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한번째이야기_남자편

by 김찰스

지난 번 두 번째 기억의 여운이 여전히 남아있던 금요일. 그녀의 출국일자는 겨우 열흘 밖에 남지 않았고, 난 그녀가 떠나기 전에 세 번째 기억을 만들어야 했다. 본래 이런 이벤트를 자주 하던 사람도 아니고 각종 기념일을 꼼꼼하게 챙기는 성격도 아닌 탓에, 어떤 기억을 선물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그녀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찰스, 번지점프 해봤어?"


그 때의 난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말도 안돼. 무서워, 못해, 못해."라고 했었던가.


또 그 때의 그녀는 '혼자서는 무섭지만,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의지하면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 했던 것 같다. 물론 그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그녀에게 '의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정작 내가 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를 위해 용기를 내고 싶었다. 그리하여 퇴근 후 만난 그녀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 해봤다.


"어때, 어때? 우리 같이 해보자. 할 수 있을 거야!"

"흠.. 무서워서 못 뛰겠다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흥!"


그 때 섭섭했던 생각이 났는지, 귀엽게 툴툴거리던 그녀.

"아니, 뭐 특별히 바람이 불었다기 보단, 우리 둘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걸 하면 의미가 있을거 같아서..."

"흥!! 어디로 갈진 정했고!?"

"응. 가평에 번지점프대 있어. 전화해보니까 내일 된대!!"

"음... 그래, 생각 좀 해보자, 갑자기 뛸 생각하니까 심장이 벌렁거려..."

"그래, 좀 더 생각해 보고, 괜찮으면 내일 아침에 가자."


그 후로도 '떠남'에 대한 이야기를 더 주고 받았다. 집은 언제 정리 할 건지, 공항엔 어떻게 갈건지, 출국하고 나면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같은.


여기서 '떠남'은 곧 '이별'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기때문에 자리가 종종 슬퍼지기도 했으나, 당장 눈 앞의 현실로 닥친 그것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때문에 그녀와 난, 미리 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애쓴 웃음을 짓기 바빴다.


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방에 돌아오니, 하얀 달빛이 가득 했다. 자꾸 해봐야 쓸쓸해지기만 하는 얘기여서 안하는게 좋겠다고 후회 하지만, 또 당장 며칠 뒤 떠나는 사람에게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함이 달빛을 창문 밖으로 몰아내고 있을 즈음, 그녀에게 메세지가 왔다.


[찰스, 가자 내일!! 해보자 한번!!]

그녀는 집에 돌아가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쨌거나, 지금의 난 지상으로부터 50미터나 떨어져 있는 높이에 서있다. 가뜩이나 차가워진 바람이 평소보다 더 날카롭고 시리게 불어온다. 철골 구조물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엘레베이터, 허벅지와 가슴을 옥죄이는 안전벨트, 그리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철제 바닥.


역시, 무섭다.


"사월아, 안무서워?"라고 말하며 그녀를 봤는데, 그녀 역시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음... 조금!! 찰스도 무섭지?"

그녀는 내게 의지하고 싶었던 것인데, 나까지 벌벌 떨고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하나도 안무서운데!? 뛸 때 내 손 꼭 잡고 있어."

"오... 멋진데?"

"흥! 뭐 이까짓게 뭐라고!! 걱정하지마! 내가 계속 있어줄게. 떨지마!"

되지도 않는 허세를 부리며 그녀를 꼭 안았다.


드디어 우리가 뛸 차례.


진행 요원이 손짓을 하고, 넓게 펼쳐진 허공에 한 발짝 차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발짝을 내밀기 직전, 남은 힘을 짜내 이야기한다.


"사월아. 손 놓지마. 사랑해."


그리고 내가 네 손을,

너는 내 손을 잡는다면,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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