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뉴욕주의 올버니 메디컬센터는 예고 없이 ‘아날로그 시대로의 후퇴’를 겪었습니다. 화면으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던 모니터들이 하나둘 검게 변했고, 자동으로 작동하던 약품 투여 장비는 멈춰 섰습니다.
전산망이 잠긴 건 병원 내부의 오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깥에서 침투한 랜섬웨어가 병원의 신경망을 붙잡아 잠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의료진은 심박과 체온을 종이에 다시 적기 시작했고, 중환자실은 며칠 동안 손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시계처럼 버텼습니다. 복구는 더뎠고, 일부 데이터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 한순간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장면이었습니다.
며칠 뒤,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항공기들이 공항 활주로에서 출발을 미루고, 조종석에서는 위치 정보가 요동치는 현상이 잇따랐습니다. 처음엔 기체 고장으로 의심됐지만 문제의 근원은 하늘을 가득 채운 GNSS 교란 신호였습니다.
발트해 상공에서 흘러들어온 간섭이 항법 시스템을 뒤흔든 것입니다. 핀란드 항공당국은 회항과 지연을 선택했고 북유럽 항공망은 몇 시간 동안 꼬여버렸습니다. 사이버전의 흔적이 땅을 지나 하늘까지 확장된 순간이었습니다.
사이버 세계 뿐 아니라 인간의 손길이 가장 닿기 어려운 공간, 우주에서도 위험 신호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유럽 전역에서 위성 인터넷이 일제히 마비되며 전황을 흔들었습니다. 군용 모뎀이 동시에 작동을 멈추고 독일 풍력발전소 수천 기가 원격 제어에서 이탈했습니다. 지상국 펌웨어를 정조준한 공격 때문이었습니다. 포탄보다 먼저, 통신망이 침묵한 전장의 새로운 서막이었습니다.
이듬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운용하던 상업용 지구관측 위성은 기묘한 현상을 반복적으로 기록했습니다. 데이터 전송이 도중에 끊기고, 고도와 궤도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이상 신호가 이어졌습니다.
전문가들은 특정 국가의 레이저 간섭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습니다. 단 하나의 위성이 흔들렸을 뿐인데, 기상·해양·환경 감시 체계 전체가 동반 진동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우주는 경쟁을 넘어 충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영역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보이지 않는 전장이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보여줍니다. 인터넷 장애처럼 보이지만 병원과 항공과 발전소가 멈추고. 위성 하나가 흔들리면 국가 전체의 움직임이 느려집니다. 전장은 더 이상 눈으로만 확인되는 공간이 아닙니다. 일상을 지탱하는 기반에서 먼저 흔들립니다.
사이버전은 디지털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격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피해는 가장 현실적입니다. 국방부와 은행과 철도망과 병원이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연결된 세상에서는 작은 침투도 큰 혼란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많은 국가는 사이버 공간을 육해공과 동등한 전장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초기의 사이버전은 단순했습니다. 정부 사이트를 마비시키거나 기밀 문서를 훔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생활 전체로 확장되면서 공격의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냉장고와 공장 로봇과 교통 신호까지 모두 사이버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디지털보다 현실 피해가 더 커지는 시대가 왔습니다.
최근 사이버전의 특징은 민간 피해 증가입니다. 전쟁과 무관한 시민이 먼저 위협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이 멈추면 응급실이 흔들리고. 카드사가 공격받으면 결제가 중단됩니다. 공격자는 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국가는 더 넓은 범위를 지켜야 합니다.
AI는 사이버전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취약점 분석과 공격 코드 생성이 자동화되면서 방어는 항상 뒤따라갑니다. 피싱 메일도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변했습니다. 텍스트 패턴 분석만으로는 잡아내기 어렵습니다. 공격을 숨기는 흔적도 더 희미해졌습니다. 그래서 사이버전은 기술과 외교가 동시에 얽힙니다.
