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는 수백 가지 무기가 존재한다.
탱크, 장갑차, 군용 위성, 레이더, 방공체계, 드론… 종류를 나열하기만 해도 끝이 없다.
그런데 방산 업계에서 가장 상징적이면서 ‘나라의 역량을 가르는 무기’는 의외로 단 세 가지다.
바로 전투기·잠수함·미사일.
이 무기들은 단순히 비싸서 특별한 게 아니다. 한 나라가 가진 기술력, 산업기반, 전략 사고, 외교력까지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종합예술’에 가깝다.
그래서 방산 전문가들은 “어떤 나라의 능력을 보려면 이 세 가지만 보면 된다”고 말한다. 이 세 무기 수준이 그 나라의 군사력뿐 아니라 기술 수준과 외교적 영향력까지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방산은 너무 넓고 복잡해서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는 분야다.
하지만 이 세 무기를 이해하면 방산 전체 구조를 한눈에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투기는 기술력의 집약체, 잠수함은 전략 억제력의 핵심, 미사일은 현대전의 문법 자체를 바꾸는 무기다.
공간도 하늘·바다·지상으로 다르고, 역할도 기동·은밀·타격으로 완전히 다르지만, 이 세 가지 무기를 합치면 한 나라의 모든 안보 역량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전투기
전투기는 국가 기술력의 간판이다. 레이더·엔진·센서·스텔스·AI까지 첨단 기술이 모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투기 하나만 봐도 그 나라의 산업 수준이 그대로 드러난다.
전투기의 기술 경쟁은 매년 심화된다. 가장 큰 변화는 AI의 등장이다.
미국 공군은 2023년부터 AI가 직접 조종하는 F-16 시험비행을 성공시키며 세계를 놀라게 했고, 2024년에는 실제 공중전 기동까지 구현했다. 사람이 조종하는 게 맞나?라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한 순간이다.
한국도 미 공군의 개념을 받아들여 ‘CCA(유·무인 복합 전투기)’ 개발 논의를 본격화했고, KAI도 ‘AI 기반 전투기 시스템’을 미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전투기는 외교 도구로도 쓰인다. 튀르키예가 개발한 바이락타르 TB2 드론은 사실 전투기와 드론 사이의 영역에 있지만, 그 인지도는 전투기급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바이락타르 드론이 러시아 장갑차를 연달아 폭파하자 세계는 전투기 이상의 효과도 가능한 무기라며 주목했다. 전투기의 고전적 의미가 변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KF-21은 이런 흐름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스텔스 기능 일부 + 최신 센서 +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이라는 조합이 아세안·유럽 중소국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쉽게 말하면 ‘안 그래도 전투기 사고 싶은데 F-35는 너무 비싸다’는 나라들이 원하는 옵션이 한국에서 나온 것이다. 기술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시장성’까지 고려된 설계라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크다.
전투기 분야는 앞으로 더 복잡해질 전망이다. 레이저 무기, 전자전 장비, 무인 윙맨 드론이 전투기 주변을 날아다니는 형태가 표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히 전투기라는 플랫폼이 있다. 전투기는 미래에도 국가의 얼굴이자, 방산 기술의 집약체로 남을 것이다.
잠수함
잠수함은 얼핏 보면 조용한 무기지만, 국제정치에서는 핵심 전략 무기로 취급된다.
잠수함의 위력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은밀성이 잠수함을 ‘억제력의 심장’으로 만든다.
한 나라가 잠수함을 보유하면 주변국 외교가 달라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는 무기’는 전쟁을 억제하는 심리적 압박을 만든다. 그래서 잠수함은 탱크나 장갑차처럼 눈에 띄는 무기보다 외교적 파급력이 훨씬 강하고, 훨씬 위험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AUKUS 협정이다. 호주는 미국·영국의 원자력 잠수함 기술을 들여오며 아시아 태평양의 군사 균형을 흔들었다. 잠수함 전력 하나가 전체 지역의 전략 지도를 새로 그릴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이다.
한국 또한 잠수함 분야에서 눈에 띄는 존재다. 장보고-III Batch-II는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운용 능력까지 확보한 사실상 ‘전략자산’이다.
