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기 거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쇼핑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눈치싸움, 외교전, 로비, 그리고 막대한 돈이 함께 움직인다. 탱크나 전투기를 파는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맹을 사고 파는 일이다.
사실 모든 건 ‘불안감’에서 시작된다. 주변국이 신형 미사일을 도입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국방부는 곧바로 움직인다. 우리도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가 전제된다. 이렇게 필요가 생기면 군이 먼저 요구사항을 정리한다. 예를 들어 “적 미사일을 막을 방공 시스템이 필요하다”거나 “해상 작전을 지원할 헬기가 필요하다”는 식. 그런 다음 정부는 예산을 세우고, 외국 기업들에 제안 요청서를 보낸다.
이때부터 입찰 경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누가 더 싸게 파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무기를 파는 기업들은 단순한 무기만 내세우지 않는다. 이런 식의 달콤한 유혹이 시작된다. “우리 시스템은 최신형이고, 유지보수도 책임집니다” “훈련 인력도 보내드릴게요” “원하신다면 조립 공장도 현지에 세워드릴게요” 이렇게 기술 이전, 인력 교육, 현지 생산 같은 조건까지 얹는다. 그래서 글로벌 무기 거래는 단순히 무기를 사고 파는 게 아니라 ‘관계’를 팔고 사는 것이다.
입찰이 열리면 외교도 함께 움직인다. 방산기업 뒤에는 늘 그 나라 정부가 있다.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전투기를 팔고, 미국 국무장관이 군함 계약을 도와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무기 거래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어떤 나라의 무기를 선택하느냐는 곧 ‘누구 편이 될 것인가’를 의미한다.
계약 협상 단계로 가면 진짜 드라마가 시작된다. 양국 대표단이 만나서 계약서의 한 줄 한 줄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가격은 물론 부품 납품 주기, 보증 기간, 정비 인력 교육까지 전부 다 조건으로 붙는다. “엔진은 우리가 만들되, 부품은 현지 공장에서 조립해라.” “기술 일부는 이전해주되, 핵심 알고리즘은 비공개로 유지한다.” 이런 식으로 한 문장마다 치열한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엔 늘 ‘오프셋’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오프셋은 “우리에게도 뭔가 남겨줘야지”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전투기를 사면서 “부품 생산을 우리나라 기업이 맡게 해달라”거나 “기술을 이전해달라”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수입국도 일자리와 산업 기반을 챙길 수 있다.
오프셋은 무기 거래판의 ‘덤’ 같은 개념이지만, 사실은 이 판의 진짜 핵심이다. 수입국은 단순히 무기를 사는 게 아니라, 그 거래를 이용해 자국 산업을 키우려 한다. 탱크는 네가 만들어도, 궤도는 우리 공장에서 만들게 해달라는 것. 겉으론 기술 협력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거래 조건에 붙는 ‘패키지 장사’다.
이 오프셋은 잘만 하면 윈윈이지만, 삐끗하면 웃지 못할 코미디가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서는 “전투기를 사줄 테니, 그 대신 우리나라 기업 제품도 좀 사줘라”라는 조건을 걸었다가, 상대 기업이 그걸 ‘압박 판매’로 받아들여 계약이 깨진 적도 있다.
반대로 어떤 거래에서는 오프셋으로 세운 공장이 그 나라 경제의 주력 산업으로 성장해버리기도 했다. 실제로 브라질은 전투기 도입 과정에서 스웨덴 기업과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협상해, 이후 자국 항공기 제조사 엠브라에르(Embraer)가 급성장했다. 전투기 한 대가 결국 항공산업 전체를 키운 셈이다.
협상이 끝나면 계약이 체결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그 뒤가 더 길다. 전투기를 산 나라엔 조종사 훈련, 정비 교육, 부품 공급,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 수십 년짜리 계약이 함께 따라붙는다. 그래서 무기 한 번 사면, 그 나라와 최소 20년은 묶인다고들 말한다. 미국이 우린 고객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이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야마마 거래’다. 영국은 사우디에 전투기 수백 대를 팔고, 대가로 원유를 받았다. 규모는 400억 달러. 하지만 그 뒤엔 수억 파운드의 뇌물이 오갔다는 의혹이 터졌다. 정권, 기업, 왕실이 얽혀 수십 년 동안 조사와 폭로가 이어졌다. 한 번의 무기 계약이 나라 전체를 뒤흔든 셈이다.
인도의 ‘보포스 스캔들’도 있다. 스웨덴 방산기업이 인도에 대포를 팔면서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준 사건이었다. 결국 총리가 사임했고, 회사는 인도 시장에서 퇴출됐다. 무기 거래 한 건이 정권을 바꿔버린 것이다.
