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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ul 04. 2018

집중의 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7세 

테오에게

지난 5년가량의 세월 동안, 나는 안정된 직장 없이 늘 궁지에 몰린 채 방황해 왔다. 너는 내가 그동안 뒷걸음질만 치면서 나약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 생각이 옳을까? 

나도 이따금 발벌이란 걸 했다. 그렇지 못할 때는 친구들이 선의를 베풀어 도와주었지. 좋든 싫든 얻을 수 있는 것을 취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왔다. 내가 많은 사람의 신뢰를 잃었다는 건 맞는 말이다. 경제적인 형편도 좋지 않은 게 사실이고. 내 미래가 처량한 것도 부인할 수 없고, 더 잘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말도 맞다. 생계유지를 위해 노력했어야 할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공부가 상당히 허술하고 빈약하며, 필요한 것을 모두 구하기에는 내가 가진 수단이 너무 보잘것없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옳다고 해서 내가 점저 퇴보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바로 나올 수 있는 것이냐? 

왜 대학을 끝까지 마치지 않았느냐고, 왜 그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을 계속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그 문제라면 학비가 너무 비싸다는 대답밖에는 할 말이 없다. 게다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지금 내가 택한 길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맞이했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노력을 멈춘다면, 나는 패배하고 만다. 묵묵히 한 길을 가면 무언가 얻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의 최종 목표가 뭐냐고 너는 묻고 싶겠지. 초벌 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유화가 되듯,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듬어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1880년 7월


◼ 숄을 두르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노파, 1882년
29세

테오에게

날 믿어라. 하루 종일 지칠 정도로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것도 아주 기쁘게 말이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없다면, 아니 더 열심히 할 수 없다면 용기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예술의 비위를 맞추겠다. 조만간에 좀 더 흡족할 만한 그림을 받아보게 될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아파서는 안 된다. 내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너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싶다.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려면 오랫당안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내 목표를 이루는 건 지독하게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내 눈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까. 
·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결코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 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1882년 7월 


◼ 모래언덕, 1882년 2월
29세

테오에게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속에 가을 저녁의 느낌, 신비롭고 소중한 분위기가 스며들기 전에는 떠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인상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이 아니어서, 강하고 흔들림 없는 붓질 몇 번으로 그 특징을 한 번에 다 집어넣으면서 재빨리 그려야 했다. 

어린 나무들이 대지 위에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 나무들부터 칠하기 시작했는데, 바탕이 되는 대지는 이미 두텁게 칠해두었기 때문에 한 번의 붓질로 나무들이 대지 속에 뿌리를 내리게 만들었다. 뿌리와 줄기는 튜브에서 짜내면서 바로 모양을 만들고 약간의 붓질로 듬었을 분이다. 

그렇게 해서 나무들이 그림 속에 서 있다. 그림 안에서 솟아오르고, 그림 속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서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한 번도 유화를 배우지 않은 게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유화를 정식으로 배웠더라면 이러 인상은 무시하고 지나쳤을 게 틀림없다. 내가 포착하고 싶은 건 바로 그런 것인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할 수 없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뿐이라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그렸는지 모르겠다. 그저 내 앞에 펼쳐지는 풍경 앞에 하얀 판을 놓고 앉아 있었는데. 눈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혼자 말했지. 이 하얀 화판은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고 그림을 한쪽에 세워두었다. 좀 쉬고 나서 다시 그림 앞으로 가 두려움에 잠긴 채 바라보았다. 여전히 흡족해할 수 없었다. 기억 속에는 낮에 본 장관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도저히 그림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장면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그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것을 빠른 속도로 받아 적었다. 내가 그렇게 받아 적은 것은 판독할 수 없는 단어와 실수, 결함을 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전히 숲이나 너도밤나무, 여러 인물들이 나에게 들려준 것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준 방법이나 체계 안에서 습득한 인습적인 언어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서 나온 언어다. 

1882년 9월 3일


◼ 고흐, 모자 쓴 노인, 1882년


30세

테오에게

요즘은 인물을 단순화하는 작업에 완전히 빠져 있다. 나중에 직접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 인물을 잘 표현하는 일은 얼굴 생김새를 닮게 그리는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토적인 얼굴 표현은 정말이지 싫다. 그런 것보다 미켈란젤로의 <밤>이나 도미에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정뱅이, 밀레의 <땅 파는 사람들>, 잘 알려진 대형 목판화 <양치는 소녀>, 혹은 모베가 그린 늙은 말 등을 바라보는 게 낫다. 

1883년 7월 11일




32세

테오에게

네 생일을 맞아, 늘 건강하고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에 맞춰 유화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는데, 작업이 잘 진행되긴 하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최종 그림은 기억을 더둠어 그리니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성되겠지만, 겨울 내내 이 그림을 위해 머리와 손 그리는 연습을 해왔다. 강한 열의를 갖고 작업에 임했기에, 며칠 동안은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것 같았다. 가끔은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다는 게 뭐냐. '행동하고 창조하는 것' 아니냐.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생활방식, 즉 문명화된 사람들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그 그림에 감탄하고, 좋다고 인정하는 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 겨울 내내 이 직물을 짜낼 다양한 색채의 실을 손에 쥐고서, 그 결정적인 짜임새를 찾아왔다.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고 거친 모양을 한 천에 불과하지만, 그 천을 짠 실은 세심하게, 그리고 특정한 규칙에 따라 선택되었다.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감상적이고 나약하게 보이는 농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대상을 찾겠지. 그러나 길게 봤을 때는 농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달콤하게 그리는 것보다, 그들 특유의 거친 속성을 살려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1885년 4월 30일