잠수함발미사일은 다른 국가가 먼저 공격하더라도 ‘2차 타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전쟁 억제력의 핵심이다. 우리 잠수함 어딘지 모른다. 잘못 건드리면 바로 반격 들어간다. 이 메시지가 주변국과의 힘의 균형을 만드는 것이다.
잠수함은 가장 조용한 무기이면서 동시에 가장 ‘돈이 많이 드는 무기’다. 원자력 추진 시스템, 소음 저감 기술, 압력선체 구조, AIP(공기불요추진), 최신 소나까지 전부 최상급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잠수함을 만든다는 건 그 나라의 중공업·소재·전기·전자·소프트웨어·조선 능력까지 총동원되는 국가 프로젝트다.
바닷속 다크모드라고 부를 만큼 보이지 않지만, 잠수함이 가진 전략적 영향력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해저 케이블 보호, 심해전, 무인 잠수정 연동 등 새로운 전장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잠수함은 외교·경제·군사 분야 모두에 영향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계속 남을 것이다.
미사일
미사일은 현대전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한 무기다. 과거엔 ‘쏘고 끝’이었다면, 지금은 AI 유도, GPS 정밀타격, 스텔스 설계, 변칙 기동 알고리즘까지 들어가는 종합 기술 플랫폼이다. 그래서 미사일 분야는 국가별 기술 격차가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사일의 위상을 완전히 바꿨다. 러시아는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내세웠고, 우크라이나는 패트리엇으로 이를 요격하며 전 세계 전략가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속도 vs 방어 vs 기동 vs 탐지의 싸움이 전쟁 전체를 좌우한 것이다.
북한 역시 미사일 개발을 통해 국제정치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사거리·속도·재진입체 기술이 발전할수록 주변국은 대응 전략을 재정비해야 하고, 이는 곧 군사·외교 판을 크게 흔든다.
한국은 미사일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현무-5는 최대 사거리 800km, 탄두중량 8~9톤급으로 알려져 세계 최고 수준의 재래식 탄도미사일 중 하나다. 한반도 억제력의 핵심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한국은 미국과의 미사일 지침이 해제된 이후, 미사일을 국가적 전략 중심에 놓고 기술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미사일은 단순 공격 수단이 아니라, 전쟁의 속도를 결정하는 무기로 변하고 있다.
전투기보다 빠르며, 잠수함보다 먼저 도달하고, 지상군이 움직이기도 전에 상황을 바꾼다. 그래서 현대전의 판도는 미사일이 그린 궤적 위에서 결정된다. 방공체계(한국의 L-SAM,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미국의 패트리엇 등)와의 조합도 중요해지고 있다.
전투기·잠수함·미사일은 각각 따로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서로의 성능과 전략을 규정하는 관계를 가진다.
전투기는 제공권을 통해 미사일 운용 환경을 만들고 미사일은 전투기의 위험을 낮추며 잠수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두 전력의 균형을 흔든다.
전장은 분리돼 있지 않고 세 무기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새로운 전투 개념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현대전은 단일 플랫폼의 경쟁이 아니라 세 전력이 결합하는 방식의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제안보 환경 역시 이 세 무기의 상호작용에 따라 재편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전투기와 잠수함 경쟁을 통해 태평양 전략지형을 다투고 있고 러시아와 나토는 미사일과 방공체계의 교차 경쟁으로 억제 구조를 다시 짜고 있다. 전쟁의 양상은 정보전과 경제전으로 확장됐지만 물리적 힘의 기준은 여전히 이 세 무기가 어떻게 배치되고 운용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국력과 외교력의 실체가 무기 구성에서 드러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가장 뚜렷한 변화는 세 무기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투기 주변을 무인기와 분산센서가 따라다니고 잠수함은 해저 네트워크와 연동되며 미사일은 AI, 변칙기동, 다중 목표 추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과거에는 플랫폼이 전장 개념을 정의했지만 이제는 네트워크와 결합한 체계가 전장을 규정하고 있다. 무기 하나를 이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세 무기가 연결되는 구조까지 읽어야 현실과 가까워진다.
그래서 방산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전투기는 하늘의 문제, 잠수함은 바다의 문제, 미사일은 지상의 문제라는 단순 분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오늘의 전쟁과 내일의 억제는 세 무기가 어떤 속도와 깊이와 기술을 가지고 엮이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니 이 세 가지 무기의 변화를 좀 더 유심히 보고, 더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