러시아 출신의 무기상 ‘빅토르 부트’는 또 다른 전설이다. 그는 아프리카 내전 지역에 총과 로켓을 밀수하며 돈을 벌었다. 비행기를 개조해 총기를 실어 날랐고, 내전이 일어나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났다. 결국 미국에 체포됐고, 영화 <로드 오브 워>의 실제 모델이 됐다. 세상에는 이런 ‘그림자 무기 거래’도 존재한다.
러시아와 중국은 또 다른 방식으로 무기를 판다. 돈이 아니라 ‘영향력’을 받는 방식이다. 러시아는 아프리카에 헬기와 미사일을 팔고 대신 자원 채굴권을 얻는다. 중국은 중동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무기를 수출하면서 “우리와 협력하면 개발 자금도 줄게”라는 식으로 움직인다. 무기 거래가 외교와 개발, 자원을 묶은 세트상품이 되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계약은 프랑스와 인도의 ‘라팔 전투기 거래’였다. 2010년대 초 인도는 노후한 전투기를 대체하기 위해 세기의 입찰전을 열었다. 금액만 120억 달러, 세계 방산 기업들이 줄줄이 몰렸다. 미국은 F/A-18, 스웨덴은 그리펜, 러시아는 미그-35, 영국은 타이푼 전투기를 내세웠다. 그런데 최종 승자는 프랑스의 ‘라팔(Rafale)’이었다.
프랑스는 단순히 성능이 좋”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 전투기를 사면, 조립 공장과 부품 생산 라인을 인도에 세워주겠다”고 제안했다. 인도 입장에선 무기를 사면서 자국 산업을 키울 수 있는 기회였고, 정부는 역대 가장 현명한 거래라며 자화자찬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계약이 공식 체결된 뒤, 언론이 폭로를 터뜨렸다. “처음엔 126대를 사기로 했는데, 왜 36대로 줄었나?” “가격은 오히려 왜 두 배로 뛰었나?”라는 헤드라인이 지면을 채웠다.
실제로 프랑스가 약속했던 현지 생산 비중도 사라지고, 인도 내 협력업체가 바뀌었다. 더 놀라운 건 새로 지정된 현지 파트너가 인도 총리와 가까운 대기업이었다는 점이었다. 야당은 즉각 “라팔 거래는 방산계의 뇌물 스캔들”이라며 총리를 정조준했다. 계약서를 조사하겠다는 정치 공방이 이어졌고, 프랑스 내부에서도 “이건 순수한 수출이 아니다, 외교적 정치 거래다”라는 비판이 나왔다. 프랑스 방산기업 다쏘(Dassault)는 “우린 절차대로 했다”고 반박했지만, 이미 여론은 들끓었다.
이후 양국은 서로를 감싸면서도 동시에 불편한 동거를 이어갔다. 인도는 계약을 취소하지 못했다. 이미 돈이 들어갔고, 군은 라팔의 성능을 마음에 들어 했다. 프랑스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린 계약을 이행했다는 입장이었다.
대신 프랑스 정부는 라팔 홍보를 강화하며 중동과 동남아로 시장을 확장했다. 인도는 정치적으로 얻은 게 거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글로벌 방산 외교의 강자’로 부상했다. 그리고 라팔은 단순한 전투기가 아니라 “정치가 어떻게 무기를 팔아먹는가”를 보여준 대표 사례로 남았다. 한 나라의 공군력보다 더 큰 건, 그 무기를 둘러싼 외교력이었다.
이제 한국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 방산은 지금 급성장 중이다. K2 전차, K9 자주포, FA-50 전투기, 천무 미사일 등 이른바 ‘K-방산’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대부분의 계약이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시장에선 이제 ‘가격’보다 ‘관계’가 중요하다.
우선 한국은 단기 계약보다 장기 파트너십으로 가야 한다. 무기를 팔고 끝내지 말고, 정비·훈련·부품 공급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 재구매가 이어진다.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 요구에도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현지 산업을 함께 키워주면 신뢰를 얻는다. 무엇보다 투명해야 한다. 무기 거래는 비밀이 많을수록 의심을 부른다. 깨끗하게 거래하는 나라라는 평판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결국 글로벌 무기 거래는 단순히 전쟁을 위한 장사가 아니다. 믿음과 영향력을 파는 산업이다. 전투기 한 대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거래를 통해 만들어지는 관계다. 총을 파는 게 아니라, ‘평화를 유지할 신뢰’를 파는 일. 그래서 이 세계에서는 기술보다 사람이, 무기보다 외교가 더 무겁다. 그 무게를 알고 한국 정부와 방산업계도 관계를 쌓는 노력을 더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