◼ 백일초와 다른 꽃들이 있는 꽃병, 1886년
◼ 양귀비, 수레국화, 작약, 국화가 있는 꽃병, 1886년
34세 

친애하는 레벤스에게 

내가 하고 있는 작업 이야기를 하자면, 모델에게 지불할 돈이 없어서 인물화는 완전히 포기했네. 그 대신 유화로 채색하는 연습을 위해 빨간 양귀비꽃, 파란 수레국화와 물망초, 하얀 장미와 분홍 장미, 노란 국화 등 꽃 그림을 그리고 있네. 파란색과 오렌지색, 빨강과 초록, 노랑과 보라의 대립을 추구하기 위해서지. 회색빛 조화를 피하고 강렬한 대립을 조화롭게 다루기 위해 강렬한 색을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다네. 이런 훈련을 마치고 최근에는 두 점의 두상 습작을 그렸는 데 빛과 색에서 전에 그린 것보다 훨씬 낫다고 감히 말할 수 있네. 예전에 우리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나. 색에서 생명을 추구해야 한다고, 진정한 데생은 색과 함께 틀이 만들어진다고 말일세. 

1887년 8월


◼ 자화상, 1886년


34세 

여동생 윌에게

내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글을 쓰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네 믿음이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 소중한 동생아. 차라리 춤을 배우든지, 장교나 서기 혹은 누구든 네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렴. 한 번도 좋고 여러 번도 좋다.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그래 차라리 바보짓을 몇 번이든 하렴. 공부는 사람을 둔하게 만들 뿐이다. 공부하겠다는 말은 듣고 싶지도 않다. 
···
종교나 정의나 예술이 그렇게 신성할까? 자신의 사랑과 감정을 어떤 이념을 위해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더 거룩한데. 그건 그렇다 치고, 글을 쓰고 싶다면 행동을 해라.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림을 그리든지.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니 네 스스로 퇴보하길 바라지 않는 이상 공부는 필요하지 않다. 많이 즐기고 많은 재미를 느껴라.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에서 요구하는 것은 강렬한 색채와 강한 힘을 가진 살아 있는 어떤 것임을 명심해라. 네 건강을 돌보고 힘을 기르고 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최고의 공부다. 

1887년


◼ 씨뿌리는 사람, 1888


35세

베르나르에게

<씨 뿌리는 사람>의 스케치를 보내네. 흑을 온통 파헤친 넓은 밭은 선명한 보랏빛을 띠고 있네. 잘 익은 보리밭은 양홍빛을 띤 황토색이고. 

하늘은 황색 1호와 2호를 섞어 칠했는데, 흰색이 약간 섞인 황색 1호 물감으로 색칠한 태양만큼이나 환하네. 그래서 그림 전체가 주로 노란색 계열이라네. 씨 뿌리는 사람의 상의는 파란색이고 바지는 흰색이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25호 캔버스.

노란색에 보라색을 섞어서 중성적인 톤으로 칠한 대지에는 노란 물감으로 붓질을 많이 했네. 실제로 대지가 어떤 색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네. 낡은 달력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 나이 든 농부의 집에서 볼 수 있는 달력에는, 눈이나 비가 오는 장면이나 날씨 좋은 풍경이 아주 유치한 양식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나. 앙크탱이 <추수>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런 양식 말일세. 솔직히 내가 시골에서 자라 그런지 시골 풍경에 대한 반감은 전혀 갖고 있지 않네.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은 아직도 나를 황홀하게 하며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을 갖게 한다네. 씨 뿌리는 사람이나 밀짚단은 그 상징이지. 

1888년 6월 18일


테오에게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 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통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 그렇지 않니. 

 1888년 9월 3일



◼ 아를의 포럼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9월


35세

테오에게

전시회를 열자는 네 의견에는 전혀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곳에서 늘 전시회를 열던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전에 그들에게 미리 말해야 할 것은, 이번 전시회는 습작으로만 구성될 것이고, 내년에 완성작을 가지고 두 번째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도 좋다면 두 차례의 전시회가 끝난 후에, 전시했던 그림을 그들에게 모두 기증할 수도 있다. 

내가 전시회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단지 습작을 완성작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없도록 분명히 하고 싶고, 첫 번째 전시는 습작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미리 밝히고 싶을 뿐이다. <씨 뿌리는 사람>과 <밤의 카페> 단둘만 완성된 유화 작품이 될 것이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데, 아버지와 닮은 초라한 농부가 카페로 들어왔다. 정말 놀랄 만큼 닮았다. 특히 속을 알 수 없어 보이고 권태로워 보이는 분위기나 분명치 않은 입모양새가···. 그 모습을 그리지 못한 게 아쉽다. 

1888년 9월 8일



◼ 아를 요양원 정원, 1889년, 4월


36세

테오에게

나는 단순하지만 지속적이고 결정적인 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이미 패배한 싸움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 성격의 나약함이 문제인지도 모르지.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자책감만 남았다. 발작이 일어난 동안 그토록 소리를 많이 지른 까닭도 그 때문이겠지. 나 자신을 지키고 싶은데 지킬 수 없다는 것 때문에. 

1889년 4월 30일



◼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별이 반짝이는 밤, 1890년 5월



37세 

테오에게 (죽기 직전 부치지 않은 편지)

화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든, 돈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그래, 정말 우리 화가들은 자신은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랑하는 동생아, 내가 늘 말해 왔고 다시 한번 말하건대, 나는 네가 단순한 화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너는 나를 통해서 직접 그림을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최악으 상황에도 그 그림들은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너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죽은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과 살아 있는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 사이에는 아주 긴장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버렸지. 그런 건 좋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너는 사람을 사고파는 장사꾼이 아니다. 

1890년 7월 



죽기 직전 10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불같은 삶을 살았던 

고흐의 영혼을 

한 권의 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인가! 


-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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