 크다. 그 함정은 우리 해군의 작전 범위를 깊고 넓게 확장시켰으며, 앞으로도 해저에서의 정보 수집, 기습 타격, 전략 억제 같은 역할을 통해 국가 안보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할 것이다. 기술적 진화와 운용 역량의 성숙을 통해 KSS-III는 더욱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해저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까지의 과정은 단지 무기 체계 하나의 발전이 아니라 한국이 해양 안보와 방산 생태계를 어떻게 설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만들어가는 시간일 것이다.




함께 알아본 한국만의 다섯 무기는 각각 땅, 전장, 하늘, 방공, 해저에서 제 몫을 한다. 공통점은 우리가 직접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완성 뒤에도 계속 손봐야 하는 과제가 있다는 것이다. 핵심 부품의 자립,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 전투 능력 강화, 수출 뒤의 장기 군수 지원 체계 구축 등이다. 그러니 우리도 보다 더 관심을 갖고, 바다를 보거나 비행기를 올려다보거나 멀리서 포성 소리가 들리면, 저 뒤에 우리가 만든 장비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응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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