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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의자포U Oct 27. 2024

8. 제 아내는 산책 천재입니다


나는 글에 쉼표를 많이 써서,

독자의 읽는 속도를 최대한 느리게 만든다.

나 자신이 그렇게 글을 읽는 것처럼,

내가 쓴 글이 천천히 읽히기를 희망한다.

-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의 스승이었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는 한 비트겐슈타인은 열정적이고, 심오하며, 강렬하고, 지배적인, 전통적 천재상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례이다.’


놀라웠습니다. 천재라서 놀란 것이 아니라, 천재라 불렸던 비트겐슈타인이 책을 천천히 읽는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천재라면 선 자리에서 책을 휘리릭 넘겨보고서 이렇게 말할 것만 같았거든요. 

“다 읽었어. 이 책은 327쪽의 3번째 줄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군.”


천재라면 많은 책을 빠르게 볼 수 있어야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일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속도와 양,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능력의 기준이었습니다.


‘내가 쓴 글이 천천히 읽히기를 희망한다’는 그의 문장 자체가 쉼표가 되어 저를 멈추게 합니다. 저의 독서 습관을 돌아봅니다. 저는 많이 읽지도, 빠르게 읽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많이 읽어야 할 것 같고, 빠르게 읽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많은 책을 읽은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고, 빠르게 읽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만 바빴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너는 왜 책을 읽어?”

“음…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주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그렇게 선한 영향력이 커졌으면 좋겠어.”


예! 제게 독서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입니다.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모두 몸으로 흡수되지 않습니다. 콩 한 쪽이라도 꼭꼭 씹어야 내 몸이 됩니다. 많은 음식을 먹더라도 내 몸에 흡수되지 않는다면, 무수한 쓰레기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도서관에 있는 수만 권의 책을 다 읽더라도, 내 삶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단 한 문장이라도 마음에 깊이 새겨 내 삶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낫습니다. 어떻게 읽어야 독서가 내 삶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제 아내는 산책 천재입니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면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같은 길을 산책하지만 결코 쉽게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갓 열매를 맺기 시작한 열매를 만져보고, 이름 모를 꽃이 나오면 유심히 들여다보고, 좋은 향기가 나면 멈춰서 그 향기를 맡아봅니다. “와~”, “어머”, “귀여워.”, “예뻐”. 산책하는 내내 쉴 새 없이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아내에게 산책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 그 자체입니다.


독서를 통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책의 언어들이 나에게 깊이 스며들어 내 삶을 흔들기를 원한다면, 책을 통해 나의 언어 수준과 세계를 넓히기를 원한다면, 책을 통해 작가가 펼쳐내는 새로운 세계를 충분히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100권의 책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100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 낫습니다.


책을 펼치고, 산책 천재 아내의 발걸음을 떠올려봅니다. ‘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듯,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잠시 멈춥니다. 문장을 음미하며 사색합니다. 마음을 끄는 문장이 있다면 보고 또 봅니다. 그 문장에 내 삶을 비춰봅니다. 그리고 다시 나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이렇게 반복, 사색, 성찰, 글쓰기를 통해 작가의 언어를 나의 언어로 피워냅니다.


아서 애쉬의 말처럼 ‘성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입니다. 목적지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지금 내게 다가오는 것들에 깊은 눈길을 던지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갑니다. ‘치열하게 천천히, 자주 멈추고, 깊이 사색하며 읽’어 갑니다.




<4음절 정리>


세상없는 천재라는

비트겐슈 타인독서

느릿느릿 읽는다니

놀랍고도 놀라워라


빨리많이 읽어야지

천재인줄 알았다네

빨리많이 일해야지

능력잔줄 알았다네

속도와양 다가져야

잘하는줄 알았다네


독서습관 돌아보니

빨리많이 읽고싶어

그런사람 부러우니

늘마음만 바빴다네


대체나는 왜책읽나

자신에게 물어보니

책을읽고 지금보다

나은사람 되고싶어

나은사람 되어설랑

선한영향 주고싶어


수만권의 책을읽고

머리속에 넣었지만

정작삶이 안바뀌면

무슨소용 있을랑가

딱한문장 마음새겨

실제삶이 변한다면

수만권의 책들보다

한문장이 백배낫네


산책천재 아내모습

가만가만 살펴보면

늘가는길 이더라도

걸음마다 멈춰서서

맨날새론 모습발견

열매보고 만져보고

새로운꽃 살펴보네

향기나면 멈춰서서

꽃향기를 맡는다네

쉴새없는 감탄사가

가장예쁜 꽃이라네


책읽기도 이와같아

좋은문장 만나면은

보고보고 다시보고

사색하고 성찰하고

글로써서 표현하니

작가의말 스며들어

나의말로 새겨지네

새겨진말 자라나서

꽃이활짝 피어나네


그러니까 벗님들아

서두르지 말자꾸나

인생성공 별거없다

여정이곧 목적지라

깊은눈길 던지면서

자주멈춰 치열하게

한발한발 내딛으면

걸음걸음 꽃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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