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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찰스 Aug 22. 2016

남겨진 자의 이야기

이별 편

- 남겨진 자의 이야기 -


그러나 불쑥 찾아온 그날들은 불쑥 끝이 났다.
- 황경신, 『국경의 도서관』중.


어제와 오늘 사이의 빈 공간에 내가 남겨져 있다. 나는 시간의 강을 건너지 못했으니, 어두운 침묵 속에서 강을 건너 아득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누구도 내가 이곳에 남겨졌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담은 시간은 빠르고 아찔한 속도로 흘러갔다.


마음에서 생각을 비우고 그리움을 비우고 분노와 원망을 비우고 사랑했던 기억마저 비우고서 시체처럼 몸을 뉘이면, 마침내 껍데기가 되어 저 강을 건널 수도 있으련만. 그럼에도 나는 왜 이 공간에 남아 외로움에 질식하려 하는가.


그와 함께 지나온 시간이 윤색된 탓이다. 그와 내가 함께 쌓고 만들고 꾸미고 건너온 온갖 시간에 그와 나의 숨이 묻어있어, 모든 공간과 시간들이 아름다워진 탓이다. 우리의 숨은 우리 사이의 거칠었던 시간을 다듬고, 지루했던 시간을 완벽하게 미화시켰다. 반대로 현재를 흐르고 있는 시간의 강은 고통과 두려움이 가득할 뿐이니, 어쩌면 나는 이 음습한 공간에서 재구성되는 옛 시간들과 함께 죽어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바라는 것은, 그는 내가 더 이상 볼 수 없는 곳으로 돌아나가 흐릿한 영상으로나마 내게 보이지 않는 것. 그리하여 이미 나의 소원대로 윤색되어버린 시간들을 망쳐 놓지 않는 것. 완벽히 혼자인 채로, 유일하게 이 곳에 남아있는 외로움을 끌어안고 가라앉는 것.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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