국가들은 전담 부대와 정보 공유 체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공격이 어디서 오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사이버사령부를 확대했고 영국은 금융기관과 통신사의 보호 체계를 통합했습니다. 관할은 군이나 정보기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민간과 공공이 함께 움직여야 공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우주 영역도 비슷한 흐름입니다. 위성은 통신과 기상과 금융과 국경 감시에 모두 쓰입니다. 하나의 위성이 흔들리면 산업 전체가 장애를 겪습니다. 그래서 우주 방위산업은 새로운 전장에 대비하는 핵심 분야가 되고 있습니다. 위성을 지키는 기술과궤도 감시 시스템이 대표적입니다. 레이저 간섭을 막는 보호 장치와 회피 기동 기술도 중요합니다.
미국은 우주군을 창설해 군사 위성과 민간 위성을 한 체계로 운영합니다. 스페이스X는 수천 기 규모의 위성망을 구축해 군 통신의 일부 역할을 수행합니다. 중국은 독자 위성항법 시스템을 기반으로 정밀 타격 능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정찰 위성을 늘려 주변국의 미사일 활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합니다. 우주는 군과 민간의 경계가 가장 빠르게 무너지는 공간입니다.
한국도 두 전장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사이버 안보는 기반 시설을 중심으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전력망과 철도망과 정수 시설 같은 국가 기반 시설에는 정기적인 모의 침투 훈련이 진행됩니다. 공격 상황을 가정해 대응 절차를 반복 점검하는 방식입니다. 공공 기관은 통합된 보안 수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금융권과 통신사도 범정부 단위 훈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군의 준비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군사이버작전사령부는 해외 위협을 실시간 분석하고 공격 경로를 추적합니다. AI 기반 탐지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며 공격 패턴을 자동으로 식별합니다. 사이버 특기병과 전문 요원을 꾸준히 양성해 인력 기반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과거 랜섬웨어 피해를 크게 겪은 뒤 복구 체계도 정비했습니다. 공공기관은 클라우드 기반 복구 센터를 갖추고 중요한 데이터는 이중 백업을 의무화했습니다. 사고 발생 시 중앙에서 대응하는 통합 센터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민간 기업은 자체 보안 연구 조직을 만들고 위협 리포트를 발행하며 국가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주 방위 분야에서도 움직임이 빠릅니다. 한국군은 2025년까지 군 정찰 위성 5기 체계를 완성할 계획입니다. 첫 위성은 이미 궤도에 올라 있으며 한반도 주변을 반복 관측합니다. 기상 악천후나 야간에도 감시가 가능해집니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국 기술로 군사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다는 점은 전략적 의미가 큽니다.
국내 기업도 우주 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화는 위성 추진 시스템과 통신 장비 개발을 확대하고 있고 LIG넥스원은 정찰 위성용 센서와 영상 장비를 개발합니다. 초소형 위성 제작과 발사 서비스에 뛰어든 스타트업도 늘고 있습니다. 정부는 우주산업 클러스터 구축을 통해 민간 참여를 키우고 있습니다.
한국은 우주 상황 인식 시스템(Space Situational Awareness)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궤도에서 움직이는 위성과 우주 파편을 추적해 충돌을 막고 의도적인 간섭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체계입니다. 지상 레이더와 관측 장비를 통해 수천 개의 물체를 감시합니다. 우주 기반 자산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첫 단계입니다.
사이버전과 우주 방위산업은 서로 가까운 분야입니다. 둘 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벌어지고 둘 다 일상의 기반을 공격합니다. 둘 다 민간과 군의 경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방어도 함께해야 합니다. 기술 의존도가 높아진 사회에서는 디지털 공격과 위성 교란이 전쟁이 아니어도 국가 기능을 멈출 수 있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전장을 지키는 능력이 앞으로의 국가 경쟁력이 됩니다. 앞으로 방산 영역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 무기보다 보이지 않는 분야를 지키는 역량과 기술이 훨씬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더 열심히 대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